네덜란드에 다녀온 기념으로 뭘 살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그 무엇을 사도 지금의 나에게는 그저 짐이 될 뿐이었다. 그래서 산게 튤립 구근. 원래도 식물을 뭔가 키워보고 싶긴 했었다. 사실은 고양이지만, 따뜻한 생명체를 온전히 거두기에 지금 나는 내 몸도 건사하기 어렵다. 그래서 아쉬운대로 식물을 선택하긴 했는데, 많고 많은 식물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건 딱히 없었다. 네덜란드에서 튤립들을 보고 나니, 튤립을 키워야겠다!로 생각이 발전되었고, 인터넷에 찾아보니 튤립은 생각보다 잘 자란다는 말들이 많았다. 과연 나에게도 생각보다 잘 자란다고 한다는 튤립을 키워낼 재주가 있을런지.


굉장히 예쁜 색 두 종류의 튤립 구근을 선물받았고, 같은 날짜에 같이 심기로 약속했다. 누가 먼저 꽃을 피우는지 내기를 했다. 이번 내기에는 뭘 걸어야하려나? 저번처럼 등대 우표 세트를 걸었다가 가산 탕진의 지름길로 가면 곤란한데.. 내기 좋아하는 성격이라 뭐든 내기가 걸리면 거의 목숨걸고 한다.


이틀 후, (왜 이틀 후냐면, 내일은 화분이며 이것저것 보러 다녀야하기 때문에) 튤립 구근을 심을 것이다. 아마 튤립 성장일지 카테고리가 또 생길 듯 싶다. 카테고리 자꾸 늘어나는거 숨막히지만, 그게 편한데 어쩌겠어..  (2016/07/13 작성)





(추가로 수정하며 공개하게 되는 날짜인 2016/07/26) 이사하느라 바쁜 것보다, 매일 새로운 가드닝샵을 찾아다니면서 화분을 찾으러 다니는 게 더 힘들었다. 화분은 정말 많은데, 전부 물빠짐 구멍이 없는 화분들뿐이다. 튤립 구근을 심을 때 물빠짐 하나만 생각하면 된다는데, 그 물빠짐이 되는 화분을 찾지 못해서 지금 이렇게 고생중이다. 빨리 심고 싶은데, 빨리 심어서 매일매일 조금씩 물주면서 싹이 트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싶은데, 어째서 어쩌면 간단한 그 화분을 찾는 것조차 이렇게 뭔가 막혀있는건지. 튤립구근을 구입한지 이제 곧 한 달이 되는데, 그 전에는 심어야할텐데 걱정이 많다. 빨리 예쁜 색의 튤립을 보고 싶은데, 이렇게 안도와주네... 이 상태라면, 그냥 일반 화분을 사서 그 아래에 구멍을 뚫는 노가다를 해야하는데... 아 괴롭다. 부디 구멍이 있는 화분을 이번 주 안으로 구매할 수 있기를... 




20대 중반의 우리는, 우리도 한 번 문란하게 살아보자고 얘기를 했었다. 어차피 썩어 없어질 몸, 문란하게 살아보자고 농담처럼 진담인듯 웃으면서 얘기했었다. 그리고 문란하게 살아보자는 우리의 다짐을 조롱당하듯, 몇 명은 고기 먹는 비구니와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독일에 간다니까 꼭 연애를 많이 해야한다며, 자유연애를 하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그게 제 맘대로 되나요...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잘 될지는 모르겠네요. 유럽은 피임약이 처방약이라 부인과 진료까지 받아야해서 비쌀거라며 1년치 피임약을 챙겨가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뭐 무슨 일이 생길지는 모르는거니까 두 달치는 챙겨왔는데, 아이고 의미없다...



무튼, 탄뎀파트너를 구했다고 했더니, 독일에서는 섹스를 탄뎀이라고 불러? 라는 답이 돌아와서 숨이 넘어가게 웃었다.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구나... 그 생각을 하니 몇 년전에 했던 얘기가 생각이 났었다. 당신의 욕망은 잘 알겠습니다, 그걸 저에게 투사하지는 마시구요... 서른 넘어서도 문란하게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이 우리를 성녀로 만든다면서 한탄했던 때가 생각나서 그저 우습다.




