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시에 까르보나라를 만들면서 보게 된 장관. 이 집이 비싸지 않다면 나는 이 집에서 계속 살텐데, 여럿이 살아서 불편한 점이 물론 있지만, 그걸 다 상쇄할 만큼 이 집은 정말정말 좋으니까. 엄청 큰 욕조도 있고. 부엌도 크고 다 좋은데, 월세가 너무 비싸다는게 문제.




까르보나라를 만드는 동안 해가 떴다. 구름도 오늘따라 유난히 예뻐보이는 것 기분탓이겠지.

오늘은 이 (비싸고) 좋은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주말이다.




평화롭다. 나도 이 평화에 끼이고 싶다.




Collini center in Mannheim




존나 조쿤.




이사를 앞두고 있어서 식재료를 구입하지 않았더니 먹을게 없다. 여기서 말하는 먹을게 없다는건 고기가 없다는 얘기. 물론 빵과 파스타 재료는 언제나 구비되어있으니까 이럴 때는 나의 선택지가 파스타밖에 없다. 토마토 소스보다 크림 소스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대부분 크림 소스 파스타를 만들어먹는다. 우유가 1리터에 600원밖에 안해서, 우유를 콸콸콸콸 넣어서 만든다. 한국에서 만들었을 때는, 우유만 넣으면 맛이 부족해서 생크림도 섞어야했고 치즈도 넣어야했었다. 독일의 우유는 한국의 우유와 뭔가 다른건지 우유만 넣어도 꽤 그럴듯한 크림 소스 파스타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치즈도 넣고 생크림도 넣어서 꾸덕꾸덕하게 만들어서 먹는다. 소스를 넉넉히 만들어서 식빵으로 그릇 닦으면서 먹는 걸 정말 좋아한다.


살찐 사람은 요리를 못할 수가 없다. 살이 쪘는데 요리를 못한다? 개새끼일 확률이 높다.

음 이 얘기는 아마 이전에 쓴 것 같네... 




사진이 딱! 있어야하는데, 새벽에 막 정신없이 먹다보니 사진이 없네... 그래서 아쉬운대로 다른 사진을 올린다.











혹시 존나조쿤의 어원?을 모르시는 분이 계실까봐 존나조쿤 짤방을 준비했다.




나는 이게 인터넷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 아는 짤방인줄 알았는데

나만 너무 인터넷 폐인이라 잘 알고 있을뿐이었다.

랜선 사념체로 살게해주세요.. 제발... 육신따위 필요없습니다





내 티스토리에서 글 쓸 때는 짤 넣지 않으려했는데... 랜선에서 오랜 시간 기거하다보니 짤 없으면 조금 아쉬운 느낌






존나조쿤의 수없이 많은 패러디 중에 이 짤을 제일 좋아한다.

그깟 공놀이...!!!



야구가 뭔데? 하는 나라에서 살다보니 더더욱 내새끼들의 공놀이가 그립다.




그리고 이걸 모르는 사람들도 많길래 같이 캡쳐했다.

카톡 이모티콘 중 이 이미지의 원형이 바로 첫 사진의 존나조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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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 희망을 얘기하는 문법을 배웠다. (영어의 가정법)


두 아이의 엄마는 우리 가족이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했고,

성악 전공자는 유명한 성악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놀랍게도 "그림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게 대체 뭔 소리야... 말을 할 때 뇌를 거치고 말하라고...

말하고 나서 나도 새삼 놀랐고, 다들 놀람.

