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 세계의 여성들은 오후 세 시에 퇴근하는 조기퇴근 시위를 한다.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로, 여성은 오후 세시 이후부터는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나 마찬가지라서 그것을 알리고 바꾸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조기퇴근 시위를 처음 알게 되었던 아기 페미니스트 시절, 시위조차 너무 멋있어서 그저 너무 뿌듯했다. 세상은 남자가 중심이지만, 절대로 그렇게 너네들끼리 해먹게 놔두지 않겠다는 놀랍고 위대한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렇게 뒤에서 쫓아만 가도 되는지 싶었다. 하지만, 한국은 뒤에서 쫓아만 가기에도 힘든 사회였다.


세상은 매일 달라지고 있지만,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이 기득권이라고조차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들은 아무것도 가진게 없다고 한다. 가진거 없는 너희가 더 노력하면 된다고 한다. 어떻게, 뭐, 다시 남자로 태어날까? "비정치적 존재로 살아가는 것도 특권이다"라는 사무치는 문장을 트위터에서 봤고, 그 문장을 공유하려고 한다.



남자로 사는건 특권이며, 백인으로 사는건 특권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30대 비혼으로 사는 모든 여성분들께,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결혼하지 않은 우리는 잘못되지 않았다. 여자는 결혼을 선택할 수 있고, 여자의 삶에 결혼은 필수가 아니다. 여자를 갈아서 지탱되는 가부장제를 절대적으로 반대하며,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 결혼을 선택하는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인지되어야한다.


나는, 남자와 똑같이 초중고교육을 받았고, 대학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석사학위도 있다. 그런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취업과 생활 곳곳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20대 후반의 나는 곧 결혼한다고 회사를 떠날 여자로 간주되었고, 모든 면접에서 그따위 질문을 들어야했다. 결혼생각 딱히 없다고 대답하면 유난떠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는지, 회사에서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데 학교 생활 잘했냐고 묻던 면접관도 있었다. 아, 예 제가 인간사회가 너무 싫어서요! 왕따였네요! 이렇게 대답할껄 그랬다. 호황기에 운좋게 그 대기업 들어갔고, 어쩌다보니 그까지 올라간 너희들이, 지금 피터지게 해도 정규직으로 취직하는게 불가능한 한국에 있는 80년대 중후반~90년대생들한테 그따위로 대해서는 안되는거지. 이러니, 내가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수 있는가.



몇 달 전에는 정말 또라이같은 일이 있었다.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서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만든건데, 넓디 넓은 마음으로 출생아수를 가축화해서 그린 도표들까지는 이해해줄 수 있다. 그런데, 가임기 여성 지도? 미쳤어요???? 가임기 여성이 많은 동네에서는 가서 뭐하라고? 더 소름끼쳤던건 그 그래프가, 천이나 만의 대략적인 숫자가 아니라, 일의 단위까지 세세히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이트를 혼자 만든 것도 아닐텐데, 그 많은 사람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정상적인 사람이 없었다는걸까?




세상에 이렇게 멍청할 수도 있나 싶었던 눈치 빻은 행정자치부의 트윗.




그리고,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트위터 계정.



아들 낳겠다고 여자들 다 낙태시킬 땐 언제고, 이제와서 왜 가임기 여성이 없지? 왜 자궁이 없지? 왜 여자들이 아이를 안낳지? 아이고...




그리고, 가임기 여성 지도의 멍청함이 사라질 때 쯤, 또 다른 멍청이가 등장했다.

세상에 멍청이가 많아도 너무 많다. 아, 좀 멍청한 유전자는 물려주지 맙시다, 네?



너무 멍청해서 말을 잃었다. 그리고,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든 인간들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기집년들이 많이 배우니까 애 안낳네? 못배우게 하자! 세상에, 지금 2017년인데? 내가 대체 뭘 본거지?



다른 나라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한국은 여성 후려치기 역사가 한두번 있던 일이 아니다.

위의 두 사례도 정부기관에서 주도한 사업이고, 아래 두 사진도 정부기관에서 뭐가 잘못된 줄도 모르고 올려둔 내용들이다.


아름다운 가슴의 모식도를 얘기하는 보건복지부



양육비 내줄 것도 아니면서 고나리질하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신사임당 친정이 얼마나 잘 살았는지는 모르나보다. 멍청함은 이렇게 악하다.


이 모든 멍청한 이들에게.







오늘, 광화문에서 오후 세 시에 모인 사람들의 사진도 같이 올려둔다. 찡하다. 너무 더디지만, 사회는 분명히 변하고 있다. 세계 35개국에서 같은 취지로 진행되는 조기퇴근 시위는 성별 격차 없이 노동의 몫을 동일하게 분배하자는 의미에서 ‘동일임금의 날(Equal Pay Day)’로도 불린다.






오늘, 독일 노동청의 트위터에 올라온 이미지.

We make women strong together.






오늘은 109주년 세계 여성의 날이다. 그리고, 세계 남성의 날도 있다. 1119일, 왜 여성의 날만 있냐고 딴지걸지 말고 11월 19에 너네들끼리 뭐라도 하세요. 있는지도 모르는 날로 모두가 알고 있는건, 누구의 잘못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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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헤메던 겨울이 거의 다 지났고, 1월부터 다니기 시작한 만하임 대학 부설 어학원의 수업도 다음 주 화요일에 세 번째 레벨이 시작된다. 두 달이 지났으니 적응도 끝났다. 처음에는 이전 학원과 달리 숙제도 너무 많고 나 빼고 다들 말도 너무 잘하고 시험도 너무 자주 봐서 학원가기 너무 싫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오르는 작문 점수 확인하는 것도 기쁘고, 조금씩 내가 늘고 있다는게 느껴져서 그저 다 좋다. 


