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10번출구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일어난지도 열흘이 지났다. 믿기 힘든 사건이고, 온라인의 여혐이 현실로 올라온 상징적인 사건 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한국여자들이 트위터에서 #살아남았다 라는 해시태그로 직접 경험한 범죄 타켓이 되었다가 살아남은 경험을 덤덤하게 얘기하는 것을 보고 착찹해졌다. 여자들의 정신력을 노동력을 아니 여자의 모든 것을 갈아야만 유지되는 사회라면 그게 정상적인 사회는 맞는걸까?


출산율이 낮아졌다고, 이기적인 여자들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여자 동료가 출산휴가를 내면 싫어한다. 출산휴가로 한 명이 빠졌을 때 그 인원을 채워주지 않는 회사를 탓하지 않고 여자를 탓한다. 회사는 본인이 상대할 수 없는 커다란 존재고, 여자는 만만하니까. 어차피 그 여자 동료는 출산휴가 끝나도 같은 자리로 복귀 못할거 아니까. 그러면 그 여자는 동료가 아니라 이제 나보다 뒤쳐진 직원 중 하나가 되니까. 정말정말 낮은 확률로 어찌 같은 업무로 복귀한다해도 애가 아프네 어린이집에서 무슨 행사가 있네 하면서 자꾸만 조퇴하고 휴가쓰고 할테니까, 회사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사람이 될거니까 계속 더 싫어한다. 그런데, 애 아플 때 아빠가 가면 안되는건가? 한국에서는 거의 없는 개념이긴 하지만, 만약 싱글대디일 경우에 애가 아프면 남자도 조퇴할 수도 있고, 애 어린이집에 엄마랑 아빠가 같이 가야하는 그런 행사라면 아빠도 아이 일이라고 휴가를 낼 수도 있어야하는 것 아닌가? 왜 여자만 아이때문에 조퇴하고 휴가내야하지? 아빠는? 여자 혼자 애 낳았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그렇게 아이가 아프고 어린이집에 일이 있고 할 때마다 휴가를 자꾸 쓰는게 눈치 보이니 아이 엄마는 - 어쩌면 그 모지리보다 더 일을 능률적으로 잘 했을지 모르는 생산인구 한 명이 - 퇴사를 한다. 그리고 아이들 어린이집 데려가고 데려다주고 하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집안일을 하며 지낸다. 직장인이었을 때는 맞벌이니까 집안 살림을 아주 못해도 괜찮았지만, 이제는 전업주부니까 집안일을 완벽하게 하고 싶어서 무리를 한다. 아이들 등하원 시켜줄 때 가끔 까페에서 커피 한 잔 하는게 삶의 낙. 그런 아이엄마들을 여성혐오자들은 맘충이라고 욕한다. 돈도 안벌면서 몇천원짜리 커피로 사치한다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고학년이 되면서 학원도 다니기 시작하면 아이들 학원차가 집앞까지 다 데려다주니까 아이에게 예전만큼 손은 가지 않는다. 그리고 살벌한 사교육비때문에 일을 다시 해볼까하는 마음이 든다. 이미 5년정도를 주부로 살았으니 전문직을 제외한 대부분의 여자들은 예전의 직장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그나마 할 수 있고, 그 나이의 아이 있는 여자를 뽑기도 해주는 일이라고는 마트 캐셔밖에 없다. 이런 여자들 전체를 한국사회는 "경단녀"라고 부른다. 된장녀, 맘충, 이제는 경단녀, 그놈의 女女女女女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건 영원히 2등 시민일 수 밖에 없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서 항상 하등한 존재로 여겨졌으니까. 거지같은 가부장제도는 한국여자의 뼈를 갈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는 제도다. 전통적으로는 제사 때 음식을 남자가 해야한다. 그런건 쏙 숨기고 그 힘든 제삿상 차리기는 전부 여자가 도맡아한다. 그리고는 여자는 제삿상에 절도 못하게 한다. 우리집 성씨가 아니라고 한다. 언제는 이 집으로 "시집"을 왔다고 하더니, 친정에 가면 시집간 딸은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하고, 결혼한 여자는 어디에 속할 수 있는건지. 하지만, 성씨때문에 그런건 절대 아니라는거 딸들은 안다. 나는 아빠와 같은 성씨를 가졌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제삿상에는 절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릴 때, 다들 서서 절하길래, 심지어 나보다 네살이 어린 남동생도 절을 하길래 나도 동생옆에서 절했다가 부모님을 곤란하게 한 적도 있다.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절을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내가 성별을 선택하여 태어났으면, 그것은 내가 다 감수해야할 것들이다. 하지만 나는 성별을 선택한 적이 없다. 태어나고 보니까 여자였다. 그것도 이 지옥같은 한국에서. 전생이 있고 그 업으로 현생의 내가 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난거라면 전생의 나는 뭔가 굉장히 큰 잘못을 했을테지. 2500만명의 전생이 궁금해졌다.