탄뎀파트너는 서로 다른 모국어 사용자 둘이 서로의 외국어 개인 선생님이 되어주는 언어교환 파트너다. 나는 Michael에게 한국어를 알려주고, Michael은 나에게 독일어를 알려준다. 내가 독일어로 말하면, Michael은 한국어로 대답하고, Michael이 한국어로 말하면 나는 독일어로 대답한다. 한국에서는 Language Exchange로 많이 알려져있고, 여기서는 대부분 탄뎀파트너라고 부른다. 


한국어는 B2 정도의 수준이라고 한다. 처음 만나서 어디서 어떻게 공부할지 어느 요일이 좋은지 시간은 언제가 괜찮은지 영어로 상의했다. 학원에서 나의 수준을 아는 선생님과 더듬더듬 대화하는 것과 독일인과 대화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건 Michael도 마찬가지인듯 했다. 한국어 B2정도면 대화는 유창해야하는데, 단 한마디도 한국어를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B2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Michael 8월부터 오후에 시간이 난다고 해서, 다음 달부터 같이 공부하기로 했다.



그 기간동안은 이메일로 서로의 독어 작문/한국어 작문을 봐주기로 했다. 처음 주제는 모국에 대해서 쓰기, 두번째 주제는 상대국에 대해서 쓰기. 독일에 대해서 쓸 말은 엄청 많은데, 한국에 대해서 쓰려니 욕밖에 쓸 수가 없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쓰면 좀 그럴 것 같다.. 싶어서 다시 써도 항상 가는 방향은 똑같다. 한국은 내게 모국이지만 나에게 직업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독일에 와있다. 하지만 한국이 내게 직업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독일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이런식으로 항상 흘러간다.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걸, 1세계 백인 남성은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일까? 극동아시아의 작은 나라는 현재 그렇답니다. 



무튼, 독일에 살다보니 어떻게든 독일어에는 많이 노출되는 환경인데, 노출만 되고 나아지는게 없는 듯 해서 속상하다. 속상해하다가도 내가 독일에 온지 아직 세 달이 되지 않았다는걸 생각하면, 나 천재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독일에 숫자도 못세는 상태로 왔었다. 



걸어서.... 하하하하하하하....



처음에 집 구하고 할 땐 택시타라는 얘기 일절 안하던 엄마가 짐 다 정리되고 했으면 택시타라고 하길래,

"나는 가난해서 택시타면 안돼. 튼튼해서 한 두세번 왔다갔다하면 이사 다 할 수 있어"라고 했더니

너는 맨날 가난하니... 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게요, 저는 항상 가난하고, 엄마는 항상 부자죠...





썬글라스 쓰고 찍었더니 이렇게 어둡게 찍힌줄 몰랐다. 새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만하임에서 제일 큰 성당. 앞으로 성당을 다녀볼까 한다. 성당도 새벽기도 있으면 매일 새벽에 기도하고 싶은 마음. 뭔가 기도할 거리가 많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나는 어떻게 될지. 보통 새벽기도까지는 거의 하지 않지만, 절대자에게 말을 건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고등학생 때도 교회 새벽기도를 꽤 잘 다녔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서 방탕한 삶을 살았지.





집 현관문을 나서서 바라보면 성당이 이렇게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전에 살던 집 앞을 흐르는 강변 위를 떠있는 구름을 파노라마로 찍어봤다.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으로 뜹니다) 독일은 이렇게 예쁜 구름이 있는 나라가 아닌데, 걸어서 이사하는 나를 보호라도 하듯, 축복이라도 하듯 이런 구름들이 이사하는 내내 떠있었다. 




새 집에서는 부디 이전 집에서보다 더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으면, 청소 잘 하고 살기를.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들을 잘 해내며 살아가기를.

