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fromde.tistory.com/332 에서 연결됩니다)

만하임에서 살던 집의 세입자를 구하는 일은 너무 쉬웠다. 방을 구하려는 사람은 차고 넘치고 방을 내놓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사람만 연락달라고 했는데,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메일 왔고... 뭐 그랬다. 무튼 그렇게 빠르게 새 거주자를 구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이 방의 주인이 아니기에 새 거주자와는 상관없이 미리 고지한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걍 나가면 된다. 그런데 내가 왜 새 거주자를 구해서 집 관리회사와 연결을 해주냐하면, 내 이전의 거주자가 나에게 했듯, 나도 새 거주자에게 내가 쓰던 가구와 가전 등을 헐값에 넘기고 가기 위해서다. 이삿짐 센터를 부를 것도 아니고 가구와, 작긴 해도 가전을 다 짊어지고 이사다닐 수는 없으니까. 내가 넘기는 것들은 책상 두 개, 서랍장, 거울, 각종 수납장(한국에서도 유명한 그 이케아 철제 수납장!!), 화장실 수납장, 각종 그릇, 컵 등등 이었다. 전부 다 해서 소박하게 150유로에 넘겼다. 나는 200유로에 넘겨받지만, 내가 2년간 사용했으니 더 받기도 뭣하고 암튼 그랬다. 새 거주자가 확정되자 나는 빠르게 새 집을 구해야했다. 독일의 모든 대학도시가 그렇듯, 방 구하는 것은 거의 전쟁이다. 대학도시가 아닌 도시(ex.프랑크푸르트, 쾰른)는 너무 비싸서 문제인거고, 매물은 꽤 있다. 하지만 대학 도시는 매 학기마다 들어오는 사람이 언제나 많으니 매물 자체가 씨가 말랐다. 혼자 사는 방을 구하지 못할거라는건 당연했다. 그래서 WG(Flatshare)를 구하려고 했는데, 당연하게도 다들 인터뷰를 원했고.... 당연히 내 독어는.... 흠... 이러다간 입학허가가 있지만 비자 신청을 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마부르크 대학 기숙사에 대한 온갖 글을 다 검색해서 읽기 시작했다. 작은 도시이고 아직 한국인이 그렇게 막 많지는 않은 도시라 한국인들이 쓴 글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한국인이 마부르크에 대해 쓴 글은 90% 이상이 교환학생이다. 교환학생은 학교에서 그들을 위해 따로 기숙사를 어느정도 확보해둔다. 그 서비스?에 선정이 안되서 방을 급하게 구하는 교환학생들 글을 페북에서 보는데 걍 내가 다 안타깝고... 뭐 그렇다. 방을 구하기가 살벌하게 어려우니까. 무튼,


입학허가서를 받은게 725일, 그리고 처음 마부르크에 오게 된 게 8월 초였다. 처음 학생 기숙사 사무실에 도착한 날은 간발의 차로 문을 닫아있었다. 무슨 근무시간이 이 지경인지... 그 어떤 사무실이 정오에 문을 닫는게 가능한가, 독일에서는 가능하다. 무튼 그렇게 첫 날은 그냥 도시 구경만 했다. 걍 작은 도시네- 기숙사에서 살게 되면 좋을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는 페북 그룹에 올라온 글을 보았다. 기숙사에 살고 있는데 새 거주자를 구한다고. 이걸 왜 그 사람이 올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빠르게 페메를 보냈다. 내일 기숙사 사무실에 가서 @@기숙사 ###호에 살고 싶다고 말하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그 사람과 페메를 했을 때가 오후 4시, 그 사람이 그걸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보냈을거라고는 생각 안하고 나는 다음날 오전이 되길 기다렸다. 오전이 되고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는데, 이미 그 방은 다른 사람이 계약했다고 한다. 황당... 대체 몇 명한테 얘기했니...? 근데 같은 기숙사 건물에 방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내가 직접 가서 계약해야한다고도 했다. 알겠다고 간다고 얘기한 후에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학생 등록증이 필요하다고. 음, 못받았는뎀... 학교에 연락하니 닷새 정도 걸린다고 한다. 여보세요... 그게 뭐라고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건가요....? 무튼 기숙사 사무실에 이런 사정을 적어서 메일을 보냈다. 다음주 화요일에 학생 등록증 들고 바로 사무실로 갈께요. 괜찮다고 해주세요. 이렇게. 그랬더니 답이 없었다. 만약 거절이라면 거절의 답이 왔을거라고 생각하고 나는 다음 주 화요일에 다시 마부르크로 갔다. 다들 막 몇 달 씩 기다린다는데 보름 기다리고(사실상 보름 기다린 것도 아니지만) 기숙사 방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방에는 큰 문제가 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짜리 건물의 5층이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화장실 바로 앞 방이라는 것이다. 두 가지는 살면서 다소 큰 문제가 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기숙사에 들어오게 되었고, 비자를 새로 받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다. 


