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이 생기게 마련이니까 나 혼자 부엌을 쓸 수가 없다. 오른쪽 두 개는 내 라구소스와 루, 왼쪽 두개는 옆 방 중국인들의 점심 준비. 이렇게 네 개가 같이 돌아가면 사람은 최소 두 명이 부엌에 있으니까 부엌이 엄청 복잡하다. 다시는 오리지널 라자냐를 만든다고 주접떨지 않으리... 그 와중에 라구소스는 오래 끓여야해서 금방 끝나지 않고, 루는 눌러붙지 않게 옆에서 저어줘야한다. 결국 나는 오랜 시간동안 부엌에 서 있어야한다는 얘기. 아이고...




모든 일의 원흉. 라자냐 판때기. 많이도 들었다. 질소포장같은거 좀 배우고 그랬으면... 이렇게 꽉꽉 채울 필요는 없잖아...?




제대로 끝내지 않았어도 어쩔 수 없다. 라구 소스가 자꾸 졸아서 더 끓이면 안될 것 같았다. 그리고 라자냐 판때기를 하나씩 익히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다 물에 넣어버리면 다 붙어서 법석이 될 것 같은 강한 느낌이 왔다. 하지만 하나씩 다 따로 끓이는 것도 상 노가다였다. 요리는 노가다가 맞다. 그래서, 남자가 하는 것도 맞다... 요리하고 싶지 않다... 내 평생 부엌을 쓰는 일이 없는 삶이 내 꿈이다.


라구 소스를 가장 아래에 한 층 깔고, 라자냐 판때기 세 장을 각각 따로 끓여서 올려줬다. 노! 가! 다!




거의 기계처럼 해서 중간 과정은 이게 끝. 한장씩 따로 끓이는거 정말 엄청난 짓이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


라구 소스 - 라자냐 판 - 베사멜 소스, 그리고 다시 라구 소스로 반복되는 이 것을 총 네 번 반복했다.

그리고는 위에 그라나 파다노 치즈 블럭과 고다치즈 블럭을 팔이 떨어져나갈 듯이 치즈를 갈았다.

음식점에서 남자 서버들이 쉽게 갈아주던데, 내가 하니까 팔이 왜 이렇게 사라질 듯이 아픈거지..

역시 요리는 남자가 해야한다.



다 만든 라자냐는 이렇다. 아직 오븐에 넣기 전이다. 시판되는 라자냐들처럼 옆이 깔끔하지 않다. 아니 깔끔할 수가 없다. 나는 인간이니까!!!




팔이 갈리는 듯이 치즈를 혼신의 힘을 다해서 갈았다. 그렇게 열심히 갈아제꼈는데도 치즈블럭은 거의 줄지 않았다. 혹시 저 치즈블럭들 막 1년안에 겨우 하나 다 쓰고 그런거 아닌가... 그런거면 난 그런 치즈블럭을 지금 종류별로 세개를 산거네? 우리 존재 화이팅!




저 난리법석을 했는데, 라자냐 판은 절반도 못썼다. 앞으로 족히 두 번은 더 해먹을 수 있는 분량이 남았다. 이거 잘라서 파스타 면으로 쓸 수는 없는건가... 라자냐를 또 만들 생각을 하니 식욕 감퇴의 효과가 2분쯤은 지속되는 것 같다.




오븐에 들어갔다 나오셨다. 치즈들이 퐁퐁하니 잘 녹았다. 더 맛있게 먹고 싶어!!! + 사진 좀 예쁘게 찍고 싶은데 녹은 치즈는 정지 사진에서는 별로 예쁘게 안나오니까ㅠ라며 치즈를 더 갈았는데, 표면에 닿는 족족 온도때문에 녹아서 사라졌다...




첫 라자냐 식사. 그간의 고생이 전부 사라졌다. 두 번쯤 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거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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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잘못 구입한 라자냐 판때기를 사용;하고자, 라자냐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도전했다. 우선 여기는 다양한 치즈를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한국에 비하면 저렴하기도 하고. 하지만 이게 얼마나 노가다였는지 나는 이틀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내가 그간 먹은 라자냐가 몇십키로그람은 족히 될텐데, 그 라자냐에 빨간 소스가 아니라 흰 소스가 들어간다는걸 이제야 알았다. 역시 직접 요리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 너무 당연한걸까, 내가 무딘걸까.. 정통! 라자냐를 만들어보겠다며 레시피를 찾아봤는데, 지금이라도 손떼는게 나은거 아닐까? 라자냐 많이 해먹을거라고 간 돼지고기 1kg 사왔는데... (결국 나름 엄청 열심히 써보려고 했으나, 500g밖에 못씀) 토마토 스파게티 소스 만들어서 그 안에 돼지고기 넣으면 간단하게 라자냐를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베사멜 소스? 루? 글구 토마토 스파게티 소스의 원형인 그 소스의 이름은 라구 소스? 으어어어어어 해낼 수 있을까...