이 곳에 온 목적을 잊지 말고 매일 열심히 묵묵히 내 할 일을 잊지 말고 해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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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은 하나도 안쌌지만 욕조목욕은 해야한다, 암만.



어차피 짐은 닥치면 다 하게 되있고, 목욕은! 급하게 할 수 없으니까! 빻은 소리지만 그럴듯 하지 않습니까?



이 집은 정말 좋았다. 욕조마저 넓은 화장실, 넓은 부엌, 뷰도 좋았고 개인 베란다도 있었다. 보안도 확실했고, 우체통도 흰 색이라 예뻤다. 전기세를 따로 내는 것도 아니라 매일매일 오븐으로 온갖 요리를 도전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감자튀김은 단 한번도 기름으로 튀겨본 적 없고 항상 오븐으로 구워냈다. 1유로짜리 냉동피자여도 오븐으로 구우면 맛있었다. 같이 사는 중국인들도 뭐 썩 좋을건 없었지만 특별히 나쁠 것도 없었다. 학원에서 걸어서 5분 거리.


하지만 너무 비쌌다. 정말 단 하나의 단점이었다. 그런데 정해진 돈으로 생활해야하는 내게는 그 비싼 집값을 부담하기가 어려웠다. 일을 하지 않고 공부만 하는 기간을 줄여서 그 후는 일을 하면서 돈을 충당해도 되지만, 내 독일어 실력으로 일을 구하기는 당연히 쉬울리가 없다. 미래의 언젠가 독일어가 확 늘었을 때를 가정하고 지금 현재 가진 돈을 펑펑 써버리면,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한국으로 다시 압송되야한다. 그렇게 되서는 안된다.


싼 집을 찾고 찾고 또 찾았다. 꽤 많은 집을 봤지만, 마땅치가 않았다. 그렇게 세 달씩이나 저 비싼집에서 살게 되는건가, 혹시 그게 네 달이 되고 다섯 달이 되면 어쩌지- 했는데, 다행히 두 달 보름만 살고 이사할 수 있게 됐다.




이전 집과 새 집을 비교하자면, 욕조가 없는 좁은 화장실, 거의 없다시피한 좁은 부엌, 뷰는 도로가 바로 보이고, 베란다는 없다. 보안은 확실하지만, 우체통이 검은색이다. 전기세 별도. 학원까지 걸어서 25분 거리.


대체 왜 이사를 해야해???? 싶겠지만, 돈! 돈! 돈때문이다!!!!!!!!!!!!!!! 이렇게 아낀 돈으로 나는 우표를 사고 여행을 할 것이다. 내가 무슨 옷을 사는 것도 아니고 가방을 사는 것도 아니니, 집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더 아낄 부분이 없었다. 그래서 집을 아꼈다. 예산안에서 잘 해결되서 비자 기간동안 문제없이 잘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이사가면 욕조 목욕은 더는 못하는걸까... 목욕탕 문화는 독일에 없는건가-



나... 이사할... 수는 있는걸까....? 



방 사진이 두 개를 찍어봤다. 사진이 뜨기 전에 미리 말하자면, 이 두 부분은 내 방에서 가장 깨끗한 부분이다. 책상과 탁자. 뭐 어쨌든 위에 뭐 올려놓고 하는 곳인데, 아무것도 찾지 못할 것 같지만, 저 혼란된 것들 속에서 다 잘찾아낸다. 저렇게 다 널부러져있어야 찾기도 쉽고 좋은데 다들 좀 곤란해하는 눈치...


뭐 나도 책상 위에 아무 것도 없는 채로 살 수도 있지만(사실 불가능), 이것들을 다 종류별로 정리하려면 그 정리함들을 사는 데만해도 돈이 상당히 들 것이다. 아마 이사하면서 내 온전한 공간이 생긴다면, 그것들도 하나씩 사야겠지. 우선은 이 방에 내 가구는 단 하나도 없으니 빨래하고 나면 옷을 접어둘 수납장도 없어서 저 탁자위에 막 쌓아놓고 그랬다.



