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하임의 이 좋은 아파트에서 산지는 65일째


두 달 딱 지내니까 이제 거의 완벽히 이 집과 주변에 적응했는데, 다음 주에 이사를 앞두고 있다. 독일의 집값은 상상을 초월하게 비싸다. 얼마인지는 말할 수 없지만 비싸다는 말은 할 수 있다. 그래서 저렴한 집을 찾고 찾았다. 그리고 혼자 살고 싶기도 했고. 똥싸야하는데 화장실에서 누가 안나오면 너무 괴롭다. 대전에 살 때는 변기 막혔을 때 죽을 힘을 다해서 집 앞 롯데백화점에 뛰어갔었는데, 여기는 근처에 화장실이 있지도 않을 뿐더러 있다해도 유료화장실일테니 갈 수가 없다. 그리고 사람의 식사시간은 거의 비슷하니까, 하우스메이트가 점심 먹을 준비를 할 때, 나도 해야한다. 그런데 여럿이서 부엌을 쓰기엔 너무 복잡하다. 부엌이 꽤 큰 편인데도, 한 명이 아닌 여러명이 움직이면 정신없다. 물론 오븐이 한 개이기도 하고. 먼저 식사준비를 시작한 사람이 끝낼 때까지 다음 사람은 그냥 기다리는게 예의처럼 되버렸는데, 배가 고프면 사나워지는 나에게 너무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이래저래 한달 고정지출을 줄이려고 하니, 집세밖에 줄일게 없었다. 운좋게도 꽤 저렴한 (하지만 웬만한 서울 월세는 거뜬히 되는) 방을 구했다. 화장실도 부엌도 다 혼자 쓴다! 화장실도 부엌도 다 혼자 쓰면서 저렴하기까지 하니 방은 엄청 작다. 부엌도 거의 없는 수준에 화장실에 욕조도 없다. 원하는걸 갖지 못하는걸 배워가는게 어른이라고 했다. 나는 그 방에서 살기로 결정하면서, 또 조금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집에 비하면 너무너무 작고 건물도 후지고 주변도 황량하고, 무엇보다 우편함이 검은색이다. 이 집의 우편함은 흰색이라 예쁘고 깔끔했는데.. 무튼, 오늘이 독일에서 지낸지 76째, 만하임의 이 좋은 아파트에서 지낸지는 65일째가 된다. 나는 내가 아직 독일에서 지낸지 3개월도 채 안됐다는게 여전히 신기하다.


한국에서도 어딜가든 적응잘하기 세계 20위안에는 든다고 자부했는데, 조금 더 순위를 높여도 될 듯. 이것도 장점이라면 큰 장점이다. 지나간 것은 그냥 흘러가게 놔둔다. 어차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과거에 얽메여봤자, 나만 힘드니까. 즐거운 기억만 생각만 갖고 앞으로 가다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안나와도 할 수 없다. 어쨌든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중간에 좀 쉬어가기도 하고 누워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처음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상태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할 수 있다. 안빈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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