새 도시에 오게 된 지 벌써 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비자가 완전히 발급되지는 않은 상태다. 마부르크 외국인청은 이미 악명 높지만, 내가 직접 비자 업무를 해보니 왜 악명 높은지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아직 내 손에 비자가 나온건 아니지만, 보름 안으로 비자 나왔다는 편지가 온다고 하니 그걸 기다린 후에 "새로운 도시, 이미 반 년 (3)"을 써볼까 한다. 



마부르크에 살면 살 수록 만하임이 참 좋은 도시였고, 이전에 살던 내 방이 얼마나 좋은 방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엘리베이터도 당연히 있었고, 해도 잘 들었고, 시끄럽지도 않았고, 계획도시라 산 같은건 시내에 없었었다. 여기는 엘리베이터는 당연히 없고, 해는 거의 안들고, 바로 옆이 차가 꽤 많이 다니는 차도이다. 도시 곳곳에 작은 동산이 있고. 내가 사는 기숙사는 그 동산 중 하나의 중턱;에 위치한다. 매일 조금씩 운동하는 기분으로 산 중턱 + 5층계단을 잘 오르내리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7개월이나 됐다.



7개월 전의 나는 쫓기듯이 이사를 했었다.

내가 가진 비자 기간 내에 독일어 시험에 통과할 수 없다는건 너무 당연했고,

남은 돈도 없었다. 또 돈을 보내달라고 하기엔 나는 염치있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길지만 뭔가 다 잘 안되고 있었다.

나는 이제 한국 돌아가면 아무것도 다시 할 수 없는데, 여기서도 그렇게 되버리니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었다.



비자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새로운 비자를 신청하러 가는 약속을 잡아두었었는데, 나는 받은 대학 합격증서도 없고 뭣도 없어서 어학원 등록증이라도 내야 3개월짜리 임시비자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었다. 나는 여전히 만하임을 좋아하지만, 그 때의 나는 더 이상 만하임에 정도 없었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데 떠날 곳은 없는 상황이었었다. 그렇게 정이 남지 않은 도시에서, 임시비자를 위해 학원을 등록해야한다니 너무 싫었었다.