명품가방을 사달라고 하는 여자친구를 둔 남자들은 인터넷에 얼마나 많은지, 다들 밖에 나가서 바람도 쐬고 좀 하지.. 그렇게 사람 안만나고 방에서 상상만으로 여자랑 사귀고 그 상상속의 여자친구가 루이비통 사달라고 해서 된장녀라고 욕하고. 에르메스도 아니고 루이비통이 왜, 루이비통은 명품가방이라는 그 카테고리 안에서는 거의 저가형인데. 백만원짜리 에르메스 8만원짜리 샤넬 립스틱 이런 소리는 좀 하지 말도록 하자. 톰포드 립스틱을 쓰는 회사동료에게 **씨는 알뜰해서 샤넬 립스틱 같은건 안쓰시나봐요~ 같은 소리를 들었다는 도시괴담같은 소리를 볼 때마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여성혐오를 하는 부류들에게 된장녀의 상징은 루이비통 스타벅스 샤넬 립스틱이니까. 스타벅스가 얼마나 저렴한지 모르는 사람은 영원히 모르겠지. 물론 몇몇 메뉴들은 비싸기도 하지만, 스타벅스=된장녀 이 공식은 정말 멍청하다. 매일 끼니당 1500원짜리 김밥을 먹어야한다면 4100원짜리 아메리카노는 굉장히 비싸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몇 시간의 술자리에 수만원을 그냥 턱턱 쓰면서 4100원짜리 아메리카노가 비싸다니. 그냥 여자가 돈쓰는게 존나게 싫다고 말을 해. 여자가 나보다 더 좋은 직업을 가져서 지금 내가 취업을 못하고 있어서 배알 꼴린다고 솔직히 말을 하란 말이야. 그런 말은 남자가! 자존심 상하게! 할 수가 없겠지, 그 죽일놈의 자존심. 그거 본인들이 좀 챙기시라구요. 누가 웅야웅야해줘야 채워지는 자존심이라면 원래부터 없는거 아닌가?




나는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꽤 오래 했다. 거기서 사람들도 직접 많이 만났고, 연애도 여러번 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성별에 상관없이 커뮤니티를 하는게 즐거웠다. 그런데 여자들이 많은 커뮤니티는 뭔가 조금 안맞는 부분들이 있었다. 마치 돼지고기 얘기하듯이 부위별로 쇄골은 손목뼈는 발목 둘레는 어쩌고 하면서 여자의 몸에 대해서 굉장히 억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미용 몸무게라는 것에 대해서 다들 환호하고 소망했다. 미용몸무게는 키에서 15를 빼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43키로여야해.... 중학생때도 이미 50키로 넘었던거 같은데......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몇몇 카테고리가 남자들이 좋아하는 것들과 닿아있었다. 전자기기, 사진, 필기구 등등.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커뮤니티를 하기 시작했는데, 여자를 항상 원한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살빼네 마네 하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서 편했다. 처음엔 내가 여자인걸 굳이 알리진 않았고, 그렇다고 숨기지도 않았다. 숨겨야한다는걸 몰랐기 때문에. 처음 두 커뮤니티에서 내가 여자인걸 알리고 나서부터 뜻밖의 여왕벌;이 되고 나서는 이게 뭔데 내가 넷카마일 수도 있는데 왜 내가 여자라고 이렇게 떠받들지? 싶어서 조용히 탈퇴했다. 그 후로는 거짓으로 남자인 척을 했던건 아니지만, 내가 여자라는걸 알 수 있는 단서는 가급적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근데 또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다보니 그런 자리들에 나가게 되고, 여자라는게 알려지면 조금은 곤란한 상황들이 생겼다. 커뮤니티 참 재밌게 잘 놀았는데, 내가 여자라는게 알려지기 전까지는 그저 편했는데... 


(아무말대잔치 카테고리니까, 특별히 이번 사건은 내게 정말 엄청나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아무말대잔치 중의 대잔치를 벌이고 있다). 무튼 그런 다양한 "남성" 커뮤니티들이 이번 사건에서는 하나로 결집했다.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지 말라!" 야 니네 학교 다닐때 공부 못했지?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다니 사건 파악이 전혀 안되잖아. 아니면 충분히 파악은 되는데 이걸 여혐사건으로 규정해버리면 니네가 지금 하고 있는 여혐이 문제될까봐 그러는거 아니고? 멍청한 놈들... 그런 멍청한 유전자는 진작에 멸종했어야하는데, 왜 2016년에까지 숨쉬고 있는지 모르겠다야. 





나는 사람이 상처를 통해서 성장한다고 말하는건 상처주는 사람들이 본인들 편하자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상처를 통해서 성장한다는건 내가 할 수 있는 얘기지 상처준 사람들이 합리화하려고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지금은 다 잊었다고 생각한 상처도 다시 들춰보면 여전히 아프다. 성장은 나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해줬던 소수의 사람들 덕분이었다. 성장을 들먹거리면서 인간을 난도질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피하고, 피할 수 없으면 반드시 맞서야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여자 혼자 무언가를 상대로 맞서다가는 번화가에서 칼로 찔려 살해당하는 일을 겪게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함께해야한다. 여럿은 혼자보다 강하다.








이래도 내가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염세주의자야?

나는 지나치게 긍정적인 사람인데, 세상이 나를 부정적이게 만들잖아-














내말이, 남자가 여성에게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남자로부터의 보호를 안해도 되잖아요?













많고많은 외국어로 된 포스트잇 중 (영어라 읽을 수 있기도 했지만) 국격!을 제대로 보여준 포스트잇

I'm so sorry you had to go because you were a woman. We fight everyday in Iran



이거 참 웃을 수도 없고...









그리고 이 포스트잇.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다 서울에 살고, 나는 지방에서 왔다갔다 하니까 지겹도록 들었던 말이였고, 들을 때마다 어련히 잘 도착하겠지 뭘 도착하면 연락하래.. 싶었는데, 혹시 내내 이런 의미로 한 말이었을까? 나는 이제야 알았다.









혹시라도, 이런 글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미안하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이렇게나 한국은 여자에게 살기 힘든 나라라고. 

그리고, 이 글이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면, 너무 고마워하지 말아요. 당연한 듯 받는 것도 때론 멋있으니까. 물론 항상 그러면 안됨.







보고 엉엉 울었던 포스트잇 하나가 있는데, 이제야 찾아보려니 도저히 안찾아져서 글자로만 남긴다.


(흰 국화 위에 붙은 노란 포스트잇) "그 어떤 꽃도 미래의 네 꿈보다 예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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