선생님이 그림 잘그리냐고 물어서 아니라고 그냥 잘 그리고 싶은데 전혀 할 줄 모른다고 답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사람이 그저 부러웠다.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미술에 대한 나의 가장 강렬하고 영원히 가져갈 듯한 기억 하나가 있다. 나는 나와 네 살 차이나는 동생을 데리고 학원을 다녔다. 미술학원도 그랬고, 음악학원도 그랬다. 그런데 미술학원에서 엄마와 통화를 하는 걸 듣게 됐는데, 누나는 학원에 더 안보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게 어린 마음에 너무 슬펐다. 나보다 네 살이나 어린 쟤는 계속 와도 된다고 하는데, 나는 안와도 된다니. 쟤가 그리는 것도 나랑 별 다를 거 없어보였는데 나는 그냥 딱 봐도 미술과 관련없는 삶을 살게 될 거라는게 보였다는건지. 무료로 가르쳐달라는 것도 아니고 돈 내고 배우겠다는데도 오지 말라니.. 물론 20년도 더 지나서 기억이 왜곡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는 그냥 오예!! 그리기 싫은 그림 안그려도 된다!! 이렇게 신나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속상했던 기억은 확실하고, 20년 동안 켜켜이 감정이 쌓여온 것은 확실하다. 만약 그 때 그런 말을 안들었더라면, 나도 그림을 배울 생각을 더 빨리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서른이 넘어서가 아니라, 대학생때라도.


서른이 넘어서 미술학원에 3개월 다녔었다. 미술학원은 생각보다 비쌌고, 박봉의 말단직원의 월급으로는 다니는 것이 불가능했다. 물론 회사 다닐때는 시간이 없기도 했다. 백수로 지내면서 그렇게 긴 시간을 백수로 지낼 줄 알았으면 이것저것 더 많이 배웠을텐데, 나는 금방 취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석사 학위는 그저 긴 가방끈에 불과했고, 같은 학위를 가진 어린 사람들을 뽑는건 어쩌면 당연했다. 쪽팔리니 그런 돈은 타먹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장기백수에게는 한 푼도 귀했다. 뭔가를 배우고 싶어서 배운게 아니라, 그걸 배우면 돈을 준대서 배웠다. 엄밀히 말하면 직업훈련인데, 나는 그 직업을 갖고 싶어서 배운건 하나도 없었다. 처음엔 미술학원을 갔다. 감사하게도, 각종 학원들에는 나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 개설되어있었다. 이 수업을 듣는다고 취업이 되는게 절대로 아니란걸 알지만, 공짜로 뭔가 새로 배우고 싶고, 출석에 비례해서 수당도 나오고. 학원도 손해일 수 없는게, 이 강의에 대한 모든 비용은 국가에서 지급되는 돈이기 때문에, 눈먼 돈을 슈킹하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일뿐이다. 내가 수료한 직업훈련 과정은 "일러스트 전문작가 양성과정" 풉... 3개월 배워서요? 금손들 무시하나요? 됐고, 그 3개월동안 매일 네다섯시간씩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inner peace에 아주 조금은 가까워 질 수 있었다. 내면의 평화라고 직역하면 뭔가 좀 다른 기분. 쿵푸팬더의 그 inner peace.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기 보다, 예전의 그 기억을 치유하기 위해서 다녔다고 하는게 맞겠다. 그리고 매일 네다섯시간씩, 직업이 아닌 다른 뭔가를 한다는 것은 굉장한 명상이 되기도 했다.