방이 많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또 주절주절했다.






5



4



3



2



1





책상. 오른쪽 아래에는 사용된 마테가 잔뜩 붙어있다. 저 중에서 아직 접착이 되는 것들은 다시 사용한다. 막 사용할 마테가 없어서 이러는 것 맞다... 내가 가진 마테들은 다 예쁘고 비싼 마테들이라 막마테가 좀 필요한데 딱히 구할 방법이 없다. 우표 엽서 편지 뭐 법석인거 잘 알고 있는데, 놀랍게도 내 나름의 구분이 다 잘 되어있는 모습이다.




이건 탁자. 직접 앉아서 쓰는 책상과 달리 탁자는 주로 책상에서 작업한 것들을 옮겨둔다. 그냥 선반처럼 쓰는 탁자. 원래는 여기에도 의자를 놔두고 뭔가 앉아서 했는데, 언젠가부터 이렇게 선반처럼 쓰고 있다. 나는, 오늘 이사해야한다. 그런데 지금 상태는 이렇다.


최근 갑자기 시내 곳곳에 특정 조형물이 세워지길래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글자가 눈에 들어와서 봤는데, 세상에 모차르트? 내가 아는 그 모차르트? 모차르트랑 만하임이랑 무슨 상관이야...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찾아봤더니 모차르트가 만하임에 잠시 살았다고 한다. 아이고 뭐 한 두달 살았던걸로 관광에 써먹고 싶은가보네... 싶었다.


독일어로 설명이 뭔가 많이 되어있는거 봐서는 그렇게 간단한게 아닌가본데? 싶었고, 자세히 찾아보니, 모차르트의 부인인 콘스탄체 모차르트가 만하임에서 어릴 때부터 쭈욱 살았다고! 그래서 매년 여름, 만하임에서는 "모차르트의 여름"이라는 큰 축제가 열린다. 매일 다른 음악회가 열리고 까페나 바에서도 매일매일 공연이 열린다. 




만하임 번화가의 조형물




집 바로 앞 국립극장의 조형물




여전히 집 바로 앞의 국립극장.

색감을 전혀 못잡아내는 아이폰님. 아프지 마세요... 제가 새로 핸드폰을 살 형편이 안된답니다... 제발 좀 더 버텨주세요..




이건 집 뒤의 옥외 광고판과, 광고용으로 제작된 엽서

엽서 공짜로 나눠주는 곳은 이제 직감적으로 딱 느낌이 온다.





어째서 이사가게 되는 딱 그 주에 이 축제가 시작되는건지 나는 알 수가 없네... 한 주만 더 빨리 시작됐으면 매일매일 국립극장 야외음악당에서 하는 공연볼텐데, 밤 열시에 시작되는 그 무료공연을 보고 10분 걸어서 집에 도착한다면 정말 좋을텐데. 새 집은 국립극장과 많이 멀다... 슬프네...





새벽 다섯시에 까르보나라를 만들면서 보게 된 장관. 이 집이 비싸지 않다면 나는 이 집에서 계속 살텐데, 여럿이 살아서 불편한 점이 물론 있지만, 그걸 다 상쇄할 만큼 이 집은 정말정말 좋으니까. 엄청 큰 욕조도 있고. 부엌도 크고 다 좋은데, 월세가 너무 비싸다는게 문제.




까르보나라를 만드는 동안 해가 떴다. 구름도 오늘따라 유난히 예뻐보이는 것 기분탓이겠지.

오늘은 이 (비싸고) 좋은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주말이다.




평화롭다. 나도 이 평화에 끼이고 싶다.




Collini center in Mannheim




존나 조쿤.