그 당시의 내가 등록할 수 있는 학원은 애초에 몇 개 안됐었는데,


1. 이전에 다녔었던 한국인이 많은 그 학원 - 비자 신청때문에 한 달 등록하고 싶다고 메일 보내니, 너는 이미 독일에 꽤 오래 살았는데, 합법적으로 더 살 수 있니? 이따위 답메일이 왔다. 하, 역시 괜히 연락했어. 돈만 밝히는.... 어휴. 처음 만하임으로 결정하고는 독어도 영어도 할 수 없었던 나는 거기서 운영하는 WG에 살았었다. 그런데, 세상에 나중에 그 집 전체 월세 가격 듣고 황당해서 말도 안나왔다. 나는 500유로를 냈고, 옆방의 커플은 둘이 합쳐서 900유로를 냈고, 그 옆방의 여자도 500유로를 냈는데, 그 집 전체 월세는 1100유로(현재), 2년 전에는 그보다 조금 저렴했겠지... + 전기세도 별도!! 뭣도 모르고 집도 구해주고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고맙기는 개뿔... 멍청하면 이렇게 독일까지 나와서 호구가 된다. 인터넷 요금을 네 명한테 각각 15유로씩 뜯어가기도 했다. 당연히 500유로 월세에 미포함. 네 명씩 15유로면 이미 60유로고 대부분의 독일 인터넷은 월 30~35유로면 가능하다. 참 군데군데 많이도 남겨먹는구나 싶었다.

2한국의 평생교육원 같은 개념의 학원 ; 이 곳은 웬만하면 가고 싶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난민들의 정부지원코스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반인데 난민들은 공짜로 다니고 나는 거금을 내고 다니고... 나는 왜 돈 내!! 이런 말이 아니다. 난민들은 대학을 위한 독일어가 아니라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독일어라 최소한의 언어 능력만 필요하니까 공부를 하지 않는다. 선생님은 매일 똑같은걸 설명해야하니 배우는게 많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밖에 등록할 학원이 없어서 등록하려 했는데, 두 달 코스의 두번째 달에 등록하는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내 비자 테어민이 725일이고, 학원들을 찾아돌아다닌건 그 한 주 전인데, 내가 등록할 수 있는 VHS 독일어 수업은 10월에 시작하는거라고 한다. 저랑 지금 장난하세요?


됐다. 나에게 임시비자를 주지 않는다면, 나는 뭐 또 발등에 불 떨어져서 다른 무언가를 해야하겠지. 설마 당장 출국명령을 내리기야 하겠어... 라는 다소 나이브한 생각으로 전날도 푹 잘 잤다. 하필 비자 테어민도 왜 오전 8시인지, 7시에 일어나서 바삐 준비하다가 이메일을 체크했는데, 입학허가서가 이메일로 도착해있었다.............!!!!!!!!!!! 메일 보낸지는 15분 정도 되었을 때였다. 이 대학교가 조건부 입학허가를 남발;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 꼼수에 올라타보았다.


외국인청 약속시간(Termin, 테어민)이 8시여서 인쇄할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했고, 아이패드에 저장해서 갔다. 이메일을 완전 직전에 받아서 인쇄할 수 없었다는 얘기를 다소 쫄리는 마음으로 해야만 했다. 그런데 쭐라숭(Zulassung, 입학허가서)이 있어서 그런지 너무 빠르고 간단하게 일이 해결되었다. 만하임 대학 아니네. 이사갈꺼지? 그럼 새 도시에서 비자 신청해. 우리는 임시비자 줄께. 그렇게 3개월짜리 임시비자를 빠르게 획득했다. 임시비자의 효력은 외국인청에 방문한 날(725일)부터 시작되어 1025일에 종료된다. 휴, 이렇게 또 3개월을 벌었다. 이제는 새 도시에서 방을 구해야 거주지 전입신고(안멜둥, Anmeldung)를 할 수 있고, 그 도시에 안멜둥된 사람만 비자 업무는 진행할 수 있다. 1025일 전에 새로운 방을 반드시 구해야한다. (운 좋게 빠르게 집을 구할 수 있었던 이야기는 연결해서 계속 쓸 예정)


