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 공부를 최소한이라도 하고 가겠다며

워홀 비자를 발급 받고 바로 출국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정리할 것들도 남았고,

10년 넘게 밖에서 지내온 자취짐도 정리해야했고

거의 한국에서의 신변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버리고 버리고 버려도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새삼 깨달았다


병적으로 수집해왔던 나의 삶이었는데

영화티켓이며 영수증이며 뭐 전부 다 버려야했다

그 어디에도 내 짐들을 위한 공간은 없었기에




그리고 독일로 가져갈 짐을 싸는 것도

옷이나 그런건 한국에서도 그렇게 유난스럽게 입지 않았기에

두세벌로 빨아서 돌려입으려 했는데

엄마는 그런 나를 철천지 원수처럼 대했다

어쩜 그러냐고, 옷 있는거 다 챙겨가라고

그래서 엄마가 있을 때 싼 짐은 다 옷들이고,

새벽에 나 혼자 몰래 싼 짐은 다 잡동사니들이다.



어쩌면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인데,

그 작은 돌멩이가 이렇게 큰 파도가 될 줄은 나조차도 몰랐다.

저지르고 보는거지 뭐!!!


30여년간의 내 삶을 요약하면

저지르고 수습하며 사는 삶이었다




출국 이틀 전날 까지도 짐 하나도 안싸고 그저 일상을 즐기다가

출국 전날에 밤새면서 짐을 쌌다.

쟤는 또 닥쳐서 한다고 엄마도 아빠도 혀를 끌끌 차셨지만,

나는 닥치지 않으면 모티베이션이 없어서 뭐가 안되요... 이런 딸이라서 죄송합니다




28인치 캐리어, 23키로가 겨우 맞춰졌다

기내용 캐리어, 7키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대충 체크인할 때 분위기보고 판단해야지



우선 공항에 전부 다 바리바리 들고가서

정 안되면 버리거나, 친구한테 부탁해서 택배 하나만 어디 창고에 맡아달라고 하기로

엄청난 양의 짐을 추가로 싸매고 가기로 결정



엄마도 아빠도 그따위로 짐싼 나를 보고 또 한심해하셨지만

저는 이렇답니다. 이런 저를 한심해하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모두가 같은 방법으로 사는 건 아니잖아요? (당_당)


유럽에 가게 된다면 (이런 방법으로 가게 될 줄은 몰랐지만)

반드시 에티하드나 카타르를 타고

사막 투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막연히 있다

(나는 막연한 희망과 생각에 대한 이상한 믿음이 있는데

막연하고 구체적이지 않을 수록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그것이 이뤄지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돌아올 때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에서 인천으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탈 생각이 있기 때문에, 편도로 비행기를 발권해야했고, 에티하드나 카타르의 비행 분위기를 알아야했다.


보통 그 나라의 국적기는 그 나라의 분위기와 많이 따라가는 편이고, 히잡쓴 여자들이 많이 타거나 한다면 조금 꺼려질 것도 같았다. 그 여자들이 꺼려진다기보다 여자를 물건으로 취급하는 그 문화 자체가 안맞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의 평가는 내게 원래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고,

최소 한 번 이상의 내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에티하드나 카타르의 특가가 뜨길 기다렸다




기적처럼 에티하드의 특가가 떴고

바로 예약!!!

매일 비행기 티켓 확인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비상구 앞줄이라 누워서 가기에 최고라는 22열에도 예약에 성공했다




내가 에티하드 항공을 선택한 이유는

1. 언젠가의 사막여행(스탑오버로의 짧은 여행이지만)을 꿈꾸며,

 에티하드 항공 미리 경험해보기

2. Dilmah!!!!!! Dilmah!!!!!!!!!


이 두 개가 전부다.

특히 딜마티와 관련해서는 비행기에서 재밌는 일도 있었다.



무튼 40만원에 인천-아부다비-프랑크푸르트 비행기 발권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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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그런 글을 보긴 했었다.

30세에 신청하니까 사유서를 써내라고 했고

이거 혹시 탈락하는거 아니냐고

탈락할 수도 있다.

세상일에 100%라는건 없으니까


그래서 그 사유서를 쓴 사람들을 더 열심히 찾아봤다

그냥 별 말 안썼는데 통과시켜줬다는 사람도 있었고

열심히 썼는데 불합격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역시 인생은 복불복...


그렇다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일이니까 열심히 쓰기로 한다



대사관에서 내게 추가로 요구한 것은 두 개.

보통 이 두 개라고 한다.

영문 이력서, (워홀로 가기에는) 나이가 많은데 왜 가야하는지 사유서 한 장


영문 이력서는 이미 작성해둔 게 있어서 그냥 뽑아갔고

혹시 안걸릴 수도 있으니 사유서는 쓰지 않고 갔다


생일이 열흘도 남지 않았기에, 사유서에 당첨되었다




사유서를 빨리 보내야 내 워홀 서류 심사도 빨리 진행되겠지.

밤새 열심히 썼다.


그간 자기소개서를 다양히 열심히 쓴 덕분에 작문 실력이 꽤 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자기소개서를 헛쓴건 아니라는 생각도 든 것이

사유서도 어차피 독일 대사관에서 읽는거니, 회사에 제출했던 자기소개서의 그 작문 틀과 유사하게 적용할 수 있었다


너희 회사 제품 뭐뭐 써봤는데, 너무 좋더라.