요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살던 내가, 꼭 외국만 나오면 요리에 심취한다. 사실 요리가 너무 좋아!!!서 요리를 한다기 보다, 교환학생으로 갔었던 호주에서는 고기를 비롯한 식재료가 너무 싸서 요리를 했었다. 독일에서는 식재료가 싸기도 싸고 밖에서 사먹는게 비싸기도 해서 매일 요리를 하고 있다. 세 끼 다 챙겨먹는건 너무 힘든 일이다. 하루에 세 번 이상의 설거지를 해야한다는건 어쩌면 무간지옥의 형벌일지도 모르겠다. 기혼 여성분들의 편리한 삶을 위해서라도 한국에도 식기세척기가 널리 보급되면 좋겠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식기세척기가 있긴 한데, 이게 한국 음식에는 세척이 잘 안된다고 들었다. 그래서 항상 아빠가 설거지를 하신다. 나는 이게 너무 당연한 집에서 자랐는데, 정말 희귀한 아빠였다는걸 요즘 새삼 알게 된다.


무튼, 오늘 구입해야할 것들을 아래에 적고는 슈퍼에 갔다.

치즈 세 종류, 밀가루, 버터, 토마토, 버섯, 양파, 식빵, 포리지(이건 아침식사로 추천받아서 구입하려고 적어둔 것)

그리고 포리지만 못사고 다 사왔다. 밀가루는 중력분을 쓰면 된다고 했는데, 중력분과 강력분의 가격이 거의 비슷하길래 강력분으로 샀다 ㅋㅋㅋ;; 언제나 구매는 가격이 결정한다. 



그리고 엄청 유명한 치즈라고 적어둔 그라나 파다노 치즈, 저 치즈가 있을거라고는 생각도 안하고 있으면 사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라자냐에서는 치즈가 엄청 중요하다고, 그라나 파다노 치즈를 사용하면 라자냐의 풍미가 달라진다고 블로그들에서 법석을 하길래... 그리고 놀랍게도 마트에서 그라나 파다노 치즈를 판매중이었고, 바로 구입했다.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의 차이는 이미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나처럼 몰랐던 사람을 위해서 : 간단히 말해서 글루텐 함량에 따라 밀가루를 구분하는 것이다. 글루텐이 많을 수록(강력분) 쫀쫀한 식감의 것들을 만들 수 있고(ex.빵) 글루텐이 적을 수록(박력분) 바삭한 식감의 것들을 만들 수 있다(ex.쿠키)



한국에서는 밀가루를 세 종류로 구분하는데, 독일에서는 총 5개로 구분한다. 명칭으로 구분하는 한국과는 달리 숫자로 구분해서 더 이해하기 쉽다. 숫자가 작을 수록 글루텐의 함량이 적다. 하지만 마트에서 모든 밀가루를 다 판매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저렴한 마트(LiDL)에 갔더니 405짜리밖에 팔지 않았다. 그리고 REWE에 가니, 405, 550, 1150을 판매중이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종류보다 더 많은건가? 적어둔 종이에는 1150짜리는 없다. (내가 사온건 밀가루가 아니라 호밀가루였다... 어쩐지 내 베사멜 소스는 하얀색이 아니라 갈색이라 당황스러웠다ㅠㅋㅋ 만들수록 ㄸ 같아서...)



그리고 라구소스는 한번에 만드는게 아니었다. 뭉근하게 몇시간을 끓여야한다고... 공동으로 부엌을 이용중인데 혼자 몇 시간을 쓰는건 민폐니까 오늘은 두 시간만 끓였다. 그리고 한 이틀 더 두 시간 끓이고 오븐에 넣을 생각이다.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줄은 몰랐는데... 뭐 그래도 글쓰는 지금(2016/06/22)은 라자냐를 먹고 있으니, 괜찮다. 한 사흘 고생하고 보름 행복하면 됐지 뭐.






식은 라자냐는 오븐에 다시 뎁혀서 먹으면 간단하다. 오븐에 넣기 전에 모짜렐라 치즈를 이렇게 또 조금 넣고 오븐에 넣는다.

다이어터 양심상 많이 넣을 수는 없었다. 라자냐 먹는 다이어터라니, 단어 조합이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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