이사를 앞두고 있어서 식재료를 구입하지 않았더니 먹을게 없다. 여기서 말하는 먹을게 없다는건 고기가 없다는 얘기. 물론 빵과 파스타 재료는 언제나 구비되어있으니까 이럴 때는 나의 선택지가 파스타밖에 없다. 토마토 소스보다 크림 소스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대부분 크림 소스 파스타를 만들어먹는다. 우유가 1리터에 600원밖에 안해서, 우유를 콸콸콸콸 넣어서 만든다. 한국에서 만들었을 때는, 우유만 넣으면 맛이 부족해서 생크림도 섞어야했고 치즈도 넣어야했었다. 독일의 우유는 한국의 우유와 뭔가 다른건지 우유만 넣어도 꽤 그럴듯한 크림 소스 파스타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치즈도 넣고 생크림도 넣어서 꾸덕꾸덕하게 만들어서 먹는다. 소스를 넉넉히 만들어서 식빵으로 그릇 닦으면서 먹는 걸 정말 좋아한다.


살찐 사람은 요리를 못할 수가 없다. 살이 쪘는데 요리를 못한다? 개새끼일 확률이 높다.

음 이 얘기는 아마 이전에 쓴 것 같네... 




사진이 딱! 있어야하는데, 새벽에 막 정신없이 먹다보니 사진이 없네... 그래서 아쉬운대로 다른 사진을 올린다.











혹시 존나조쿤의 어원?을 모르시는 분이 계실까봐 존나조쿤 짤방을 준비했다.




나는 이게 인터넷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 아는 짤방인줄 알았는데

나만 너무 인터넷 폐인이라 잘 알고 있을뿐이었다.

랜선 사념체로 살게해주세요.. 제발... 육신따위 필요없습니다





내 티스토리에서 글 쓸 때는 짤 넣지 않으려했는데... 랜선에서 오랜 시간 기거하다보니 짤 없으면 조금 아쉬운 느낌






존나조쿤의 수없이 많은 패러디 중에 이 짤을 제일 좋아한다.

그깟 공놀이...!!!



야구가 뭔데? 하는 나라에서 살다보니 더더욱 내새끼들의 공놀이가 그립다.




그리고 이걸 모르는 사람들도 많길래 같이 캡쳐했다.

카톡 이모티콘 중 이 이미지의 원형이 바로 첫 사진의 존나조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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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 희망을 얘기하는 문법을 배웠다. (영어의 가정법)


두 아이의 엄마는 우리 가족이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했고,

성악 전공자는 유명한 성악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놀랍게도 "그림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게 대체 뭔 소리야... 말을 할 때 뇌를 거치고 말하라고...

말하고 나서 나도 새삼 놀랐고, 다들 놀람.

선생님이 그림 잘그리냐고 물어서 아니라고 그냥 잘 그리고 싶은데 전혀 할 줄 모른다고 답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사람이 그저 부러웠다.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미술에 대한 나의 가장 강렬하고 영원히 가져갈 듯한 기억 하나가 있다. 나는 나와 네 살 차이나는 동생을 데리고 학원을 다녔다. 미술학원도 그랬고, 음악학원도 그랬다. 그런데 미술학원에서 엄마와 통화를 하는 걸 듣게 됐는데, 누나는 학원에 더 안보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게 어린 마음에 너무 슬펐다. 나보다 네 살이나 어린 쟤는 계속 와도 된다고 하는데, 나는 안와도 된다니. 쟤가 그리는 것도 나랑 별 다를 거 없어보였는데 나는 그냥 딱 봐도 미술과 관련없는 삶을 살게 될 거라는게 보였다는건지. 무료로 가르쳐달라는 것도 아니고 돈 내고 배우겠다는데도 오지 말라니.. 물론 20년도 더 지나서 기억이 왜곡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는 그냥 오예!! 그리기 싫은 그림 안그려도 된다!! 이렇게 신나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속상했던 기억은 확실하고, 20년 동안 켜켜이 감정이 쌓여온 것은 확실하다. 만약 그 때 그런 말을 안들었더라면, 나도 그림을 배울 생각을 더 빨리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서른이 넘어서가 아니라, 대학생때라도.