그간 딱히 여유는 없었지만 찾지 못하고 있는 인스타그램이 아쉬워서 더 열심히 거의 매일 티스토리에 강박적으로 뭔가를 올려왔다. 나의 근황은 없이. 걍 그렇게 매일 뭔가 올리면, 조금 더 빨리 안정될 것 같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티스토리 계정에 다시 로그인할 수 있게 된 후, 처음 다시 글을 쓴 날이 131일, 한달하고 일주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 때보다 나는 훨씬 더 상태가 좋아졌다. 역시 나는 타이핑이든 손으로든 뭔가를 쓰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나약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튼- 요즘 나는 정말 잘 지낸다. 이렇게 잘 지내다가 또 무너지면 나는 어쩌지 하는 세상에서 가장 쓸데 없지만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걱정을 하면서, 그렇게 지낸다.



지난 일요일, 정말 오랫만에 여유롭게 티타임을 가졌다. 한번 치즈케익을 입에 들이고 나니, 월요일 내내 케익이 엄청 땡겼다. 물론, 커피나 차는 그간 많이 마셨지만, 내가 생각하는 티타임에는 핑거푸드가 없으면 안된다... 물론 과자나부랭이 핑거푸드 말고 내게는 "케익"만 핑거푸드다. 손가락으로 먹을 수 없는 핑거푸드라니 뭔가 이상하게 들리지만, 내가 그렇다면 그런거지 뭐- 치즈케익을 마트에서 많이 파는걸 봤지만, 홀케익 사이즈로만 판매해서 구입해본 적은 없었다. 홀케익이 한 6천원 정도밖에 안하니까, 한국에 비하면 정말 저렴한 가격이긴 한데, 집에 딱히 사람 더 없으니 그거 나 혼자 다 먹는거고, 내가 그걸 잘 컨트롤하면서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나는 무절제의 화신- 그런데 나는 케익이 먹고 싶은데! 어쩌란 말인가.


뭔가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꽤 높은 확률로 내 눈 앞에 나타나는 경험을 자주 했었다. 모르겠다, 어쩌다보니 아다리가 그렇게 맞게 된건지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가 네토(Netto)지만, 물건이 다양하지가 않아서 어쩌다보니 가장 먼 리들(LiDL)로 장보러 다닌다. 물론 멀다고 해서 막 엄청나게 먼 것은 아니고, 네토와 리들은 걸어서 한 5~7분 거리에 있다. 어제, 괜히 네토에 한 번 들리고 싶었다. 그리고 네토에서 이렇게 장을 봐왔다. 



너무 사랑하는 냉동야채, 샐러드야채, 샐러드 드레싱(50%할인이라 평소 안사던거 한번 사봄),

그리고!!! 220g짜리 치즈케익!!!!

치즈케익 220g이라고 하면 감이 안오니까 스타벅스 홀케익이 몇그람인지 확인해보려했는데, 불친절한 스타벅스. 공식 사이트의 검색이 왜이렇게 구린지.. 홀케익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가 없네... 조각 케익은 찾긴 했다. 스타벅스 치즈케익 한 조각 145g. 근데 또 이게 완전히 비교하기는 어려운게, 스타벅스 치즈케익은 아래의 딱딱한? 치즈가 아닌? 부분이 있다. 내가 산 치즈케익은 그게 없다. 무튼, 작지도 크지도 않고 딱 적당한 크기의 치즈케익 판매처를 알아냈다는 사실을 이렇게 길고 장황하게 쓴다. 


중요한 것은 가격! 은혜롭기도 해라.. 0,99유로.



그렇게, 정말정말 오랫만에 약차;가 아닌 홍차를 아침에 내렸다. 아침마다 감기차를 그렇게 주구장창 마셔댔는데, 지난 주에 살짝 따뜻해졌다고 감기차 사흘 안마셨더니 바로 감기걸리고... 물론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긴 했다. 무튼, 감기차가 딱히 나쁘다는건 아니고 그냥 저냥 맹맹한 맛이라 특색없는 차인데, 존재감을 뿜뿜하는 홍차를 아침에 마시니 뭔가 기분이 좋아졌다. 밀크티를 마시고 싶었는데, 집에 우유가 없다. 설탕도 없지만 꿀은 있어서; 설탕 대신 꿀을 조금 넣었다. 오- 설탕보다 더 나은거 같은데...?



그렇게, 오늘 오전 530분의, 꽤 이른 티타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등대컵! Unser Norden (Our North)

치즈케익이 다소 작아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닙니다. 220g을 한번에 퍼먹지 않기 위한 나의 몸부림. 덜어먹기. 저 그릇은 참 유용히 잘 쓰고 있다. 올리브 그릇이 되기도 하고, 계란후라이 그릇이 되기도 하고, 이제는 치즈케익용 미니 접시까지. 아, 나 주방저울 있어서 저 치즈케익 무게 잴 수도 있었는데 왜 안쟀지... 대략 40g 정도 될 것이다. 6등분 했으니까.




방 형광등이 노란 불이라.. 방에서 뭘 찍어도 이렇게 누렇게만 나온다.


티타임은 원래 아침 먹고 하는거니까, 아침도 이미 먹었다는걸 적어본다... 감기 때문에 요즘 내내 일찍 잠들고 있고, 배고파서;;; 다섯시 전에 깬다. 연금 받으며 살아가는 할머니가 된 느낌으로, 해뜨기 전이지만 창문을 열어서 환기시키고, 아침을 먹고, 영양제 일곱알을 먹고, 홍차에 치즈케익을 먹는다. 그러고 나니 이 시간이다. 늦잠을 잔 적은 없지만, 언제나 학원가기 참 바쁘다. 아침마다 뭔가를 쓰고 싶은 이 생각에. 무튼, 그렇게 오늘도 잘 보낼 것 같은 하루다.