그냥, 20년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그들이 부럽다. 특정 색깔을 보고 이 색은 이 색과 어울리겠다. 는 생각이 바로 떠오르는 삶이란 어떤걸까. 나는 12색 색연필을 모두 갖다두고도 서로 어울리는 색을 추려내지 못한다. 서로 보색인 그 색깔들만 겨우 맞추는 정도. 나는 여러가지 색을 보면 다 잘 어울리는 느낌이 든다. 어떤 색이 서로 조화롭고 이런 느낌이 전혀 없는데, 이게 이상하다는걸 알고 엄청 속상했었다. 나는 그림을 너무 잘 그리고 싶은데, 그런 기본적인 감각도 전혀 없이 태어났구나 하는 상실감이 컸다. 내가 못가진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가진 것을 더 발전시키는 방법으로 살아야하는데, 나는 그저 흔하고 흔한 범인이라 그렇게 살기가 쉽지가 않다. 노력하는 중이지만 잘 안된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 방법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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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인 2011년의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유로2012를 직접 보는거였으니까. 그 때는 한국에서 유럽시간으로 살았는데, 요즘은 왜 독일에서 한국 시간으로 살고 있지.. 내 바이오리듬 왜 이러는건지. 지역확인 좀 해주시라며.. 한때 세리에 리그를 즐겨봤던 나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유로 2016이 내게 중요한 다른 이유가 또 있었다. 축구없이 못사는 독일이니까, 결승전에 가게되면 그걸 기념해서 하는 세일들이 많을거기 때문에 누구보다 준결승전에서 이기길 바랬다. 실제로 준결승 진출 기념으로 고속버스 50% 할인도 했었는데, 난 당연히 결승전에 갈 줄 알고 내 미래의 여행들을 예약하지 않는 빙구짓을 했다. 아이고 내 뮌헨 아이고 내 암스테르담 아이고... 다음 유로2020은 어디서 개최되지. 독일이었으면... 그리고 그 때도 내가 독일에 있을 수 있었으면.



축구 시작 두 시간 전의 야외 술집. 이미 만석. 중간에 비어보이는 자리는 예약석이라고.



오늘 같은 날은 당연히 모든 술집이 꽉꽉꽉 찬다. 거의 모든 독일 술집은 커다란 티비가 있다. 당연하다, 맥주마시면서 축구보는게 삶의 낙인 이들에게 맥주만 있고 축구를 못보는건 뭔가 잘못된걸테지. 이 술집은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곳인데, 처음에는 엄청 신기했다. 술집 이름은 City Beach. 내가 사는 만하임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가도 바다가 없다. 그래서인지 이런 종류의 술집이 있다. 바닥에는 바다모래를 깔아두고, 해변가에서 태닝할 때 눕는 그 의자도 곳곳에 있고, 파라솔도 있는 그런 술집. 이런 곳에서 큰 티비로 다 같이 축구 경기보면 꽤 재밌겠지.


사실, 학원에서 친해진 스페인 사람에게 오늘 준결승전 같이 보러 술집 가자고 했더니 축구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내가 귀찮은건 아니지? 정말 축구 안좋아하는거지...? 나는 그 분위기를 같이 느끼고 싶었기 때문에, 혼자라도 가야겠다고 했다. 집에 티비가 없기도 하고. 아시아 여자가, 혼자, 독일에서 국가대항 축구를 본다고??? 그것도 상대가 프랑스인데? 아니,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야. 위험해. 라는 조언을 들었다. 내가 ????? 어차피 독일이 이길건데 뭐가 문제야~라고 했더니, 이기면 신난 기분에 너무 많이 취해서 위험하고, 지게 되면 프랑스 나부랭이에게 졌기 때문에 기분 나빠서 엄청 취해서 위험하다고 한다. 그리고 독일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는, 축구광팬이라는 조언;;도 해줬다. 아 그래.. 두 달 넘게 지내며 이제 적응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많다. 너무너무 가고 싶었지만, 결승전에 같이 갈 친구를 찾기로 하고, 준결승전은 집에서 느리고 작은 화면으로 봤다. 와... 홈어드밴티지... 화가난다 화가나. 경기 내내 독일이 월등히 잘했는데, 결국 개최국이기도 하고 독일이 살짝 느슨해졌던 때를 잘 노렸기도 하고. 1:0도이면 정말 아까운 경기였다고 할텐데, 2:0이라 아쉬워 죽겠다는 표현도 맞지 않는 듯.


