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호란이 2015년에 썼던 글을 몹시 좋아한다. (이 글을 꼭 읽고 제 글을 읽어주세요, 꼭이에요). 따로 제목이 있진 않지만, 글을 다 읽고 나면 특정 문장을 자꾸만 입으로 소리내어 말해보게 된다. "나무는 고통을 정서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나는 그간 많이 아팠다. 어떻게든 하루 한 끼는 먹으며 살았지만, 행복한 일도 즐거운 일도 딱히 없기에 인스타그램도 티스토리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위에 링크한 호란의 글 속에서처럼 나는 주변사람들과 영혼없이 웃고 떠들었고, 속으로는 웃고 떠드는 내 자신을 또 혐오하고 가여워하고 있었다. 나는 언제쯤 아프지 않을까, 언제쯤 조금 정상궤도의 삶을 살 수 있을까 바라고 기다리면서 그렇게 시간을 문자 그대로 죽이고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야하는지, 알지 못했다. 다들 그렇게 독일겨울이 힘들다고 하기엔 나는 이미 작년 가을즈음부터 고장이 났었다. 그리고 왜 그 상태가 되었는지 모른 상태로 하루하루 한달한달 그리고 무려 세 번의 계절이 지났다. 나는 최근 그 이유를 알게 되었고 스스로가 또 너무 한없이 가여워서 살 수가 없었다. 진작 알았어야했는데, 미처 알지 못했던 내 자신이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작년 이맘때의 나는 독일어에 허덕이고 있었다. 재밌지만 재미있지 않았던 새 언어 배우기. 그리고 늘지 않는 실력. 매달 530유로씩이나 내야하는 비싼 학원을 다니면서 전혀 달라지는게 없어서 괴로웠다. 공부는 재밌지만, 공부를 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결과에 매번 괴로웠다. 그렇게 독일어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학원 수업 진도의 속도에 비해 내 스스로의 공부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학원을 잠시 그만두었고, 나는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만두고서야 느낄 수 있었던 너무나도 당연했던 점은, 강제적으로 매일 3시간씩 듣던 독일어는 생각보다 효과가 꽤 좋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언어를 잃었다. 독일어도 못하면서 무슨 언어를 잃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주변 환경이 한국어가 아닌 상태였기에 나는 언어를 잃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밖을 나가면 모든 곳에서는 독일어가 들려오는데, 나는 분명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은 삶을 세 계절이나 보냈다. 2011년에 구입한, 낡은 노트북이 켜지지 않는 날이 많아졌고, 굳이 켜지 않다보니 켜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문제는, 핸드폰을 새로 깔면서 각종 앱 연동에 문제가 생겼다. 다른 앱들은 뭐 어떻게든 찾으면 되는거였는데, 카톡은 이전에 쓰던 번호가 필요하다고 한다. 개인적인 사정과 유난유난 개유난으로 한국에서 쓰던 번호로 카톡을 가입한 적이 없었던 나는, 사흘에 한번 꼴로만 켜지는 노트북에서만 카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과 연락하는 것도 뭔가 죄송스러워서 연락을 뜸하게 했더니, 동생에게 와츠앱(외국 메신저)으로 '엄마가 누나랑 연락이 안된대'같은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행복하자고 결정한 독일행인데 많은 사람에게 걱정을 끼쳤다. 결국, 핸드폰에는 독일 번호로 새 카톡을 깔아야만 했다.


놀랍게도 최근 차차 상태가 좋아졌고, 그 이유를 다양히 찾아본 결과, 아마 상태가 좋아지는 것의 시작은 모국어로 쓰여진 새로운 책을 읽었을 때 즈음이었던듯하다. 사실 모국어로 된 책이 나를 치료했다! 고 하기엔, 게으름부리며 + 특별히 도움이 되지도 않는거 같은데 매달 수십유로의 돈이 아까운 마음도 들고 해서 그간 먹지 않았던 영양제를 다시 챙겨먹기도 했다. 그리고 거의 1년을 고장난 씽크대로 살다보니 집에서 요리를 안해먹게 되었었다. 최근, 집 관리인이 씽크대를 고쳐줘서 더 이상 화장실에서 사방천지에 물 튀어가며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된 점도 큰 변화이다. 물론, 열흘 전쯤부터 해가 쨍쨍해진 것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무엇 하나가 그간의 무기력함의 절정 속에서 죽고 싶지만 죽지도 못하는 상태에 있던 나를 다시 살 수 있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복합적이게 보이는 다양한 이유 속에서 가장 첫 부분에 있는건 역시나 모국어로 된 책이다. 참 이상한 점은 나는 활자에 중독된 사람이라 트위터를 너무 좋아하고, 한국어로 된 뉴스도 매일 잘 읽고, 한국 예능을 같이 보며 웃을 수 있는 남자친구도 있고, 종종 같이 밥먹자거나 커피마시자거나 하는 지인도 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니 사실 큰 도움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모국어 굶주림을 채워주지 못했던 것 같다. 1년 만에, 모국어로 쓰여진 소설을 읽고 나니 그 잊고 있었던 행복함의 게이지가 쭈욱 채워졌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들르게 된다면, 다른 무엇보다 크레마를 꼭 사올 것이다. 종이책은 독일에서 구하기도 어렵고 짐도 되니 어쩔 수 없지만 모국어로 된 책은 꼭 꾸준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기간의 한정이 있는 비자로 살아가는 외국인 신분이면서 세 번의 계절을 이렇게 흘러보낸 것은 엄청나게 멍청한 짓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