요즘 근황, 끝-





내 전공은 화학이고, 나는 여전히 나의 전공이 굉장히 좋다. 하지만 내 세대는 너무 당연하고 이 영상에 나오는 1세계의 아이들 조차, 여전히 과학은 남자들의 학문이라고 여겨진다. 어째서? 수많은 면접을 보면서 항상 들었던 말은 여자이기 때문에 들어야하는 말들이었다. 남자친구, 결혼, 출산. 계획이 있다고 하면 꺼려하고, 계획이 없다고 하면 모자라거나 유별난 사람 취급받고. 여자는 그저 다음 세대를 생산하는 부속품일 뿐인가? 어째서 여자들은 원하는 학문을 할 수 없는건지?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런 광고 굉장하다. 한국의 모든 브랜드 광고들은 다 썩었다. 국뽕이 없으면 만들어지지 않는 브랜드 광고가 무슨 브랜드 광고인지. 이 짧은 광고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가 보인다고 하면 너무 과한 칭찬인걸까. 저 나이의 아이들이 이미 본인들과 남자아이들이 구별되어서 키워진다는걸 알고 있다. 그것을 저렇게 이벤트로 만들어준다면, 저 아이들은 과학에 흥미를 여전히 가질 수 있겠지. 좋은 광고라는 말로 표현이 다 안될 만큼 좋은 광고다. 


그리고 마지막 문구에 괜히 찡하다. We're waiting for you

어떤 회사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그 말. 얼마나 큰 힘이 될까.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어떤 회사에 내가 들어갈 수 있게 된다는걸 안다면 지금 이 순간도 더 열심히 지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 어차피 미래의 나는 그 회사에 들어가게 되니까, 대충 살아도 되겠구나- 하는. 아마 나는 후자에 더 가까운 사람일 것 같다. 그러니 미래를 모르는 지금, 나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조금 더 잘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중학생의 나는, 너무 당연하게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여고에 진학하면서 총 열개 반 중 이과반은 두 반이 겨우 만들어지고 어거지로 세 반이 만들어지는걸 보면서, 여자들이 수학을 못하는게 아니라 여자는 수학을 못한다는 그 사고가 수학을 못하게 가둔다고 생각했다. 초등학생들을 꽤 오래 지도했는데, 그 나이 때에는 남녀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중학교에 가면서 확 달라졌었다. 그만큼 주변에서 많이 듣게 되니까. "여자는 수학을 못한다는 얘기" 그리고 수학을 못하면 과학을 할 수 없다는 얘기. 물론 맞는 얘기다. 하지만 수학을 못하는 경제학자도 가능한가? 수학 못해서 경영대학 갔다가 대입 준비 다시한 사람을 나는 안다. 수학을 못하면 문과, 수학을 잘하면 이과, 이게 무슨 경성고보 시절 얘기인지.


사람들은 언제쯤 변할까. 정확히 한국은 언제쯤 변할 수 있을까. "과년한 여자는 결혼하고 나면 애 낳는다고 출산휴가 가고 그래서 뽑기 좀..." 출산휴가를 여자만 쓰는 분위기도 사라져야하는데, 현재 한국의 분위기를 보면 남자가 출산휴가 쓰는 분위기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은 모두가 다 같은 코스를 밟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나라인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가 조금 그 트랙에서 벗어나려하면, 그것이 과연 걱정인지 아니면 너도 나처럼 고생하면서 살아야해!! 라는 마인드인지 끝없이 오지랖을 떤다.


30살을 일주일 남겨두고 독일행을 결심했고, 만 31살이 되고 두 달 후 독일땅을 밟았다. 특별히 착한 딱은 아니라 부모님께 엄청나게 감사한 부분은 딱히 없지만, 그 모든 주변의 쓸데없는 소리들로부터 방패가 되어 주신 점 하나는 몹시 감사하다. 그리고 내게 결혼 얘기를 단 한번도 꺼내지 않으셨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수업시간에 희망을 얘기하는 문법을 배웠다. (영어의 가정법)


두 아이의 엄마는 우리 가족이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했고,

성악 전공자는 유명한 성악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놀랍게도 "그림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게 대체 뭔 소리야... 말을 할 때 뇌를 거치고 말하라고...

말하고 나서 나도 새삼 놀랐고, 다들 놀람.

선생님이 그림 잘그리냐고 물어서 아니라고 그냥 잘 그리고 싶은데 전혀 할 줄 모른다고 답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사람이 그저 부러웠다.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미술에 대한 나의 가장 강렬하고 영원히 가져갈 듯한 기억 하나가 있다. 나는 나와 네 살 차이나는 동생을 데리고 학원을 다녔다. 미술학원도 그랬고, 음악학원도 그랬다. 그런데 미술학원에서 엄마와 통화를 하는 걸 듣게 됐는데, 누나는 학원에 더 안보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게 어린 마음에 너무 슬펐다. 나보다 네 살이나 어린 쟤는 계속 와도 된다고 하는데, 나는 안와도 된다니. 쟤가 그리는 것도 나랑 별 다를 거 없어보였는데 나는 그냥 딱 봐도 미술과 관련없는 삶을 살게 될 거라는게 보였다는건지. 무료로 가르쳐달라는 것도 아니고 돈 내고 배우겠다는데도 오지 말라니.. 물론 20년도 더 지나서 기억이 왜곡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는 그냥 오예!! 그리기 싫은 그림 안그려도 된다!! 이렇게 신나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속상했던 기억은 확실하고, 20년 동안 켜켜이 감정이 쌓여온 것은 확실하다. 만약 그 때 그런 말을 안들었더라면, 나도 그림을 배울 생각을 더 빨리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서른이 넘어서가 아니라, 대학생때라도.