서른이 넘어서 미술학원에 3개월 다녔었다. 미술학원은 생각보다 비쌌고, 박봉의 말단직원의 월급으로는 다니는 것이 불가능했다. 물론 회사 다닐때는 시간이 없기도 했다. 백수로 지내면서 그렇게 긴 시간을 백수로 지낼 줄 알았으면 이것저것 더 많이 배웠을텐데, 나는 금방 취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석사 학위는 그저 긴 가방끈에 불과했고, 같은 학위를 가진 어린 사람들을 뽑는건 어쩌면 당연했다. 쪽팔리니 그런 돈은 타먹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장기백수에게는 한 푼도 귀했다. 뭔가를 배우고 싶어서 배운게 아니라, 그걸 배우면 돈을 준대서 배웠다. 엄밀히 말하면 직업훈련인데, 나는 그 직업을 갖고 싶어서 배운건 하나도 없었다. 처음엔 미술학원을 갔다. 감사하게도, 각종 학원들에는 나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 개설되어있었다. 이 수업을 듣는다고 취업이 되는게 절대로 아니란걸 알지만, 공짜로 뭔가 새로 배우고 싶고, 출석에 비례해서 수당도 나오고. 학원도 손해일 수 없는게, 이 강의에 대한 모든 비용은 국가에서 지급되는 돈이기 때문에, 눈먼 돈을 슈킹하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일뿐이다. 내가 수료한 직업훈련 과정은 "일러스트 전문작가 양성과정" 풉... 3개월 배워서요? 금손들 무시하나요? 됐고, 그 3개월동안 매일 네다섯시간씩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inner peace에 아주 조금은 가까워 질 수 있었다. 내면의 평화라고 직역하면 뭔가 좀 다른 기분. 쿵푸팬더의 그 inner peace.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기 보다, 예전의 그 기억을 치유하기 위해서 다녔다고 하는게 맞겠다. 그리고 매일 네다섯시간씩, 직업이 아닌 다른 뭔가를 한다는 것은 굉장한 명상이 되기도 했다.



그냥, 20년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그들이 부럽다. 특정 색깔을 보고 이 색은 이 색과 어울리겠다. 는 생각이 바로 떠오르는 삶이란 어떤걸까. 나는 12색 색연필을 모두 갖다두고도 서로 어울리는 색을 추려내지 못한다. 서로 보색인 그 색깔들만 겨우 맞추는 정도. 나는 여러가지 색을 보면 다 잘 어울리는 느낌이 든다. 어떤 색이 서로 조화롭고 이런 느낌이 전혀 없는데, 이게 이상하다는걸 알고 엄청 속상했었다. 나는 그림을 너무 잘 그리고 싶은데, 그런 기본적인 감각도 전혀 없이 태어났구나 하는 상실감이 컸다. 내가 못가진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가진 것을 더 발전시키는 방법으로 살아야하는데, 나는 그저 흔하고 흔한 범인이라 그렇게 살기가 쉽지가 않다. 노력하는 중이지만 잘 안된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 방법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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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인 2011년의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유로2012를 직접 보는거였으니까. 그 때는 한국에서 유럽시간으로 살았는데, 요즘은 왜 독일에서 한국 시간으로 살고 있지.. 내 바이오리듬 왜 이러는건지. 지역확인 좀 해주시라며.. 한때 세리에 리그를 즐겨봤던 나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유로 2016이 내게 중요한 다른 이유가 또 있었다. 축구없이 못사는 독일이니까, 결승전에 가게되면 그걸 기념해서 하는 세일들이 많을거기 때문에 누구보다 준결승전에서 이기길 바랬다. 실제로 준결승 진출 기념으로 고속버스 50% 할인도 했었는데, 난 당연히 결승전에 갈 줄 알고 내 미래의 여행들을 예약하지 않는 빙구짓을 했다. 아이고 내 뮌헨 아이고 내 암스테르담 아이고... 다음 유로2020은 어디서 개최되지. 독일이었으면... 그리고 그 때도 내가 독일에 있을 수 있었으면.



