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에 희망을 얘기하는 문법을 배웠다. (영어의 가정법)


두 아이의 엄마는 우리 가족이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했고,

성악 전공자는 유명한 성악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놀랍게도 "그림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게 대체 뭔 소리야... 말을 할 때 뇌를 거치고 말하라고...

말하고 나서 나도 새삼 놀랐고, 다들 놀람.

선생님이 그림 잘그리냐고 물어서 아니라고 그냥 잘 그리고 싶은데 전혀 할 줄 모른다고 답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사람이 그저 부러웠다.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미술에 대한 나의 가장 강렬하고 영원히 가져갈 듯한 기억 하나가 있다. 나는 나와 네 살 차이나는 동생을 데리고 학원을 다녔다. 미술학원도 그랬고, 음악학원도 그랬다. 그런데 미술학원에서 엄마와 통화를 하는 걸 듣게 됐는데, 누나는 학원에 더 안보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게 어린 마음에 너무 슬펐다. 나보다 네 살이나 어린 쟤는 계속 와도 된다고 하는데, 나는 안와도 된다니. 쟤가 그리는 것도 나랑 별 다를 거 없어보였는데 나는 그냥 딱 봐도 미술과 관련없는 삶을 살게 될 거라는게 보였다는건지. 무료로 가르쳐달라는 것도 아니고 돈 내고 배우겠다는데도 오지 말라니.. 물론 20년도 더 지나서 기억이 왜곡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는 그냥 오예!! 그리기 싫은 그림 안그려도 된다!! 이렇게 신나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속상했던 기억은 확실하고, 20년 동안 켜켜이 감정이 쌓여온 것은 확실하다. 만약 그 때 그런 말을 안들었더라면, 나도 그림을 배울 생각을 더 빨리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서른이 넘어서가 아니라, 대학생때라도.


서른이 넘어서 미술학원에 3개월 다녔었다. 미술학원은 생각보다 비쌌고, 박봉의 말단직원의 월급으로는 다니는 것이 불가능했다. 물론 회사 다닐때는 시간이 없기도 했다. 백수로 지내면서 그렇게 긴 시간을 백수로 지낼 줄 알았으면 이것저것 더 많이 배웠을텐데, 나는 금방 취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석사 학위는 그저 긴 가방끈에 불과했고, 같은 학위를 가진 어린 사람들을 뽑는건 어쩌면 당연했다. 쪽팔리니 그런 돈은 타먹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장기백수에게는 한 푼도 귀했다. 뭔가를 배우고 싶어서 배운게 아니라, 그걸 배우면 돈을 준대서 배웠다. 엄밀히 말하면 직업훈련인데, 나는 그 직업을 갖고 싶어서 배운건 하나도 없었다. 처음엔 미술학원을 갔다. 감사하게도, 각종 학원들에는 나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 개설되어있었다. 이 수업을 듣는다고 취업이 되는게 절대로 아니란걸 알지만, 공짜로 뭔가 새로 배우고 싶고, 출석에 비례해서 수당도 나오고. 학원도 손해일 수 없는게, 이 강의에 대한 모든 비용은 국가에서 지급되는 돈이기 때문에, 눈먼 돈을 슈킹하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일뿐이다. 내가 수료한 직업훈련 과정은 "일러스트 전문작가 양성과정" 풉... 3개월 배워서요? 금손들 무시하나요? 됐고, 그 3개월동안 매일 네다섯시간씩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inner peace에 아주 조금은 가까워 질 수 있었다. 내면의 평화라고 직역하면 뭔가 좀 다른 기분. 쿵푸팬더의 그 inner peace.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기 보다, 예전의 그 기억을 치유하기 위해서 다녔다고 하는게 맞겠다. 그리고 매일 네다섯시간씩, 직업이 아닌 다른 뭔가를 한다는 것은 굉장한 명상이 되기도 했다.



그냥, 20년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그들이 부럽다. 특정 색깔을 보고 이 색은 이 색과 어울리겠다. 는 생각이 바로 떠오르는 삶이란 어떤걸까. 나는 12색 색연필을 모두 갖다두고도 서로 어울리는 색을 추려내지 못한다. 서로 보색인 그 색깔들만 겨우 맞추는 정도. 나는 여러가지 색을 보면 다 잘 어울리는 느낌이 든다. 어떤 색이 서로 조화롭고 이런 느낌이 전혀 없는데, 이게 이상하다는걸 알고 엄청 속상했었다. 나는 그림을 너무 잘 그리고 싶은데, 그런 기본적인 감각도 전혀 없이 태어났구나 하는 상실감이 컸다. 내가 못가진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가진 것을 더 발전시키는 방법으로 살아야하는데, 나는 그저 흔하고 흔한 범인이라 그렇게 살기가 쉽지가 않다. 노력하는 중이지만 잘 안된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 방법밖에-


'aus Deutschland > Mannhei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주말.  (0) 2016.07.09
새벽 다섯시에 까르보나라를 먹는 삶.  (0) 2016.07.09
유로2016, 준결승전  (0) 2016.07.08
독일에서 지낸지 76일째  (2) 2016.07.07
I'm BACK!  (0) 2016.07.0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