구매자로서 조금 불편했던 점들은 회사에 입사해서 내가 직접 바꾸고 싶어!


독일 제품을 써본 게 은근 많은데, 다 너무 좋더라

독일에 직접 가면 얼마나 더 많은 재미있는 것들이 나를 반겨줄까?



이런 틀.

읽는 회사/독일을 칭찬하면서 내가 왜 이 일을 해야하는지/독일에 가야하는지 

그렇게 정신없이 쓰다보니 한 페이지가 채워졌고

공문이니 위아래 공문 서식은 맞춰주며

나 그렇게 멍청이 아니야!

독일어는 하나도 못하지만 영어작문도 이정도는 할 줄 알아! 를 어필하며

혹시 모르니, 아니면 이런 것도 세세하게 PDF로 변환한 파일과 Word 파일을 대사관에 전송!

부디 누군가가 *.hwp를 보내는 일은 없길 바라며....





합/불합의 여부는 따로 알려주지 않고

내가 제출한 여권에 비자가 붙어있으면 합격, 없으면 불합격



내가 사유서에 이만큼이나 공을 들였는데, 혹시라도 안된다면

그건 한국에서 최저임금 받으면서 그렇게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살아가야한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서럽기도 했다.


어째서 모국은 그렇게도 비현실적인 노동구조를 갖고 있는가...



무튼, 내 할 일은 모두 내 손을 떠났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취업준비생이라는 허울뿐인 이름뿐인 백수나부랭이로 지낸지도 1년이 지났다.

1년만 지났나, 더 긴 시간이 지났다.

그 긴 시간 속에서도 그 기준선에 통과하는 회사는 없었고

있었어도 연봉 1800을 부르며 나를 화나게 했다



아무리 한국에서 더 이상 대졸과 석사졸에 큰 차이는 없다지만

연봉 1800이면 한달에 얼마를 받는다는건지

그 와중에 1800은 세전이었다.



내가 눈이 높아서가 아니다

한국이 잘못된건데

다들 눈을 낮춰서 가라니 어쩌라니

눈을 낮춰서 들어간 회사가 맘에 안들면

나는 또 취업준비생이라는 신분으로 돌아가야한다

그럴 수는 없었다



눈을 낮춘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딱, 10년 전 호주에서 교환학생으로 1년간 지낸 적이 있다.

대학생 신분이라 더 행복했지만,

영어에 능숙하지 않아도 외국 생활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물론 대학에서는 한국에서 한 번도 받아보지 않았던 F를 받기도 했지만,

뭐 어차피 F 뜬 과목은 한국의 성적표에 기입되지 않으니

아무렇지 않았다.




지금의 내 나이로, 합법적으로 1년이 체류 가능한 나라를 찾아야했다.



생각보다 답은 가까이 있었다.

독일은 워홀 신청기간이 따로 있지 않았고

언제든 신청하면 일주일 이내에 거의 100% 워홀 비자가 발급된다.

이렇게 신박하고 감사한 나라가 있나...


독일에 대한 막연한 동경뿐이었던 나는

(세계대전 관련 이야기 굉장히 좋아해서 독일에 대한 이미지가 그저 좋다)

어쩌면 내가 독일에서 1년을 지낼 수도 있고

그것을 더 연장해서 평생 독일에서 지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저 들떠서 정신을 못차리게 된다



이 때가 딱 2월 초였다.

85년생 2월 생인 나는, 2016년 내 생일 전날까지는 만30세,

내 생일 부터는 만31세가 되기에 (독일 워홀 신청기준으로)

생일 전에 어떻게든 빨리빨리 서류를 준비해야했다.


찾아보니 서류도 많지 않았다.

여권 사진, 독일 체류 1년간 보장되는 보험 가입 증서, 여권, 신청서



보험은 종류가 두 개밖에 없어서 둘 중 그냥 싼 걸로 했다.

아프지않으면 되니까, 가진게 체력 하나뿐이니까.

여권 사진은 이전에 취업용으로 찍어둔 사진을 재활용하려했는데,

사진이 과하게 잘 나와서 혹시 본인과 다르다고 할까봐

(엄밀히 말하면 사진에 손을 안대야하는게 맞으니)

새로 찍었는데, 턱이 세개로 나온 몹시 사실적인 사진이었다.

비자에도 사진이 들어가는 줄 알았으면 턱만큼은 어떻게 좀 했을텐데....

그래도 조금 작게 들어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든다


이런저런 글들을 찾으니, 은근 여권사진에서 많이 탈락한다고 한다.

3개월 이내의 사진이어야하는데, 여권 발급을 4년 전에 받아놓고 같은 증명사진을 제출하면 3개월 이내의 사진이 아니라 비자 발급 거부.

기본 문구에 충실해서 준비해야한다는 걸 다시 느꼈다.




그리고 신청비 7만 얼마. 유로 환율에 따라 달라지는데 보통 75000~8만원사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렇게 독일을 번갯불에 콩궈먹듯 정하고 서류를 준비해서 대사관에 216일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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