축구 시작 두 시간 전의 야외 술집. 이미 만석. 중간에 비어보이는 자리는 예약석이라고.



오늘 같은 날은 당연히 모든 술집이 꽉꽉꽉 찬다. 거의 모든 독일 술집은 커다란 티비가 있다. 당연하다, 맥주마시면서 축구보는게 삶의 낙인 이들에게 맥주만 있고 축구를 못보는건 뭔가 잘못된걸테지. 이 술집은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곳인데, 처음에는 엄청 신기했다. 술집 이름은 City Beach. 내가 사는 만하임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가도 바다가 없다. 그래서인지 이런 종류의 술집이 있다. 바닥에는 바다모래를 깔아두고, 해변가에서 태닝할 때 눕는 그 의자도 곳곳에 있고, 파라솔도 있는 그런 술집. 이런 곳에서 큰 티비로 다 같이 축구 경기보면 꽤 재밌겠지.


사실, 학원에서 친해진 스페인 사람에게 오늘 준결승전 같이 보러 술집 가자고 했더니 축구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내가 귀찮은건 아니지? 정말 축구 안좋아하는거지...? 나는 그 분위기를 같이 느끼고 싶었기 때문에, 혼자라도 가야겠다고 했다. 집에 티비가 없기도 하고. 아시아 여자가, 혼자, 독일에서 국가대항 축구를 본다고??? 그것도 상대가 프랑스인데? 아니,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야. 위험해. 라는 조언을 들었다. 내가 ????? 어차피 독일이 이길건데 뭐가 문제야~라고 했더니, 이기면 신난 기분에 너무 많이 취해서 위험하고, 지게 되면 프랑스 나부랭이에게 졌기 때문에 기분 나빠서 엄청 취해서 위험하다고 한다. 그리고 독일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는, 축구광팬이라는 조언;;도 해줬다. 아 그래.. 두 달 넘게 지내며 이제 적응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많다. 너무너무 가고 싶었지만, 결승전에 같이 갈 친구를 찾기로 하고, 준결승전은 집에서 느리고 작은 화면으로 봤다. 와... 홈어드밴티지... 화가난다 화가나. 경기 내내 독일이 월등히 잘했는데, 결국 개최국이기도 하고 독일이 살짝 느슨해졌던 때를 잘 노렸기도 하고. 1:0도이면 정말 아까운 경기였다고 할텐데, 2:0이라 아쉬워 죽겠다는 표현도 맞지 않는 듯.


새삼 엄마가 항상 나에게 하는 말이 생각났다. "한국 사람은 과정같은건 아무도 생각 안해줘, 결과만 말해. 엄마도 니 과정같은건 안궁금해, 결과만 말해. 어찌됐든 너는 지금 그 나이에 땡전 한 푼 없는 백수야" 예... 뭐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가보다.. 싶지만 워딩 자체는 상당한 워딩이지. 내가 뭘 하든 부자만 되면 된다. 불법이어도? 과정같은건 필요 없이? 싫어 나는, 그런거.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걸어가면서 주변 구경도 하고 샛길로도 빠지고 그렇게 여행하면서 지낼래. 빙빙 돌아가도 어쨌든 나는 계속 걷고 있으니가 어디론가 도착할 수 있겠지. 그 곳에 부디 나를 위한 자리가 있길.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지만, 애초에 천국을 기대한 적은 없고 그냥 내가 앉을 자리 하나를 찾아다니는 길이니까, 어딘가에 나를 위한 자리가 하나는 제발 있길.




믿기 힘들게 축구가 졌고, 새벽 내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밖은 소란스러웠다. 집 바로 옆에 큰 도로가 있는데, 새벽 내내 자동차 굉음이 들렸고, 빵빵소리가 마치 초시계처럼 내내 울렸다. 울부짖는 듯한 소리도 엄청나게 올라왔다. 내가 사는 집이 5층인데도;; 말 그대로 광란이었다. 안나가길 정말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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