서른이 넘어서 미술학원에 3개월 다녔었다. 미술학원은 생각보다 비쌌고, 박봉의 말단직원의 월급으로는 다니는 것이 불가능했다. 물론 회사 다닐때는 시간이 없기도 했다. 백수로 지내면서 그렇게 긴 시간을 백수로 지낼 줄 알았으면 이것저것 더 많이 배웠을텐데, 나는 금방 취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석사 학위는 그저 긴 가방끈에 불과했고, 같은 학위를 가진 어린 사람들을 뽑는건 어쩌면 당연했다. 쪽팔리니 그런 돈은 타먹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장기백수에게는 한 푼도 귀했다. 뭔가를 배우고 싶어서 배운게 아니라, 그걸 배우면 돈을 준대서 배웠다. 엄밀히 말하면 직업훈련인데, 나는 그 직업을 갖고 싶어서 배운건 하나도 없었다. 처음엔 미술학원을 갔다. 감사하게도, 각종 학원들에는 나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 개설되어있었다. 이 수업을 듣는다고 취업이 되는게 절대로 아니란걸 알지만, 공짜로 뭔가 새로 배우고 싶고, 출석에 비례해서 수당도 나오고. 학원도 손해일 수 없는게, 이 강의에 대한 모든 비용은 국가에서 지급되는 돈이기 때문에, 눈먼 돈을 슈킹하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일뿐이다. 내가 수료한 직업훈련 과정은 "일러스트 전문작가 양성과정" 풉... 3개월 배워서요? 금손들 무시하나요? 됐고, 그 3개월동안 매일 네다섯시간씩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inner peace에 아주 조금은 가까워 질 수 있었다. 내면의 평화라고 직역하면 뭔가 좀 다른 기분. 쿵푸팬더의 그 inner peace.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기 보다, 예전의 그 기억을 치유하기 위해서 다녔다고 하는게 맞겠다. 그리고 매일 네다섯시간씩, 직업이 아닌 다른 뭔가를 한다는 것은 굉장한 명상이 되기도 했다.



그냥, 20년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그들이 부럽다. 특정 색깔을 보고 이 색은 이 색과 어울리겠다. 는 생각이 바로 떠오르는 삶이란 어떤걸까. 나는 12색 색연필을 모두 갖다두고도 서로 어울리는 색을 추려내지 못한다. 서로 보색인 그 색깔들만 겨우 맞추는 정도. 나는 여러가지 색을 보면 다 잘 어울리는 느낌이 든다. 어떤 색이 서로 조화롭고 이런 느낌이 전혀 없는데, 이게 이상하다는걸 알고 엄청 속상했었다. 나는 그림을 너무 잘 그리고 싶은데, 그런 기본적인 감각도 전혀 없이 태어났구나 하는 상실감이 컸다. 내가 못가진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가진 것을 더 발전시키는 방법으로 살아야하는데, 나는 그저 흔하고 흔한 범인이라 그렇게 살기가 쉽지가 않다. 노력하는 중이지만 잘 안된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 방법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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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인 2011년의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유로2012를 직접 보는거였으니까. 그 때는 한국에서 유럽시간으로 살았는데, 요즘은 왜 독일에서 한국 시간으로 살고 있지.. 내 바이오리듬 왜 이러는건지. 지역확인 좀 해주시라며.. 한때 세리에 리그를 즐겨봤던 나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유로 2016이 내게 중요한 다른 이유가 또 있었다. 축구없이 못사는 독일이니까, 결승전에 가게되면 그걸 기념해서 하는 세일들이 많을거기 때문에 누구보다 준결승전에서 이기길 바랬다. 실제로 준결승 진출 기념으로 고속버스 50% 할인도 했었는데, 난 당연히 결승전에 갈 줄 알고 내 미래의 여행들을 예약하지 않는 빙구짓을 했다. 아이고 내 뮌헨 아이고 내 암스테르담 아이고... 다음 유로2020은 어디서 개최되지. 독일이었으면... 그리고 그 때도 내가 독일에 있을 수 있었으면.



축구 시작 두 시간 전의 야외 술집. 이미 만석. 중간에 비어보이는 자리는 예약석이라고.



오늘 같은 날은 당연히 모든 술집이 꽉꽉꽉 찬다. 거의 모든 독일 술집은 커다란 티비가 있다. 당연하다, 맥주마시면서 축구보는게 삶의 낙인 이들에게 맥주만 있고 축구를 못보는건 뭔가 잘못된걸테지. 이 술집은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곳인데, 처음에는 엄청 신기했다. 술집 이름은 City Beach. 내가 사는 만하임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가도 바다가 없다. 그래서인지 이런 종류의 술집이 있다. 바닥에는 바다모래를 깔아두고, 해변가에서 태닝할 때 눕는 그 의자도 곳곳에 있고, 파라솔도 있는 그런 술집. 이런 곳에서 큰 티비로 다 같이 축구 경기보면 꽤 재밌겠지.


사실, 학원에서 친해진 스페인 사람에게 오늘 준결승전 같이 보러 술집 가자고 했더니 축구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내가 귀찮은건 아니지? 정말 축구 안좋아하는거지...? 나는 그 분위기를 같이 느끼고 싶었기 때문에, 혼자라도 가야겠다고 했다. 집에 티비가 없기도 하고. 아시아 여자가, 혼자, 독일에서 국가대항 축구를 본다고??? 그것도 상대가 프랑스인데? 아니,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야. 위험해. 라는 조언을 들었다. 내가 ????? 어차피 독일이 이길건데 뭐가 문제야~라고 했더니, 이기면 신난 기분에 너무 많이 취해서 위험하고, 지게 되면 프랑스 나부랭이에게 졌기 때문에 기분 나빠서 엄청 취해서 위험하다고 한다. 그리고 독일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는, 축구광팬이라는 조언;;도 해줬다. 아 그래.. 두 달 넘게 지내며 이제 적응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많다. 너무너무 가고 싶었지만, 결승전에 같이 갈 친구를 찾기로 하고, 준결승전은 집에서 느리고 작은 화면으로 봤다. 와... 홈어드밴티지... 화가난다 화가나. 경기 내내 독일이 월등히 잘했는데, 결국 개최국이기도 하고 독일이 살짝 느슨해졌던 때를 잘 노렸기도 하고. 1:0도이면 정말 아까운 경기였다고 할텐데, 2:0이라 아쉬워 죽겠다는 표현도 맞지 않는 듯.