새삼 엄마가 항상 나에게 하는 말이 생각났다. "한국 사람은 과정같은건 아무도 생각 안해줘, 결과만 말해. 엄마도 니 과정같은건 안궁금해, 결과만 말해. 어찌됐든 너는 지금 그 나이에 땡전 한 푼 없는 백수야" 예... 뭐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가보다.. 싶지만 워딩 자체는 상당한 워딩이지. 내가 뭘 하든 부자만 되면 된다. 불법이어도? 과정같은건 필요 없이? 싫어 나는, 그런거.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걸어가면서 주변 구경도 하고 샛길로도 빠지고 그렇게 여행하면서 지낼래. 빙빙 돌아가도 어쨌든 나는 계속 걷고 있으니가 어디론가 도착할 수 있겠지. 그 곳에 부디 나를 위한 자리가 있길.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지만, 애초에 천국을 기대한 적은 없고 그냥 내가 앉을 자리 하나를 찾아다니는 길이니까, 어딘가에 나를 위한 자리가 하나는 제발 있길.




믿기 힘들게 축구가 졌고, 새벽 내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밖은 소란스러웠다. 집 바로 옆에 큰 도로가 있는데, 새벽 내내 자동차 굉음이 들렸고, 빵빵소리가 마치 초시계처럼 내내 울렸다. 울부짖는 듯한 소리도 엄청나게 올라왔다. 내가 사는 집이 5층인데도;; 말 그대로 광란이었다. 안나가길 정말 잘한 것 같다.


만하임의 이 좋은 아파트에서 산지는 65일째


두 달 딱 지내니까 이제 거의 완벽히 이 집과 주변에 적응했는데, 다음 주에 이사를 앞두고 있다. 독일의 집값은 상상을 초월하게 비싸다. 얼마인지는 말할 수 없지만 비싸다는 말은 할 수 있다. 그래서 저렴한 집을 찾고 찾았다. 그리고 혼자 살고 싶기도 했고. 똥싸야하는데 화장실에서 누가 안나오면 너무 괴롭다. 대전에 살 때는 변기 막혔을 때 죽을 힘을 다해서 집 앞 롯데백화점에 뛰어갔었는데, 여기는 근처에 화장실이 있지도 않을 뿐더러 있다해도 유료화장실일테니 갈 수가 없다. 그리고 사람의 식사시간은 거의 비슷하니까, 하우스메이트가 점심 먹을 준비를 할 때, 나도 해야한다. 그런데 여럿이서 부엌을 쓰기엔 너무 복잡하다. 부엌이 꽤 큰 편인데도, 한 명이 아닌 여러명이 움직이면 정신없다. 물론 오븐이 한 개이기도 하고. 먼저 식사준비를 시작한 사람이 끝낼 때까지 다음 사람은 그냥 기다리는게 예의처럼 되버렸는데, 배가 고프면 사나워지는 나에게 너무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이래저래 한달 고정지출을 줄이려고 하니, 집세밖에 줄일게 없었다. 운좋게도 꽤 저렴한 (하지만 웬만한 서울 월세는 거뜬히 되는) 방을 구했다. 화장실도 부엌도 다 혼자 쓴다! 화장실도 부엌도 다 혼자 쓰면서 저렴하기까지 하니 방은 엄청 작다. 부엌도 거의 없는 수준에 화장실에 욕조도 없다. 원하는걸 갖지 못하는걸 배워가는게 어른이라고 했다. 나는 그 방에서 살기로 결정하면서, 또 조금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집에 비하면 너무너무 작고 건물도 후지고 주변도 황량하고, 무엇보다 우편함이 검은색이다. 이 집의 우편함은 흰색이라 예쁘고 깔끔했는데.. 무튼, 오늘이 독일에서 지낸지 76째, 만하임의 이 좋은 아파트에서 지낸지는 65일째가 된다. 나는 내가 아직 독일에서 지낸지 3개월도 채 안됐다는게 여전히 신기하다.


한국에서도 어딜가든 적응잘하기 세계 20위안에는 든다고 자부했는데, 조금 더 순위를 높여도 될 듯. 이것도 장점이라면 큰 장점이다. 지나간 것은 그냥 흘러가게 놔둔다. 어차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과거에 얽메여봤자, 나만 힘드니까. 즐거운 기억만 생각만 갖고 앞으로 가다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안나와도 할 수 없다. 어쨌든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중간에 좀 쉬어가기도 하고 누워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처음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상태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할 수 있다. 안빈낙도. 