한국에서는 이사가려면 어떻게 했더라, 걍 집주인에게 전화 걸어서 언제 이사 나가고 싶다고 한 달 전 정도만 미리 얘기해도 됐던 것 같다. 그런데 독일은 너무나 당연하게 편지를 보내야한다. 그것도 최소 3개월 전에. 첨부한 사진은 625일에 보냈었던 퀸디궁 브리프. 뭐 별 어려운 내용이 들어가야하는 것도 아니고 간단하다. 대부분 부동산 회사와 계약하지 집주인과 직접 계약할 일은 많지는 않으니까, 내가 사는 곳 적은 후 내 집계약을 몇 일자로 해지하려고 하며 오늘 날짜는 몇 일이다. 계약해지가 잘 됐다는 확인편지 보내주세요. 이렇게만 쓰면 된다. 앞뒤에 주렁주렁 붙은 것들은 걍 공식적인 편지에 쓰는 앞/뒤 문구들. 그리고 이걸 보낸 다음날 바로 계약해지 편지를 받았다. 그러고 7월 중순이 되었고, 새로 들어올 입주자를 연결해주려고 부동산 회사에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계약해지는 편지로 해야하는데 넌 편지 안보냈잖아? 계약해지 당장 못해, 3개월전에 편지 보내야해. 이따위 이메일이 와서, 나 6월 25에 계약해지 편지 보냈고, 너네 회사직원 중 한 명인 **한테서 계약해지 컨펌 편지도 받았어. 이렇게 이메일 보냈더니 답 없음 ^^... 독일회사는 몇 명 안되는 소규모 회사여도 업무 사항 공유가 이렇게도 안되는구나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달까....


독일 편지 양식,

왼쪽 상단에 보내는 사람의 주소가 들어가고, 그 아래에 받는 사람의 주소가 들어간다.

(주소부분이 비닐로 처리된 편지봉투의 경우 그 받는 사람의 주소가 보이게 접어서 편지를 보낸다)

그 아래에는 편지 보내는 위치(보통 도시), 보내는 날짜

그리고 영어의 To whom may it concern, 에 해당하는, Sehr geehrte Damen und Herren,

그 아래의 문장은 소문자로 시작해야한다. 대문자로 쓰면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한...다.... (편지 쓰는거 배울 때 엄청 중요하게 알려줌)

오늘 몇 일이고, 몇 일 자로 계약해지를 하려고 합니다. 계약해지 확인 편지 보내주세요.

친애하는, (내 이름) 서명


이렇게 해서 보내면 된다. 이메일이 되는 곳도 있지만, 아직까지도 대부분 편지를 쓰는 편.





보통 축제를 하면 주제가 있다. 뮌헨의 옥토버페스트는 맥주, 프랑크푸르트 뮤지엄우퍼페스트는 박물관/미술관.

하지만, 뭐 특별할거 없는 동네에서는 걍 아무 주제도 없이 동네축제!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연다. 바로 그 축제에 마실삼아 다녀왔다.



첫해 크리스마스마켓에서 먹어보고 너무 맛있어서 이게 대체 뭔데 이렇게 맛있어!! 했던 바로 그 헝가리 전통 간식, Langos.

그 후로도 종종 먹고 싶었는데 도무지 파는 곳이 없어서 먹지 못했었다.

괜히 이런 트럭 보이면 달려가보곤 했었는데, 2년만에 드디어 다시 먹었다




특별한 것 없지만 맛있다. 이미 맛있다. 

튀긴 빵에 소스 바르고 치즈 얹고 별거 아닌데 정말 맛있다




날씨 좋은 주말, 할 것 없는 동네 주민들이 모두 나와있다.

이미 말했듯이, 이 축제에 딱히 주제는 없다




윗 사진과 정확히 반대편에서 찍은 사진.

아무 주제없는 이 축제에 모두가 나와서 무언가를 먹고 맥주를 마시고 있다.




급수탑 앞에는 Eichbaum에서 협찬하는 공연 무대가 있다.




원래 트람이 다니는 길인데, 이 동네축제로 사흘간 트람이 이쪽으로 다니지 않는다.

그 내용이 안내되고 있는 트람 정류장.




신기했던 부스 하나.

각자의 헤드폰에 음악이 흘러져나오고, 맞춰서 춤을 춘다.