새삼 엄마가 항상 나에게 하는 말이 생각났다. "한국 사람은 과정같은건 아무도 생각 안해줘, 결과만 말해. 엄마도 니 과정같은건 안궁금해, 결과만 말해. 어찌됐든 너는 지금 그 나이에 땡전 한 푼 없는 백수야" 예... 뭐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가보다.. 싶지만 워딩 자체는 상당한 워딩이지. 내가 뭘 하든 부자만 되면 된다. 불법이어도? 과정같은건 필요 없이? 싫어 나는, 그런거.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걸어가면서 주변 구경도 하고 샛길로도 빠지고 그렇게 여행하면서 지낼래. 빙빙 돌아가도 어쨌든 나는 계속 걷고 있으니가 어디론가 도착할 수 있겠지. 그 곳에 부디 나를 위한 자리가 있길.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지만, 애초에 천국을 기대한 적은 없고 그냥 내가 앉을 자리 하나를 찾아다니는 길이니까, 어딘가에 나를 위한 자리가 하나는 제발 있길.




믿기 힘들게 축구가 졌고, 새벽 내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밖은 소란스러웠다. 집 바로 옆에 큰 도로가 있는데, 새벽 내내 자동차 굉음이 들렸고, 빵빵소리가 마치 초시계처럼 내내 울렸다. 울부짖는 듯한 소리도 엄청나게 올라왔다. 내가 사는 집이 5층인데도;; 말 그대로 광란이었다. 안나가길 정말 잘한 것 같다.


만하임의 이 좋은 아파트에서 산지는 65일째


두 달 딱 지내니까 이제 거의 완벽히 이 집과 주변에 적응했는데, 다음 주에 이사를 앞두고 있다. 독일의 집값은 상상을 초월하게 비싸다. 얼마인지는 말할 수 없지만 비싸다는 말은 할 수 있다. 그래서 저렴한 집을 찾고 찾았다. 그리고 혼자 살고 싶기도 했고. 똥싸야하는데 화장실에서 누가 안나오면 너무 괴롭다. 대전에 살 때는 변기 막혔을 때 죽을 힘을 다해서 집 앞 롯데백화점에 뛰어갔었는데, 여기는 근처에 화장실이 있지도 않을 뿐더러 있다해도 유료화장실일테니 갈 수가 없다. 그리고 사람의 식사시간은 거의 비슷하니까, 하우스메이트가 점심 먹을 준비를 할 때, 나도 해야한다. 그런데 여럿이서 부엌을 쓰기엔 너무 복잡하다. 부엌이 꽤 큰 편인데도, 한 명이 아닌 여러명이 움직이면 정신없다. 물론 오븐이 한 개이기도 하고. 먼저 식사준비를 시작한 사람이 끝낼 때까지 다음 사람은 그냥 기다리는게 예의처럼 되버렸는데, 배가 고프면 사나워지는 나에게 너무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이래저래 한달 고정지출을 줄이려고 하니, 집세밖에 줄일게 없었다. 운좋게도 꽤 저렴한 (하지만 웬만한 서울 월세는 거뜬히 되는) 방을 구했다. 화장실도 부엌도 다 혼자 쓴다! 화장실도 부엌도 다 혼자 쓰면서 저렴하기까지 하니 방은 엄청 작다. 부엌도 거의 없는 수준에 화장실에 욕조도 없다. 원하는걸 갖지 못하는걸 배워가는게 어른이라고 했다. 나는 그 방에서 살기로 결정하면서, 또 조금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집에 비하면 너무너무 작고 건물도 후지고 주변도 황량하고, 무엇보다 우편함이 검은색이다. 이 집의 우편함은 흰색이라 예쁘고 깔끔했는데.. 무튼, 오늘이 독일에서 지낸지 76째, 만하임의 이 좋은 아파트에서 지낸지는 65일째가 된다. 나는 내가 아직 독일에서 지낸지 3개월도 채 안됐다는게 여전히 신기하다.


한국에서도 어딜가든 적응잘하기 세계 20위안에는 든다고 자부했는데, 조금 더 순위를 높여도 될 듯. 이것도 장점이라면 큰 장점이다. 지나간 것은 그냥 흘러가게 놔둔다. 어차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과거에 얽메여봤자, 나만 힘드니까. 즐거운 기억만 생각만 갖고 앞으로 가다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안나와도 할 수 없다. 어쨌든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중간에 좀 쉬어가기도 하고 누워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처음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상태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할 수 있다. 안빈낙도. 



7/02~7/03, 12일의 말도 안되는 일정으로 네덜란드 여행을 계획한게 한 달 반 전이다. 그런데 왜 미리 티켓을 사지 않았죠? 동북아에서 땡처리 여행의 재미를 즐기며 살던 내가 생각하기에는, 티켓을 더 싸게 살 수 있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미리 구입하면 싸게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여기에는 땡처리 같은건 없다. 있을 수도 있지만, 내가 타는 구간은 인기가 많은 구간이라 그럴 일이 없다. 내가 타는 루트는 헝가리 - 오스트리아 - 독일 - 네덜란드를 가는 루트.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타는 구간이다. 