가진건 체력 하나뿐이라며, 밤새 버스타고 와서 씻고 뭘 챙겨먹을 시간도 없이 바로 학원에 갔다. 학원에서 졸지 않은 것은 정말 초인적인 능력이 마지막으로 발휘된 모양이다. 집에 도착해서 뭘 챙겨먹지도 않고 옷 갈아입고 세수하고 쫌만 자야할 것 같은데.. 몸이... 정상이 아닌 것 같ㅇ... 라며 쓰러지듯 기절했다. 그렇게 기절하고 일어난게 딱 지금. 오후 여섯시. 거의 다섯시간을 이렇게 쭉 잔거다. 보통 낮잠은 길어야 두 시간인데, 생각보다는 할만하다고, 그렇게까지 많이 피곤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겁나 피곤했나보다. 나는 미리 예약하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반성해야한다. 다음에는 부디 이런 짓을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


무튼, 그렇게 기절했다 자고 일어나니 네덜란드에서 사온 튤립 구근이 보인다. 네덜란드 다녀온 기념으로 뭘 좀 사볼까 찾고 찾아봤지만, 물가가 너무 비쌌다. 엽서 한 장에 1유로는 여기도 마찬가지니까.. 엽서를 사도 우표는 우체국에 가야 살 수 없으니 엽서에 대한 뽐뿌는 자연히 사라졌다. 뭔가 기념할만한 뭔가 없을까? 싶었는데, 튤립 구근이 굉장히 싸길래, 샀다. 핑크색 튤립과 푸른색 튤립을 5개씩 샀다. 당장 심고 싶었지만, 다음 주에 이사를 해야하니까. 그런 것들까지 짐을 늘릴 수는 없다. 딱 열흘 후면 심을 수 있다! 그리고는 네덜란드에서 찍은 많은 사진들을 보면서 참 많이 웃었다. 



네덜란드에 가고 싶었던 이유가 세 개 있는데, 세 개는 나중에 나열하고, 그 중 하나는 바로 암스테르담 레터. 앞에서는 도저히 찍을 수가 없는 상태라서 뒤에서 찍어서 좌우변환을 하는게 가장 나을거라는 현지인의 조언에 나는 또 그렇게 따라했다. 하지만 뒤에서도... 저 보이시나요? 월리를 찾아라처럼 저를 아시는 분은 저를 찾아봐주세요........... 나름 브이도 하고 있는데... 왜 이 사진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지...? 그나저나 정말 구름이 환상적으로 예뻤다. 





여행도 좋지만, 역시 나는 잠은 집에서 자야하려나봐... 잠을 못잔건 전혀 아니고 오히려 너무 잘잤는데, 원래 뭘 많이 챙겨다니다보니, 그리고 그걸 이틀 짐으로 늘여서 싸다보니 이것저것 뭘 넣어제껴서... 조금 무거웠달까.



현재까지 이 학원에서 만난 선생님은 총 다섯 명이다. 다소 정신사납게 왔다갔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다양한 발음을 접할 수 있어서 좋은 점도 분명히 있다. 


