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인 2011년의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유로2012를 직접 보는거였으니까. 그 때는 한국에서 유럽시간으로 살았는데, 요즘은 왜 독일에서 한국 시간으로 살고 있지.. 내 바이오리듬 왜 이러는건지. 지역확인 좀 해주시라며.. 한때 세리에 리그를 즐겨봤던 나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유로 2016이 내게 중요한 다른 이유가 또 있었다. 축구없이 못사는 독일이니까, 결승전에 가게되면 그걸 기념해서 하는 세일들이 많을거기 때문에 누구보다 준결승전에서 이기길 바랬다. 실제로 준결승 진출 기념으로 고속버스 50% 할인도 했었는데, 난 당연히 결승전에 갈 줄 알고 내 미래의 여행들을 예약하지 않는 빙구짓을 했다. 아이고 내 뮌헨 아이고 내 암스테르담 아이고... 다음 유로2020은 어디서 개최되지. 독일이었으면... 그리고 그 때도 내가 독일에 있을 수 있었으면.



축구 시작 두 시간 전의 야외 술집. 이미 만석. 중간에 비어보이는 자리는 예약석이라고.



오늘 같은 날은 당연히 모든 술집이 꽉꽉꽉 찬다. 거의 모든 독일 술집은 커다란 티비가 있다. 당연하다, 맥주마시면서 축구보는게 삶의 낙인 이들에게 맥주만 있고 축구를 못보는건 뭔가 잘못된걸테지. 이 술집은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곳인데, 처음에는 엄청 신기했다. 술집 이름은 City Beach. 내가 사는 만하임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가도 바다가 없다. 그래서인지 이런 종류의 술집이 있다. 바닥에는 바다모래를 깔아두고, 해변가에서 태닝할 때 눕는 그 의자도 곳곳에 있고, 파라솔도 있는 그런 술집. 이런 곳에서 큰 티비로 다 같이 축구 경기보면 꽤 재밌겠지.


사실, 학원에서 친해진 스페인 사람에게 오늘 준결승전 같이 보러 술집 가자고 했더니 축구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내가 귀찮은건 아니지? 정말 축구 안좋아하는거지...? 나는 그 분위기를 같이 느끼고 싶었기 때문에, 혼자라도 가야겠다고 했다. 집에 티비가 없기도 하고. 아시아 여자가, 혼자, 독일에서 국가대항 축구를 본다고??? 그것도 상대가 프랑스인데? 아니,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야. 위험해. 라는 조언을 들었다. 내가 ????? 어차피 독일이 이길건데 뭐가 문제야~라고 했더니, 이기면 신난 기분에 너무 많이 취해서 위험하고, 지게 되면 프랑스 나부랭이에게 졌기 때문에 기분 나빠서 엄청 취해서 위험하다고 한다. 그리고 독일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는, 축구광팬이라는 조언;;도 해줬다. 아 그래.. 두 달 넘게 지내며 이제 적응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많다. 너무너무 가고 싶었지만, 결승전에 같이 갈 친구를 찾기로 하고, 준결승전은 집에서 느리고 작은 화면으로 봤다. 와... 홈어드밴티지... 화가난다 화가나. 경기 내내 독일이 월등히 잘했는데, 결국 개최국이기도 하고 독일이 살짝 느슨해졌던 때를 잘 노렸기도 하고. 1:0도이면 정말 아까운 경기였다고 할텐데, 2:0이라 아쉬워 죽겠다는 표현도 맞지 않는 듯.


새삼 엄마가 항상 나에게 하는 말이 생각났다. "한국 사람은 과정같은건 아무도 생각 안해줘, 결과만 말해. 엄마도 니 과정같은건 안궁금해, 결과만 말해. 어찌됐든 너는 지금 그 나이에 땡전 한 푼 없는 백수야" 예... 뭐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가보다.. 싶지만 워딩 자체는 상당한 워딩이지. 내가 뭘 하든 부자만 되면 된다. 불법이어도? 과정같은건 필요 없이? 싫어 나는, 그런거.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걸어가면서 주변 구경도 하고 샛길로도 빠지고 그렇게 여행하면서 지낼래. 빙빙 돌아가도 어쨌든 나는 계속 걷고 있으니가 어디론가 도착할 수 있겠지. 그 곳에 부디 나를 위한 자리가 있길.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지만, 애초에 천국을 기대한 적은 없고 그냥 내가 앉을 자리 하나를 찾아다니는 길이니까, 어딘가에 나를 위한 자리가 하나는 제발 있길.




믿기 힘들게 축구가 졌고, 새벽 내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밖은 소란스러웠다. 집 바로 옆에 큰 도로가 있는데, 새벽 내내 자동차 굉음이 들렸고, 빵빵소리가 마치 초시계처럼 내내 울렸다. 울부짖는 듯한 소리도 엄청나게 올라왔다. 내가 사는 집이 5층인데도;; 말 그대로 광란이었다. 안나가길 정말 잘한 것 같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