티켓이 없으니 다음으로 미뤄야하는건가... 다음으로 미루자니, 3주 후에 뮌헨 맥주순수령 500주년 기념 축제와 너무 가까워진다. 그렇게 가깝게 가면 바쁘단 말이지. 이 때가 아니면 네덜란드 여행을 8월로 미뤄야한다. 그럴 순 없다. 나는 매 달 한번씩 여행을 가자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면서 한달 한달 열심히 잘 지낼 것이다. 이번 여행이 틀어지면 나는 기분이 언짢아질거고, 무리해서라도 가는 방법을 찾았다. 루트가 기니까, 반대로 생각하면, 중간에서 짤라서 가면 되잖아? 아주 가끔 머리를 쓰면서도 산다. 


중간까지 자를 것도 없이 프랑크푸르트로 굉장히 많은 버스들이 지나가기에 프랑크푸르트 환승을 찾아봤다. 오- 있다. 하지만 새벽에 다섯시간 시간이 공중에 뜬다. 휴.. 어쩔 수 없다. 게으른 내 탓이지.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24시간 맥도날드에서 와이파이로 쿠키런을 해야겠다. (슬프게도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의 맥도날드는 24시간이 아니었다......)




그렇게 정해진 나의 살벌한 일정


7/2 새벽 1시 만하임 출발 - 새벽 3시 프랑크푸르트 하차

(24시간 맥도날드에 있으려했지만, 문닫힌 맥도날드를 보고 충격과 공포. 노숙자들과 몇몇 여행자들과 함께 졸지에 짧은 노숙)

7/2 아침 8시 프랑크푸르트 출발 - 오후 4시 네덜란드 덴하그(헤이그) 도착

7/3 오전 10시 덴하그 출발 - 오전 11시 암스테르담 도착

7/3 밤 1130분 암스테르담 출발

7/4 아침 6시 프랑크푸르트 도착

7/4 아침 7시 프랑크푸르트 출발 - 아침 8시 만하임 도착

7/4 아침 9시 학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따가 욕할 거 없다. 나는 나에게만 욕할 수 있다... 마나포션이나 힐링포션을 비싼 값으로라도 지불하고 싶다. 음, 아니다. 마나포션 살 돈이면 그냥 돈 더 주고 비행기타면 되잖아... 돈아끼려고 저 법석을 하면서 버스여행을 하는건데 마나포션이라니. 내가 잘못했네. 어차피 구입할 수 없는거니까 그냥 말이라도 해보고 싶었달까-


게으르면 여행을 좋아하지 말던가, 여행을 좋아하면 부지런하던가, 게으른데 왜 여행은 좋아하는건지... 하나만 좀 하시라구요.



그렇게, 시작부터 체력을 아작내기로 작정한 나의 첫 네덜란드 여행!



글쓰는 지금은 네덜란드 다녀온 지 이틀 후인 2016/07/05 10:22pm, 네덜란드에 얼마나 빠졌냐면 네덜란드어를 막 배우고 싶어질 지경.

독일어 하나라도 좀 제대로 하시라구요...



제목의 그것은 내 얘기. 근데 써놓고 보니 죽을 날보다 몇 일 더 산다면 좋은 것 아닌가? 라고도 생각한다.



사실 그때그때 쓰는게 맞다. 티스토리에서 과거 시간으로 글 저장 못하게 바꾼 것도 그래서 이해하려고 하는 편이다. 6월을 넘기지 않으려했는데, 결국 6월을 넘겼다. 71일은 넘기지 않으려고 몰아쳤지만, 어쩜 여행 일정이 딱 7월 2일 새벽부터인지. 당연히 7월이 되기 전에 6월의 모든 글을 쓴다는 내 계획은 가뿐히 못지켰다. 나는 어쩜 이럴까. (글 쓰는 지금 현재는 여행 다녀온 7월 4일 오후 9:15)



어떻게든 미루며 살아왔다. 제 때 무언가를 끝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미루고 미루다보니 항상 마감시간에 급급했고, 마감시간 다되서 아 더 못하겠네~ 하고 쓰다 때려친 이력서만 수십개는 될 것이다. 미루고 미루는 성격이다보니, 주변에서는 항상 느긋하다고만 생각한다. 그건 제가 뭔가 바쁘게 하는걸 못봤기 때문이죠... 뭔가 바쁘게 할 때는 다 집에 쳐박혀서 정신없이 하는 편이다보니.. "항상 느긋한데 뭔가 하고는 있는 사람"으로 보여지는거 잘 알고 있는데,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게으를뿐이에요...



이 게으름이 극대화된건 호주 교환학생 이후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그 전에도 나는 다소 게으른 부분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소 게으르지만, 게으름은 한국에서 굉장한 부덕이고 악행이기에 게으름을 표현해내지는 않고 살았다. 그래서 대학 1학년 때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항상 바빠보였다"고 했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토플 공부를 위해 학교를 휴학하고 정말 미친듯이 영어공부를 했다. 그 때 그렇게 열심히 했던 영어가 정확히 11년 후 독일에서 박살이 나고 있다는게 너무 슬픈 일이지만.. 호주에서의 1년은 정말 꿈같은 시간들이었다. 그 때의 나는 게으름의 절정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어딘가에 기록을 한다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다. 20대 초중반의 내가 생각하기에, 그 강렬한 기억들은 영원할 줄 알았다. 30대 초중반의 나는 나의 기억을 믿지 못하기에 이렇게 기록에 의존한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두 달간의 독일 생활과, 이틀간의 네덜란드, 그리고 셀 수 없이 다닌 일본 여행, 1년간의 호주 교환학생 정도의 외국 경험으로 생각하기에, (이것이 성급한 판단이지는 않길 바라지만,) 날씨에 따라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굉장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 "러시아와 독일에 대문호가 많은 것은 날씨가 춥고 밖에 나가서 뭔가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우스갯소리이지만 그냥 하는 말은 아니다. 독일은 날씨가 변덕스럽기로 유명하다. 나는 그나마 날씨가 좋은 것으로 알려진 남부독일에 살고 있는데도, 가방에 항상 챙겨야하는 것은 썬글라스와 우산이다. 언제 비가 올지 모르고, 언제 해가 미친듯이 뜰지 모른다. 일기예보같은건 유럽에서 믿으면 안된다. 그냥 기온정도만 체크하는 수준. 날씨가 이 모양이니, 예민한 사람들은 밖에 나갈 수 없다. 신발 젖고 옷 버리고 이런게 얼마나 예민했을텐데.. 그리고 예민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몸도 병약하니 집에만 계셔야한다. 그런 분들이 대문호가 되셨겠지. 13일로 버스만 16시간을 타며 여행다니는 나같은 튼튼한 사람은 평생 글을 쓸 수 없는 삶일지도 모른다. 