선생님들이 이 티스토리를 볼 일은 전혀 없겠지만, 혹시라도 같은 어학원에 다닌 사람이 보면 누군지는 알 수 있게, 하지만 정확한 이름은 기입하지 않겠다. 나를 가장 오랫동안 가르친 선생님은 M, 93년생.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통번역을 전공했다. 영어를 굉장히 잘해서 본인이 자꾸 영어가 튀어나오는게 내 독일어에 안좋다고 미안해한다. 나도 그게 내 독일어에는 안좋을 수도 있다는거 알고는 있지만, 나의 정신건강에는 굉장히 좋다. 이 선생님은 수요일마다 학교에 가야해서 다른 선생님이 수업을 맡는데, 첫 달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똑같다. 첫 달의 선생님 S는 영어를 전혀 못했다. 독일어 수업을 배운지 8주차 사흘째인 지금은, 영어를 전혀 못하는 선생님과도 힘들지만 수업을 할 수는 있는데, 첫 달에는 수요일마다 정말 힘들었다. 같이 수업듣던 스페인 남자는 수업을 알아듣지 못하겠다며 수요일마다 결석했다. 그래서 나는 수요일마다 혼자 수업을 들었는데, 정말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 선생님인 Y와 수요일마다 수업하게 됐다. 이 선생님도 영어를 잘 하는데, 내가 영어로 말하려하는걸 제지한다. 무튼 이 선생님과 오늘 첫 수업이었는데, 제목에서 쓴 저 사건이 생겼다.


내가 얼마나 암기에 취약하냐면, 삼각함수 특정 각도들 기본으로 암기하는 그걸 고등학교 수학 과정 내내 못외워서 시험 때면 항상 귀퉁이에 삼각형 두 개를 그려놓고 시작했다. 45도 삼각형과 3060도 삼각형... 영어로 생각하면 I my me mine 변화 테이블을 배운지 두 달째에도 헷갈리고 있다는거다. 그런데 나는 좀 할 말도 있는게, 전부 다 달랐다면 오히려 외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격 남자 정관사가 여격에서는 여자라고. 목적격 남자 정관사가 여격 복수 정관사라고.. 미친 사람의 말처럼 들리겠지만 독일어 아시는 분은 이해하시겠죠... 그니까 영어에서는 정관사 the 하나인데, 독일어는 이게 남성/여성/중성/복수형 이렇게 총 네 종류고, 그걸 주격/목적격/여격/소유격으로 각각 달리 변화한다. 변화하면 아예 겹치는거 전혀없이 전부 다 다르게 변화한다면 차라리 외울 수 있겠는데, 같은걸 어느 격에서는 여자고 어느 격에서는 남자고 이렇게 쓰니까 나는 이게 지금 너무 혼란스러워서 환장하는 중...


근데 내가 이걸 제대로 못외운다는; 다소 망충한 정보가 선생님들끼리 공유되는 듯한 사건이 오늘 생겼다. 오늘 처음 만난 Y선생님과 처음으로 소유격을 배웠는데, 이전에 배운 격 변화들 다 한번 복습해보자고 해서 나는 음 또 책을 읊어야겠군- 싶었다. 선생님이 책 덮고 말해보라고 해서 나는 멘붕... 근데 배운지 두달됐는데 관사 못외우는거 보면 나도 정말 어지간하다.. 어쩜 이렇게 암기를 못할 수 있지...




말로 설명하려니 쓰는 내가 더 곤란해서 표 하나 찾아왔다. 독일어의 성별+격 변화는 이렇습니다. 오 미친..

제발 다음주 안에는 외울 수 있게 해주세요.........






만하임 중앙역 바로 앞에 Kim ha라는 아시아마트가 있는데, 이름이 너무 한인마트 같아서 엄청 기뻐하며 들어갔었던 기억이 있다. 당연히 한인마트 아니고, 중국식재료도 아닌 동남아쪽 식재료만 가득했었다. 그 엄청난 향신료 냄새에 엄청 놀랬던 기억이 있다. 그 곳 말고 다른 아시아마트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서 오늘 가봤다. 한국 식품들이 굉장히 많았다. 부탁받은게 있어서 이런저런 것들을 좀 샀다. 




이런저런 것들을 구경하다가 한국맥주가 있는거 보고 몹시 당황했다. 독일에서 한국맥주를 찾는 멍청이가 있단 말이야??? 소맥이겠지.. 싶었지만 카스가 아니라 하이트뿐이었다. 뭘까.. 독일의 정말 맛있는 맥주들이 대부분 1유로 이하인데, 330ml 하이트를 1,29유로에 대체 누가 사는걸까....




