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가까이의 짧은 여행을 해서 그런지

기내식이 나오는 여행은 거의 해본 적 없을 뿐더러

(나와봐야 뭐 샌드위치 나부랭이정도....)

일반 항공의 경우 기내식이 나오는 세네시간 정도의 비행도

다 저가항공을 타고 다니니

물 한 잔도 돈주고 마셔야하는... 그런 가난한 여행을 해야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에는!!!

기름이 펑펑나는 나라의 항공사! 돈이 넘쳐나는 나라의 비행기!

딜마티가 기내에서 무료로 무한으로 제공되고

술쟁이들은 원없이 술을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다는

한 번 이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고나면

아에로플로트나 중국동방항공이나 다 씹어먹게 되는

엄청난 돈잔치의 향연, 에티하드!!!



네, 제가 바로 그 에티하드를 타고 독일을 가게 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ㅅ //




우선 기내식이 나오기도 전부터

탑승할 때 본 남자승무원 세 명이 다 너무 잘생겨서

아 우선 만족, 행복해....

뼈대가 다르다는게 이런거구나... 호주에서와는 또 다른 느낌의 외국인들



비행기를 타자마자 간단 기내식을 먹고, 한시간만 딱 자고 내내 깨있으니

엄청나게 허기가 몰려왔다.

딜마티를 계속 마셨지만, 배고픈거랑 물배차는건 다른 이야기...


아 왜 밥 안주냐... 밥 달란 말야....

허기가 지니까 배가 아파왔다

아이고 누가 보면 일주일은 굶은 줄 알겠다며... 몇시간 굶지도 않아놓고ㅠ

위장새끼 일 좀 천천히 해주시겠어요?



그렇게 배가 아파서 몸이 반으로 접혀질 때 쯤

구원처럼 이드리스 엘바;가 내 특별식을 들고 나타났다

어디 아프냐는 말과 함께

아니 배고파서...라고 하니까 너 진짜 재밌는 애라고 막 웃고 갔다

미안하지만 진짜였단다....



대부분의 항공사에서 특별식은 추가비용 없이 선택할 수 있다. 해산물이라고 해서 뭔가 일반식보다 더 좋을 것 같지만 그건 기분 탓이다. 전혀 특별할 것 없고, 다른 선택지는 주로 채식/무슬림(할랄) 이정도니까, 정말 특별할 것 없다. 해산물이라고 회나 스시 한 점을 기대한 내가 바보....



특별식을 주문하면 저렇게 자리 번호와 특별식 종류가 적힌 카드가 꽂혀있는 식사를 받게 된다. 별거 아니지만 또 특별해보이고 좋아한다. 그리고 대망의.... 해산물





사실 나는 은박을 벗겨보고 너무 놀래서 할 말을 잃었다.... 새우로 너희가 생각해낸 기내식이 죽이다 이거지....? 충격..... 마음 상함.... 하지만 처음의 상심과는 달리 또 너무 맛있게 잘,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다... 음식 남기고 그러면 벌받아요





그렇게 뭔가 아쉬운 기내식을 싹싹 다 긁어먹고 창문을 보니

와- 역시 장거리 비행이어도 창가에 앉는건 바로 이런 사진을 위해서지!!! 라고 생각하게 되는 장관이 펼쳐졌다

아이폰놈... 이게 최선입니까...? 훨씬 더 멋있었는데, 사진에 다 담겨지지 않았다

조금 담겨졌다 싶으면 빙구처럼 웃고있는 내가 막 비쳐있고.........ㅠㅠㅋㅋㅋㅋ




이제 아부다비 공항에서의 환승!!! 아부다비는 어떤 곳일지, 내리지는 못하지만 괜히 엄청 기대된다. 언젠가 사막투어를 하게 된다면, 꼭 다시 이 에티하드 비행기를 타고, 꼭 이드리스 엘바를 다시 만나게 되는 행운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 





ps. 독일에 모처럼 해가 반짝거리는 날이라, 아침에 이것만 쓰고 밖으로 나가려합니다. 혹시 기다리신다면 독일시간 화요일 오전(한국시간 화요일 오후)에 올라오는 포스팅은 이게 다에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고 한다.....) 비 안올 때! 해가 반짝반짝할 때 빨리 나가야해요! 언제 비올지 모르는 이 뭣같은 독일 날씨ㅠㅠㅠㅠㅠ