호주의 날씨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드는 날씨다. 비 안오고 해는 항상 너무 반짝거리고. 그냥 풀밭에 누워서 원없이 놀고먹기 좋은 날씨. 이런 날씨를 가진 나라들은 높은 확률로 후진국들이다. 어차피 밖에서 자도 얼어죽지 않으니 집에 대한 특별한 생각도 없고, 널린게 과일나무인데 먹는거 걱정없고. 호주도 마찬가지다. 영국과 그런 관계가 아니었으면 호주도 딱히 잘사는 국가는 아니었을거다. 그런데 후진국과 선진국을 비교하는거 정말 의미없다는 생각을 새삼 했다. 국가가 돈이 많아도 개개인이 행복하지 않다면? 국가의 이미지는 특별히 나쁘진 않은데 모두들 헬조선을 외치는 나라라면? 아이고 의미없다...



내가 호주에서 1년을 지내면서 들었던 얘기 중 가장 놀랍고 신선하고 부러웠던 것이 하나 있다. 현재는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내가 교환학생으로 지낸 2006년에는 사실이었다. 대학 진학률이 95%는 될듯한 한국과는 달리, 호주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일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에 대해서 더 하급의 일을 한다는 그런 개념이 전혀 없다. 학문을 위해서만 대학에 진학하고, 그래서 외국인들이 유학오는 것을 굉장히 반긴다. 어렵고 힘든 일은 안하고 싶어하니까. 그래서 내가 호주에 있었던 그 때는 간호학과를 졸업한 한국인들이 호주로 이민가는 것이 굉장한 붐이었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호주의 대학등록금은 나라에서 빌려주며, 이자율은 0%. 졸업과 동시에 학자금 빚을 떠안게 되지만, 졸업 후 취직을 못하게 된 경우에는 대학교씩이나 졸업한 우수한 인재가 취직할 자리가 없는 것은 나라의 탓이기 때문에 학자금 상환이 취직 후로 미뤄진다. 영원히 취직 못하게 된다면? 영원히 갚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걸 호주에 가서 꽤 초반에 들었는데, 영어를 제대로 못해서 내가 잘못이해한 줄 알았다. 그런데 몇번을 물었는데도 저렇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저 얘기를 해주던 학생이 말하길, 호주에서 취직하지 않고 외국에서 취직하면 평생 안갚아도 돼! 나는 일본에서 취직하고 싶어! (일본어 수업에서 만났었다) 여전히 이런 시스템일지 조금 궁금하다. 졸업과 동시에 3~4천만원의 학자금 빚을 떠안게 되고, 졸업 후 몇 년은 그 학자금의 이자만 간신히 내며 허덕이는 주변의 지인들을 봐서 그런지 그저 부럽고 부럽기만 했다. 




아무말대잔치는 끝맺음이 항상 어렵다. 제목은 저런데 또 내용은 너무 중구난방이다. 중구난방이라는 단어, 혹시 내가 또 뭔가 잘못썼을까봐 사전에서 찾아보니 정확한 뜻이 대박이다. "막기 어려울 정도로 여럿이 마구 지껄임" 오늘의 아무말대잔치는 중구난방으로 역시나 또, 마무리 짓기 어려운 상태로 이렇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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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썼는데 이미 너무 아무말대잔치의 거대한 서막이다. 내가 처음 음악을 접한건 라디오였다. 약간 라디오를 듣던 세대보다는 젊지만, 나는 그렇게 내 윗세대의 감정을 향유했다. 향유했다는 말은 더 이상 입으로는 내뱉지 않는 단어라 곰팡이 냄새가 나는 듯하지만, 저 단어가 가장 잘 묘사해줄 수 있다. 내 세대는 윗세대보다 문화에 가난했다. 향유할 문화가 충분치 않았다.


무튼 그렇게 라디오에서 엄청난 (선별된) 음악들을 들으며 음악에 대한 다양성이 자연히 넓혀졌다. 어릴 때부터 팝송을 많이 들었고, 다양한 국가의 음악을 접할 기회도 많았다. 4개 국어로 노래하는 그룹에 빠져서 허덕이는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순서였다. 어렸을 때 자의와는 상관없이 교회를 다녔다. 이런저런 재주가 많았던 나는, 중학생 때 이미 주일 예배 피아노 반주 백업을 했다. 청소년부 예배때는 내가 메인 반주자였다. 반주 백업을 하지 않는 주일에는, 성가대를 했다. 노래하는걸 좋아했고 피아노치는 것도 좋아했다. 나는 내가 당연히 피아노를 치며 먹고 살게될 줄 알았다. 중학생 때, 내가 살던 도시에서 가장 입시 피아노로 유명한 학원에 가게 되었을 때가 내가 기억하는 내 삶의 첫 자발적 포기였다. 그 전까지 나는 굉장히 파이팅 넘치던 꿈많고 하고 싶은 것 많은 10대였고, 그 첫 포기를 시작으로 다양한 것들을 포기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살았다. 그리고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갖게 되었고, 포기해서 내가 갖게 되는건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라는걸 알게 됐다. 그 후로 나는 삶을 꽉 붙들고 살지는 않게 되었다. 노력은 하되, 내가 노력해도 안되는 것은 분명히 있고 그것에 대해서 아쉬워하거나 반드시 얻어내야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려고 한다. 휴- 또 서론이 이만큼이다.