소주를 굳이 이까지 와서 마셔야해? 그것도 3,95유로나 하는데? 싶었는데, 한국인들끼리 마시면 소주를 꼭 마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음, 나는 아는 한국인이 없어서 그런거였구나... 소주 마실 일 없었고, 앞으로도 없었으면... 청하는 좋아하는데, 저 가격에 마실 수는 없다. 




막걸리는 또 왜 있는거지... 옆에 아침햇살도 있었다. 



새우깡이며 온갖 라면들 다 있었지만, 내가 필요한 딱 하나의 물건인 비빔면은 팔지 않았다.


다음 주에 여름 휴가로 옆 방에 사는 중국인이 상하이에 다녀온다고 한다. 한달간 못볼거라고 같이 점심 먹자고 하길래, 난 그냥 초대하는건줄 알고 알았다고 했다. 한시간 후에 다른 방 중국인도 요리를 시작하길래, 어...? 하면서 진짜진짜 아껴둔 비빔면을 꺼냈다. 다같이 식사한다고 중국음식들 차리는데, 나는 식사랍시고 식빵이나 피자를 낼 수 없으니... 어울리지도 않고. 약간 기름진 중국음식에 아주 약간 매운 맛이 있는 비빔면이 잘 어울릴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한국에서 50% 추가된 비빔면 특별판;;을 독일 가져오려고 사놨었다. 그런데 캐리어 싸다보니 도저히 넣을 수가 없었고, 동생이 말하길 한인마트가면 전부 다 판다길래 마지막에 뺐었다. 그리고, 한인마트같은건 만하임에 없었고, 동생에게 부탁했었다. 만하임올 때 비빔면 좀 사다줘... 고맙게도 몇 개 사다줬었다. 아끼고 아껴온 내 비빔면ㅠㅠㅠㅠ을 꺼내서 만들었고, 나 이거 안꺼내고 계속 넋놓고 있었으면 진짜 이상한 사람될 뻔 했다....


요리의 이름들을 다 물어봤는데, 중국어가 너무 어려워서 기억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요리들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특히 가장 앞쪽의 저 고기요리는, 무려 20시간을 저 상태로 쪘다고 한다. 만두먹을 때만 찜기를 쓰던 나는 고기를 찌니까 이렇게나 부드럽구나... 하고 놀랬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지금, 한국도 갈비찜 있네? 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내가 요리할 때, 고기를 쪄본 적은 없다... 고기는 무조건 직화!!! ㅋㅋㅋ



가장 멀리에 보이는 저 비빔면이 3개 분량이다. 대충 다른 음식들의 양도 가늠될듯... 





한국 누들이라고 하니, 국물이 있는 라면을 생각한건지, 아니면 비빔면이 아직 독일에 없어서 얘네가 모르는건지 물 없는 한국 누들은 처음 본다고 했다. 색과 향이 약간 매운거 같다길래, 하나도 안매워~~ 라고 대답해줬다. 나의 말을 너무 신뢰한건지 중국인 두 명이 한입 크게 먹고 맨밥과 물을 계속 먹는걸 봐야했다... 미안... 이정도의 매운건 중국인에게 맵지 않다고 생각했어.. 같은 동북아시아니까...? 하지만 이내 맵지만 땡기는 맛이라는걸 알아챈건지 인기 폭발이었다. 씬나게시리... 비빔면을 밥 반찬 삼아서 먹는걸 보게 될 줄이야 ㅋㅋㅋ


부엌이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라 모든 인원이 다 요리를 할 수는 없었고 어쩌다보니 여자 세 명이 요리를 했는데, 중국 남자도 요리를 잘한다는건 알고 있었다. 이 누들 어떻게 만들었냐고, 본인도 이걸 만들어 먹고 싶다고 물어서 나는 몹시 당황했다... 그냥 끓이면 되는데... 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소스는? 이라고 묻길래 소스는 패킹에 다 들어있어...... 미안... 이런 대답밖에 못해줘서ㅠㅠㅠ 하지만 정말이란다... 이렇게까지 인기있을 줄이야. 너무 즐겁다. 역시 같은 문화권에 있다는건 종종 이렇게 즐거운 일을 만들어준다.