그리고 그 굴려지는 발의 힘으로 에너지가 발생되고, 그 에너지는 옆에 마련되어있는 휴대폰 충전기에 공급되는 전기로 변환된다.




드디어 독일도 이런 축제기간 만이라도 공용 충전기가 생겼구나 싶어서 새삼 지나치게 기뻤다.




해가 넘어가려하지만 사람들은 집에 가지 않는다




과일주를 파는 부스가 세 개정도 있었다. 특별히 맛있진 않았다.




이국적인 음식을 파는 부스. 많이들 사먹지만 나는 아직 그 향신료에 적응이 안됐다.





축제는 언제나 음악과 함께-

이번 동네축제에는 총 네 개의 무대가 설치되었다.

그 중 가장 많이 구경한 RNF 무대


일요일 마지막 Die Dicken Kinder의 무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시간 내내 서서 봤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술먹고 쓰러져;있어서 그런지 앰뷸런스가 자주 출동했다.

남들 놀때 일하는 직업은 참 여러모로 소명감 없이는 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새삼했다.




'aus Deutschland > Mannheim'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하임 대학교 어학원 부진아의 넋두리  (3) 2017.05.28
어예! 신분증!!  (1) 2017.04.19
St.Peter Kirche  (0) 2017.04.13
Café BRUE  (0) 2017.04.08
신선놀음  (0) 2017.04.05

좋아하는 몇몇 장소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기찻길이다.

실내에 있는 기찻길보다 이렇게 외부에 있고 저 멀리 보이는 부분이 곡선이면 금상첨화.

마침 그런 역에 우연히 가게되어 사진을 엄청 찍어왔다.


도착하는 열차







정류장 방향





떠나는 열차






열차들은 정해진 선로만 다니니까 좋겠다는 생각을 꽤 어릴 적부터 했었다. 지금도 그 때와 같은 이유로 좋아하고 있다.


너는 좋겠구나, 정해진 길이 있어서

나는 여전히 나의 길을 모르겠고, 이 길이 맞는지도 모르겠는데

나도 정해진 길이 있었다면 헤메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사진 찍은 장소 : Frankfurt West Bahnhof


같은 글을 두 번 쓰는 것은 참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방금 인터넷 문제로 글 저장에 문제가 생겨서 다시 쓴다. 나는 관대하다 관대하다 관대하다.... 하루 중 끼니를 고민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오늘은 또 뭘 먹나- 싶어서 냉장고를 열어보면 먹을게 없다. 그래서 마트를 간다. 마트에서 무언가를 사서 오면, 대부분 이렇다. 간식과 술. 끼니가 될 것은 없다. 보통 과자는 한 개만 사려고 노오력하는데, 시험 직전이라는 핑계로, 시험장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초코과자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라이빈츠의 초코과자도 샀다. 오레오와 우유는 공부할 때 먹을거,




블로그 다시 시작한지 한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어느새 게으름은 나의 친구;

하나하나 쓰기가 귀찮고 번거롭다. 걍 영수증 첨부


영수증 순서대로

우유/물/물 공병 보증금/오레오/Pick up!/와인/빵

총 12.54 (약 16300원)



다시 생활인이 되려면 영양제부터 사야했지만, 사두고 안먹은 영양제가 최소 보름분량이 있다. 이렇게 화창하고 좋은 날씨에 하필 나는 감기에 걸렸고, 사흘이 넘도록 감기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5월에 무슨 감기인지.. 도무지 이 날씨에 마실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시험날까지 기침해댈 수 없으니 마셔야했다. 그런데 집에 쟁여둔 약차도 없고 거참.. 설거지를 거의 안하고 살아서인지 주방세제를 언제 사뒀는지 기억도 안나기에 주방세제도 하나 사야했고. 스페인을 다녀오기 전에도 특별히 살이 빠지진 않았지만 스페인에서 너무 잘 먹어서 또 무럭무럭 우람해졌다. 더 이상 찔 것이 없는데도 살은 또 쪘다. 그래서 의미없는거 알지만 내 마음 편하자고 다이어트 관련 보조제까지. 뭐 이런저런 것들을 구입했더니 10유로가 훌쩍 넘었다. 오랜만이니까 괜찮아!



