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 수업을 들은지 오늘로 딱 6주다. 나는 뭘 배우든 초기 습득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이라 아주 간단한 회화는 할 수 있다. 물론 내가 원하는 긴 문장들은 전혀 안되지만. 처음 4주를 가르친 선생님이 여름휴가를 갔고, 다른 선생님과 2주동안 수업을 듣게 됐다. 처음 선생님과 달리 이 선생님은 굉장히 프로페셔널했다. 처음 선생님이 아마추어라는건 아니지만 분명 연륜은 부족했다. 93년에 나는 이미 국딩이었는데, 소풍으로 대전엑스포 가고 그랬는데!! 선생님이 93년에 태어났다니... 무튼, 보름간 굉장히 잘 배운데다, 한국식으로 진도 쫙쫙 빼줘서 정상 속도보다 일주일 빨리 끝났다. 이래저래 감사한 마음도 있고, 독일어로 작문도 해보고 싶어서 선생님께 엽서를 썼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도 엽서를 자주 썼었다. 우표 붙여서 보내는거 말고 선생님들한테. 학년 마치거나 학원 끝나거나 그런 때에 거의 항상 써와서 나는 그게 정말 좋은데, 유난떠는 애라고 학급 친구들에게는 좀 미움도 많이 샀다. 지금 생각하면 유난떨지 말껄 그랬다 싶기도 하다. 무튼, 이 선생님께 엽서를 써서, 쉬는 시간에 "엽서에요! 선생님 드리는!" 이렇게 말하니까 선생님 표정이 약간 안좋아졌다. 왜지.. . 혹시 독일은 이렇게 엽서를 주는게 예의가 아닌건가.. 아 찾아보고 올껄ㅠ 이라는 생각과 함께, 내 입에서는 "독일어로 썼어요!"가 바로 나왔다. 뇌를 안거치고 말이 나온 느낌? ;; 그랬더니 선생님 표정이 좋아지셨다. 영어로 썼을까봐 걱정하셨던걸까. 영어 잘 못하시니까.




이 엽서에 썼다. 원래는 한국적인 이 엽서들 다 인천공항에서 펜팔들한테 뿌리고 오려고 한건데, 인천공항에서 엽서 몇 개 쓰니까 시간이 어찌나 빨리가던지... 해외펜팔들에게는 쓸 시간도 없이 주변 지인 몇 명에게 쓰고 나니까 시간이 부족했다. 독일에서 살게되면서 한국적인 엽서는 이제 어딘가로 보내기도 뭣하고, 쓸 일 없겠네.. 하고 남은 한국엽서들은 한국으로 다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그리고 이렇게나 반응이 좋을줄이야... 일부러 화려한걸로 골랐다. 이 선생님은 독일인답지 않게 굉장히 화려하고 원색을 좋아하신다. 상하의 모두 노란색에 시계까지 노란색으로 맞춰서 입고 온 날에 나는 조금 놀랐다. 그런데 또 그걸 소화하고.. 뭔가 너무 대단한 분이다. 한국적인 엽서를 독일에서 이렇게 쓰게 되다니! 나의 게으름이 나를 구원했다. 




엽서를 보고는 너무너무 좋아해주셨다. 엽서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해주고 싶은데, 내! 독! 어! 가! 너무 초급이라 아 답답해 죽을뻔... 나는 독일어로 쓴 문장에만 신경을 썼는데, 선생님이 엽서의 그림을 보시면서 대뜸 이건 무슨 Theater에서 공연을 하는거냐구 물으셔서 아.. 카드 설명도 좀 미리 준비해올껄.. 싶어졌다. 궁중악이라고 얘기해드렸으면 더 좋아했을텐데, 그놈의 로얄패밀리라는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독일어로 쓴 엽서! 독일어 하나도 모르고 와서 6주동안 이렇게 장족의 발전을 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 뿌듯하다. 



내용은 뭐 별거 없다. 


친애하는 선생님께,

수업 굉장히 잘 들었어요. 그리고 휴가를 미리 알려줘서 고마워요. 왜냐하면, 작별인사로 엽서를 쓰는걸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한국어로는, HelloGood-bye를 같은 말로 써요, "안녕" 모든 Hello는 모든 Good-bye잖아요. 물론, vice-versa.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릴께요. 그 때가 되면, 지금보다 분명히 더 잘 말할 수 있을거에요. 저는 굉장히 수다스러운 사람인데, 독일어로 충분히 말할 수가 없었어요. 휴가 잘 보내세요!

당신의 학생, Seo


이렇게 썼다. 언어에 관심있어하는 외국인들에게 이 얘기 해주면 정말 좋아하는, 나의 레파토리 중 하나. HelloGood-bye가 한국어로는 같고, All Hello comes to All Good-bye. Of course, vice-versa. 이거 내가 거의 백번은 말했다. 물론 한국어가 저런 의미로 같은건 아닐지 몰라도, 그냥 썰푸는거지, 뭐. 




선생님이 엄청 고마웠는지, 엽서 받자마자 나를 진짜 쎄!!!게 꽉 안아줬다. 그리고 엽서 내용 읽고 또 막 글썽이면서 또 꽉!!! 안아주셨다. 독일인의 환대는 이런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엄청난 포옹이었다. 선생님은 체구가 작은 분이신데 팔에 온 힘을 다해서 안아주셔서 나도 순간 울컥했다. 앞으로도 모든 선생님들께 다 이런 엽서를 하나씩 써야겠다. 두 번째 엽서의 독일어는 더 나아질거고, 가장 마지막 엽서는 이 학원을 떠나게 될 때 원장선생님께 써야지. 그 때의 내 독일어 작문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게 훌륭해졌으면 좋겠다. 막 필기체로 쓰고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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