무튼, 내 이상형은 딱 한 조건만 만족하면 된다. "나와 듀엣곡을 불러줄 수 있는 남자"

내가 주로 접한 듀엣곡들은 영화속에서 남녀주인공이 함께 불렀던 것들이 대부분이니 얼마나 달달한지. 물론, 지금은 그렇게 달달하기만한 듀엣곡뿐 아니라 다양한 듀엣곡이 있다는걸 잘 알고 있다. 내가 노래방을 얼마나 좋아하냐면, 나는 노래방을 혼자서도 곧 잘 간다. 혼자서 갈뿐 아니라 한 시간만 주면 억울해한다. 혼자서 최소 세시간은 부를 수 있다. 대전에는 999분 주는 노래방이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요금도 안비쌌다.



어렸던 나는 저게 굉장히 소박한 이상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차라리 연봉 얼마라고 정하는게 가장 정확하고 소박할 듯. 이런 이상형을 마음속으로만 오랫동안 생각해왔는데, 처음 얘기해보니 뭔가 좀 후련하다. 그런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물랑루즈. 이 영화에서 이완 맥그리거 미모 미쳤고, 니콜 키드먼은 요정 그 자체다. 대부분의 노래가 듀엣곡이라 물랑루즈의 OST는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곡.



뭔가 신나는 일이 생기면, 나는 이 노래가 자동으로 재생된다. 물론 내가 직접 듣는 버전으로 자동 변환되서. 




Hope you don't mind. I hope you don't mind

That I put down in words

How wonderful life is now you're in the world


Sat on the roof and I kicked off the moss

Wellsome of these verses well they got me quite cross

But the sun's been kind while I wrote this song

It's for people like you that keep it turned on


So excuse me for forgetting but these things I do

You see I've forgotten if they're green or they're blue

Anyway the thing is what I really mean 

Yours are the sweetest eyes I've ever seen


And you can tell everybody that this is your song

It may be quite simple but now that it's done

Hope you don't mind. I hope you don't mind That I put down in words

How wonderful life is now you're in the world




아주 잠깐 결혼도 생각하던 철없던 때에는, 나의 결혼식 축가로 시덥잖은 사람들이 별로 마음이 담기지도 않은 축가를 하느니 이 노래를 남편이 직접 불러주는거였다. 하지만 이 노래 생각보다 너무 어렵고, 어린 나는 그걸 몰랐을뿐이고... 



오랜 기간을 서로 알고 지내다 연애하게 된 경우는 단 한번도 없고, 여태 모든 연애가 다 나름의 스파크로 시작하게 되어서, 사귀기 직전에 혹시 음치는 아니죠?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의 구남친들 중 몇;은 태어나서 노래를 끝까지 불러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 음치도 있었다. 내가 노래방 데이트에 로망이 있었게 고딩때부터였는데, 10년이 지나도... 제대로 내 마음에 드는 노래방 데이트는 단 한번도 못해봤다. 아이고 억울해라...


브렉시트에 대해서 투표가 끝나기 전에 써두고 간 글들 덕분에 몇 일 방문자가 쏠쏠했다. 약간 기레기가 된 느낌으로 음, 이런 키워드를 넣으면 클릭을 하는군? 을 몇 명 안되는 방문자 숫자로 알게 되기도 했고. 다들 섬적섬이라는 단어를 몰랐다는 걸 알게 됐고, 나는 역시 인터넷 잉여라는걸 새삼 느꼈다. 무튼, 브렉시트에 대해서는 이제 내가 굳이 보탤 말은 더 없어보인다. 사실 이 글을 읽고, 하.. 글빨 봐.. 라며 감동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민생활 30년차 영국거주자의 브렉시트 사태 소감 - ㅍㅍㅅㅅ



(링크 글의 특정 부분만 긁어오려다, 글 전체에서 어느 한 부분을 긁을 수 없을 만큼 좋은 글이라 따로 긁어오지 않았다)

특별히 싫어하는 매체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매체는 아니기 때문에 링크를 걸지 않으려다가, 그건 또 예의가 아니니까 걸어는 둔다. 굳이 클릭은 안하셔도 됩니다... 근데 글은 또 기깔나게 잘쓰셔서, 읽어보시면 브렉시트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글이다. 나는 트위터에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보면서, 새삼 내가 또 상식이 이렇게나 부족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 트윗을 보면서, 한국만 망하고 있는건 아니라는 생각도 새삼 했다. 그래! 다같이 망해보자!!! 망할거면 제발 좀 빨리!!









그리고 FOX야 항상 저런 이미지이긴 했는데, 또 저래주시니 그저 짤 득템으로서는 반가울 수 밖에.

마음의 소리를 그렇게 자막으로 찍고 그러는거 아니야...




이렇게 혼란스러울 때에, 모두의 예상대로 스코틀랜드는 독립 투표를 다시 진행하겠다고 한다. 애초에 영국먹여살리는 고부가가치 산업은 스코틀랜드가 거의 다 갖고 있는데 잉글랜드에 계신 분들 뭘 믿고 이런 엄청난 투표에 그런 투표권을 행사한건지... 좀 신기할 지경.



그리고 나는 미국 하원 의장인 폴 라이언의 이 발언에 괜히 미국인들이 부러워졌다.  

Speaker Paul Ryan believes markets will stabilize after Brexit, and is "all the more reason for America to lead."

물론 너희는 곧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게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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