기내식은 미리 특별식으로 신청했다. "Seafood"


뭐 특별한 이유가 있는건 아니고, 바다가 없는 나라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해산물을 요리해서 먹는지 궁금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나의 편협함이 얼마나 무지함과 이어지는지 알게 되는 큰 계기가 됐는데, "사막 = 바다가 없는 나라"라는 생각을 했다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비행하는 내내 지도를 보면서 지금 어디를 날고 있는지 확인했는데, 놀랍게도 아부다비/두바이는 바닷가다. 그리고 그 두 도시는 예전부터 진주잡이와 연안어업이 발달했으며, 유전도 해저에서 발견된 거라고 한다. 나는 석유도 사막에서 나온건 줄 알았다. 이토록 무식할 수가....)



00:40AM, 탑승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샌드위치와 컵라면이 나왔다. 

특별식을 주문해서 나만 먼저 샌드위치를 주니까, 개저씨들이 배고프다고 성화였다. 1분전까지 코골고 주무시던 분들이 왜 난리세요.... 뜯었다가는 뭔가 배고픈 개들에게 불을 지피게 될까봐 뜯지 않고 기다렸다.



같이 마실 음료를 묻길래 Dilmah Lemon & Lime을 달라고 했다.




비행기 안에서의 첫 딜마티.

항상 그랬듯이 티백은 딜마를 따라올 퀄리티가 없다. 어쩜 이렇게나 차에 대한 수준차이가 나는지, 설록 나부랭이들 다 꺼졌으면.... 아모레 국정교과서ㅗㅗㅗㅗ 아이고 자판이ㅗㅗㅗㅗㅗㅗㅗ


딜마를 다 우려낸 후, 샌드위치와 컵라면까지 주는거 다 받아들고서는 같이 찍은 첫 기내 간단식. 나는 비행기에서 주는건 물도 맛있더라.... 휴.... 대책없습니다









아침이 되어서 정말 모두가 다 자고 있나 싶을 정도로 고요했던 시간,

비행기 타자마자 와... 훈남... 대박... 이라고 생각했던 승무원이 지나갔다. 가급적 훈남이 티든 기내식이든 주는게 좋습디다? 딜마 티 달라고 했더니, 종류도 묻지 않고 갖다 준다길래 뭐지.... 왜 안물어보지... 못알아듣고 커피 주는거 아닌가... 비행기에서 커피나 술은 굳이 안마시는데.... 그런거 먹으면 수면제처럼 나는 바로 잠든단 말이야....;;


그리고는 그 승무원이 가져다준 English Breakfast tea

아침이니 종류 물을 필요도 없이 이거라 생각한건가....

Milk? Sugar? 이러길래 아 밀크티면 다 있어야지 왜 묻는거야... 싶어서 둘 다 달라고 했다. 이드리스 엘바와 85%쯤 같은 외모의 남자가 Early Tea를 갖다주다니... 참나... 행복이란게 멀리 있는게 아니다 싶고... 세상이 이렇게 덧없구나 싶고 ㅋㅋㅋㅋ 누구든 Early Tea를 침대로 가져다줄 남자면 결혼할 마음이 없다가도 생길 것 같고 그랬는데... 망상이 이렇게 위험하네.... 뭔가 많이 잘못되었다....



그렇게 비행기에서 두번째 딜마티가 완성되었다.

왜이렇게 더 맛있고 난리야....







그렇게 딜마티를 더 열심히 마시고 싶어졌다.





