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잘 모르던 어릴 때의 나는, 명절때마다 할머니댁에 가면 한강이 그렇게도 좋았다. 왜 큰 도시들에는 강이 반드시 흐르는지 이미 마음으로 알 수 있었다고 해야하려나. 하지만 나의 도시에는 강이 없었고, 나는 서울에서 살게된다면 꼭 강이 보이는 그 곳에서 살고 싶었다.


조금 현실을 알게되자, 평생 일한 돈으로 아파트를 사려해도, 강이 보이는 아파트는 구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뭐, 괜찮다. 어차피 나는 서울에 살 일은 없을테니까.


그렇게 생각해온 나를 조롱이라도 하듯, 서울에서 살게 되었다. 나의 가진 돈으로는 내가 원하는 동네에서는 반지하나 옥탑방만 살 수 있었고, 더 교통이 안좋은 동네로 가야만 햇빛을 볼 수 있는 단칸방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원룸이라는 표현보다 단칸방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이건 온전히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에. 원룸이라고 하면 슬픈 느낌은 딱히 없는데, 단칸방이라고 하면 몹시 슬프다. 나는 단칸방이라는 단어가 주는 조금은 슬픈 그 느낌이 좋다.



반지하와 옥탑방 중에서는 굳이 따지자면 옥탑방이 더 좋은데, 그 당시에 유행한 어떤 드라마때문에 옥탑방도 조금 시세가 올랐었다. 내겐 선택권이 전혀 없었다. 나는 합정동의 반지하에서 첫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아마 지금은 합정동의 반지하마저도 그 때보다 꽤 가격이 올라서 들어가지 못할 것 같다. 내가 합정동에 살 때는 메세나 폴리스가 지어지던 때였고, 인부 몇 명이 안전 사고로 사망하는 기사가 뜨고 그러던 때였다.


내가 합정동을 고집했던건, 내가 갈 수 있는 한강 공원이 있는 동네중에 그 당시에 가장 저렴했기 때문이다. 저렴하면서도 망원 홍대 신촌이 가까워서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영화관과 대형서점에 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학교도 가깝다고 말하면 가까웠다. 지하철을 타지 않고 조금 운동하는 셈 치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기에. 학사일정이 워낙 빡빡해서 일주일에 겨우 한두번밖에 못갔지만, 한강공원에서의 산책은 굉장히 행복했었다. 내가 반지하에 살고 있다는걸 잊을 만큼.





이렇게나 사족이 길다니....

무튼,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바라기만 해왔던 강이 보이는 아파트를 덜컥 계약했다. 이 집은 나의 수준에 비해 굉장히 비싸다. 나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직업이 없고 신원도 불확실한 외국인에게 저렴한 집을 내어줄 독일인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조금 비싼 집을 학원을 통해서 보게 되었는데, 처음에 이 집의 가격을 듣고는 너무 비싸서 갈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당장 다음주부터 어학원 수업이 시작될거고, 나는 이 도시에서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해서 집을 구해야하는건데, 그건 또 너무 복잡한 일이었다. 내가 언어가 안되서 그러는거니 비싸도 이 집을 계약했다.


집의 상태가 굉장히 안좋은데 가격만 터무니없이 비싼거였다면, 내가 그렇게까지 많이 고민하지는 않았을거다. 하지만 집이 굉장히 좋고, 그에 맞게 가격이 비싼거라면, 돈이 부족한 내 탓을 해야지 누구탓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더 저렴한 집을 찾자니, 나는 당장 계좌를 만들어야한다.


독일에서는 거주자등록(Anmeldung)이 굉장히 중요하다. 독일에 거주하는 사람은 누구나 거주자등록을 해야한다. 물론 안하고 살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들은 행정처리를 전혀 할 수 없다. 독일인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외국인이라면, 이 거주자등록이 되지 않은 사람은 계좌를 만들 수가 없다. 아이러니하지만, 계좌가 없는 사람은 독일 부동산을 끼고 집을 거래할 수가 없다. 계좌를 열려면 집주소가 있어야하고, 집을 얻으려면 계좌가 있어야한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하겠지만, 여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계좌가 없어도 거래할 수 있는 집은 조금 비싸도 그 값을 내가 지불하는 셈 치고 계약을 해야한다. 그래야 내가 계좌를 열 수 있으니까. 3일에 집을 봤고, 4일에 바로 이사하는 계약서를 썼다. 계약서는 전부 독일어로 되어있었는데, 영어버전은 없나요... 하니까 괜찮다고 한다. 학원과 연결된거라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조금 두렵긴 했다. 혹시... 하는 마음이 없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큰 맘먹고 계약한, 내 방에서 보는 해지기 직전 풍경. 




주방에서 본 해지는 풍경





첫날 보게 된 이 두 장면이 월세의 반쯤은 다 해먹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매일 아.. 월세 너무 비싸ㅠ 하고 살기엔 내 집은 너무 쾌적하고 넓고 좋기만 하기에, 그저 즐기면서 살기로 생각했다. 물론 나 혼자 사는 집은 절대 아니다. 혼자서 이렇게 크고 좋은 집에 살다가는 매달 몇 백만원을 내야할지도... 나 포함 총 네 명이 같이 살고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