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의 우리는, 우리도 한 번 문란하게 살아보자고 얘기를 했었다. 어차피 썩어 없어질 몸, 문란하게 살아보자고 농담처럼 진담인듯 웃으면서 얘기했었다. 그리고 문란하게 살아보자는 우리의 다짐을 조롱당하듯, 몇 명은 고기 먹는 비구니와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독일에 간다니까 꼭 연애를 많이 해야한다며, 자유연애를 하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그게 제 맘대로 되나요...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잘 될지는 모르겠네요. 유럽은 피임약이 처방약이라 부인과 진료까지 받아야해서 비쌀거라며 1년치 피임약을 챙겨가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뭐 무슨 일이 생길지는 모르는거니까 두 달치는 챙겨왔는데, 아이고 의미없다...



무튼, 탄뎀파트너를 구했다고 했더니, 독일에서는 섹스를 탄뎀이라고 불러? 라는 답이 돌아와서 숨이 넘어가게 웃었다.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구나... 그 생각을 하니 몇 년전에 했던 얘기가 생각이 났었다. 당신의 욕망은 잘 알겠습니다, 그걸 저에게 투사하지는 마시구요... 서른 넘어서도 문란하게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이 우리를 성녀로 만든다면서 한탄했던 때가 생각나서 그저 우습다.




탄뎀파트너는 서로 다른 모국어 사용자 둘이 서로의 외국어 개인 선생님이 되어주는 언어교환 파트너다. 나는 Michael에게 한국어를 알려주고, Michael은 나에게 독일어를 알려준다. 내가 독일어로 말하면, Michael은 한국어로 대답하고, Michael이 한국어로 말하면 나는 독일어로 대답한다. 한국에서는 Language Exchange로 많이 알려져있고, 여기서는 대부분 탄뎀파트너라고 부른다. 


한국어는 B2 정도의 수준이라고 한다. 처음 만나서 어디서 어떻게 공부할지 어느 요일이 좋은지 시간은 언제가 괜찮은지 영어로 상의했다. 학원에서 나의 수준을 아는 선생님과 더듬더듬 대화하는 것과 독일인과 대화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건 Michael도 마찬가지인듯 했다. 한국어 B2정도면 대화는 유창해야하는데, 단 한마디도 한국어를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B2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Michael 8월부터 오후에 시간이 난다고 해서, 다음 달부터 같이 공부하기로 했다.



그 기간동안은 이메일로 서로의 독어 작문/한국어 작문을 봐주기로 했다. 처음 주제는 모국에 대해서 쓰기, 두번째 주제는 상대국에 대해서 쓰기. 독일에 대해서 쓸 말은 엄청 많은데, 한국에 대해서 쓰려니 욕밖에 쓸 수가 없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쓰면 좀 그럴 것 같다.. 싶어서 다시 써도 항상 가는 방향은 똑같다. 한국은 내게 모국이지만 나에게 직업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독일에 와있다. 하지만 한국이 내게 직업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독일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이런식으로 항상 흘러간다.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걸, 1세계 백인 남성은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일까? 극동아시아의 작은 나라는 현재 그렇답니다. 



무튼, 독일에 살다보니 어떻게든 독일어에는 많이 노출되는 환경인데, 노출만 되고 나아지는게 없는 듯 해서 속상하다. 속상해하다가도 내가 독일에 온지 아직 세 달이 되지 않았다는걸 생각하면, 나 천재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독일에 숫자도 못세는 상태로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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