중국인들에게 이 얘기 해주는거 언제나 인기 폭발이라 10년;만에 또 하게 됐다. (호주에서도 중국 학생과 식사할 일 있었을 때 이 얘기 해준 적 있었는데, 그 때도 인기 폭발이었다.) 중국 유학생이 올린 글이었는데, 가끔 중국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처음 식사를 하게 되면, 본인도 모르게 한국 식사 예절대로 음식을 전부 다 먹게 되고, 중국인들은 그들의 식사 예절에 따라 음식이 부족했나봐ㅠ 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오늘도 이 얘기 해줬더니 중국인들 다들 너무 좋아한다. 한국 테이블 매너는 준비된 모든 음식을 다 먹는거라고 했더니, 엄청 놀란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준비한 음식을 다 먹냐며 놀란다. 그것이 한국 식사 예절이란다... 물론 중국 식사 예절은 그렇지 않은거 알고 있어서, 한국인 유학생이 중국에서 유학하면서 중국 친구를 사귈 때 오해를 많이 받는다고 했더니 막 웃는다. 한국은 중요한 식사자리에서 잘 먹는걸 보여주려고 소화제를 미리 먹고 식사자리에 간다는 말도 해주고 싶었는데, 나의 영어는 너무 짧은거지.. 그리고 한국에서 먹듯 엄청 빨리; 막 신나서 급하게 30분쯤 먹고 내가 좀 지쳐보이니까, "한국 예절 지키지 않아도 괜찮아! 여긴 독일이고, 우린 중국인/이탈리아인이야!" 라고 했다 ㅋㅋ (옆방 중국인의 남자친구가 이탈리아인이다.) 유쾌한 중국인들이다. 저런 호방함 좋아... 준비된 음식을 모두 먹어야하는 한국인의 식사 예절과 초대받은 사람이 모든 음식을 먹지 않도록 넉넉히 요리를 만들어야하는 중국인의 식사 예절이 만나면...? 방패에 창이 꽂혀야한다....... 큽.......


그렇게 두 시간 넘;게 점심을 먹고, 식사를 마칠 때 쯤 이탈리아인이 얘기한다. 우리는 모두 한숨 자야해. 그래서 내가 거들어줬다. 당연하지! Because stomach will work! 이런 어이없는 영어에 다 웃어준다. 역시 우리는 모두 영어가 짧고, 짧은 영어에 모두 행복할 수 있다. 세계인은 하나... (한숨 자고 바로 쓰는 글, 글쓰는 현재 독일 시간 2016/06/26 4:47pm)


브렉시트! 통과! 이런 날엔 읽지 못하는 독어 신문이어도 기념삼아 사둬야 할 것 같아서 서점에 갔다. 그런데, 독일분들.. 영국이 꺼지든 있든 상관없다는거 너무 대놓고 표현해주시는거 아닌지... 6/24 당일 신문에는 브렉시트가 1면에 실린 독일 신문이 하나도 없었다. 적어도 바덴 뷔르덴베르크주 만하임에서는 그랬다. 딱 하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는 1면에 다루고 있었는데, 불문판도 독문판도 있었지만, 너무 비싼 그대.. 그냥 사진만 찍어왔다... 한국에서도 르몽드는 이렇게 비싼가?




그리고 다음 날인 오늘, 드디어 1면에 브렉시트가 깔렸다. 그 중에서 가장 신나보이는 이 신문을 샀다. 간단한 디자인인데, 굉장하다. 




그리고 이건 어제 신문 찾아다니다가 본 샤를리 엡도. 파리 테러로 처음 알게 됐는데, 꽤 유명하다고 한다. 독일에서도 불문판을 꽤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미국 대통령으로 트럼프가 될 날을 프랑스도 기다리고 있는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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