세 번 째 딜마티, 카모마일




이제 그 잘생긴 승무원은 마치 내 전담 티 메이커 같았다. 나는 계속 다이어리와 엽서를 번갈아 쓰면서 한 모금 두 모금씩 티를 마셨고, 티가 딱 바닥에 깔릴 때 쯤에 다른 티 줄까? 같은걸로 줄까? 를 물었다. 이런 서비스라니... 제가 꼴랑 40만원짜리 특가로 비행기에 타고는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됩니까?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승무원님은 부디 복 많이 받으시구요....


이제 말 안해도 핑거푸드도 막 갖다주고... 네가 티를 많이 좋아하는거 같아서 한 개 더 갖고 왔다고 나 없어도 티 잘 챙겨먹고! 이런 소리나 하고... 참나 여보세요? 지금은 어디 계세요? 


별거 아닌 핑거푸드도 말 안했는데 챙겨주고 하니까 또 고맙고 뭐 그렇고... 생각난 김에 에티하드 웹사이트에 땡큐레터나 쓰러 가야지... 이름 모르는데 이드리스 엘바처럼 생긴 그 남자 승무원 이렇게 쓰면 안되겠지;;;




무튼 네 번째 딜마티, 





흔한 녹차와 달라, 다르다고!!! 설록ㅗㅗㅗㅗ 아이고 또 자판이ㅗㅗㅗㅗ

한국에 그런 저급 티 문화를 전파한 것을 영원히 저주하고 저주할 것이다. 

이렇게 네 종류가 에티하드에서 제공되는 딜마티고, 열 시간의 비행동안 이 네 종류를 두 번씩은 마신 것 같다. 한 시간에 티 한 잔이라니, 생각해보니 꽤 귀찮았을텐데 그저 고마워졌다.





- 여기서부터는 넋두리가 심하니 안읽으셔도 됩니당 -


한국에서 티를 즐길 때마다 꽤 자주 듣던 말 중 하나는

"먹고 살기 바빠서 차같은거 마실 시간 없다"는 멍청한 소리였다.

멍청한 사람들은 멍청한걸 꼭 티를 내야 하나요? 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입밖으로 말을 내뱉을 때는 제발 생각을 좀 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내가 한국이 아닌 다른 곳을 여행할 때마다 즐거운 것 중 하나는

다양한 종류의 차를 편안히 아늑하게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내가 무얼 마시든 먹든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나는 다른 사람이 뭘하고 사는지 딱히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의 삶에 관심이 많았고, 나는 그게 몹시 피곤했다.

내가 백수로 아빠 돈을 갉아먹으면서 산다고 해서 너에게 피해를 준 것이 있는지?

내가 살이 쪘다고 해서 너에게 피해를 준 것이 있는지? 살찐 내가 쪽팔리다면 안만나면 되잖아. 왜 그런 식으로 사람을 대하는건지?

말하면 입아프지만 이런 것들이 한국에서의 하루하루를 굉장히 피로하게 만들었다.


특히 서른이 넘은 미혼 여성에 대한 각종 인신공격들은

나라가 멀쩡히 돌아가는게 신기할 정도로 각종 개저씨들과 같은 여자들에 의해서 난도질당했다. 저의 자궁은 혹시 국가 소유인가요? 제가 어디 애낳는 기계여야하나요?

서른이 넘은 살찌고 남자친구가 없으며 직업도 없는 나는 최하층민이자 아무에게나 아무 개소리를 들어도 되는 그런 위치였다. 위치 자체가 없었다. 나보다 하급은 없었다. 정신나간 분들은 부디 자살을 추천합니다, 한강물이 녹았습니다.



러시아 여행을 갈 때도, 일본 여행을 갈 때도, 독일로 떠나는 이 비행기 안에서도 나는 나 그 자체였다. 한국에서의 나는 규정되어져야했다. 라벨링이 되어야했고, 최하급이라는 도장이 이마에 찍힌채 살아야했지만, 한국을 떠나는 이 비행기 안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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