 

Bad Heilbrunner Erkältungstee 0.95

Pril Sensitive Aloe 1.19

Altapharma Erkältungstee 0.69

Altapharma Bewusstes Abnehmen 4.79

Altapharma Fet-Reduktion Aktiv 3.99

F&S Haushaltshandschuh 0.49

Domestos WC Stein 0.99x2

총 14.08, 10% 할인쿠폰 적용받아서 €12.67 ( \16500)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과거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나쁘다고 하기엔 기쁘고, 기쁘다고 하기엔 내가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며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반성과 후회를 하게 된다. 물론 3분짜리 반성과 후회지만.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굳어버린 만년필을 세척했다. 오랫동안 따뜻한 물을 흘려보내도 굳은 잉크는 계속계속 녹아져나왔다. 9개월 가량을 쓰지 않았으니 너무나 당연히 꽉 굳어있었다. 그렇게 만년필을 손에 쥐니 무언가 쓰고싶어졌다. 별 의미없는 것들을 적어가며, 영어단어도 휘갈겨가며. 아무래도 내 일상의 하나였던 우표를 사야겠다. 논리 그런거 없다. 돈을 쓰면 즐겁다. 벌지 않는 인간이 쓰는 것만 즐기는 것은 죄악이지만, 나는 이미 죄인이다.



우체국에 들어가면서 문득 든 생각은, 나에게 불친절하고 무례하게 대하던 그 직원이 창구에 있으면 어쩌지 싶었다. 나는 그 사실조차 다 까먹고 있었다. 내가 숫자를 독일어로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이상한 발음으로 우표를 구입하려할 때마다 한숨을 쉬던 그 직원. 그 직원의 존재가 떠오르면서, 그냥 다시 나갈까 싶었다. 하지만 우표 판매창구로 가는 도중, 간이 창구가 하나 생겼길래 봤더니, 그 불친절한 우표 판매 직원이 거기에서 보험을 팔려고 호객아닌 호객을 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기쁘지? 게다가 우표 판매 창구에 갔더니 나에게 친절했던 그 직원이 여전히 창구에 있었다. 예전처럼, 핫핑크색 손톱을 하고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 후,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뜻밖의 인사를 들었다. 


Ich habe Sie lange Zeit night gesehen. (직역하면, 나는 너를 엄청 오랫동안 못봤었어!! 정도)


나를 이렇게 기억할 줄 알았다면, 뭐라고 대답할 말을 준비해서 갔을텐데 생각지도 못한 친근한 인사라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오랫동안 못봤는데 지금 좋아보인다 좋은 일 있나봐!! 라고 말을 덧붙인다. 좋은 일이 있던가? 이제 방에서만 있지 않는다는 그 자체가 내겐 좋은 일이긴 하다. 하긴 그랬지, 나는 매달 우표 발행일마다 우표 사러 오는 아시아인 여자였지. 침대에서 누워서 지내느라 나의 상황을 잠시 잊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독일어를 해대며 저 반가운 인사에 대한 대꾸를 했지만, 내가 하고 싶던 말은 10%도 채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이 도시에 있다. 정신을 놓지 말고 살아내야한다.

가수 호란이 2015년에 썼던 글을 몹시 좋아한다. (이 글을 꼭 읽고 제 글을 읽어주세요, 꼭이에요). 따로 제목이 있진 않지만, 글을 다 읽고 나면 특정 문장을 자꾸만 입으로 소리내어 말해보게 된다. "나무는 고통을 정서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나는 그간 많이 아팠다. 어떻게든 하루 한 끼는 먹으며 살았지만, 행복한 일도 즐거운 일도 딱히 없기에 인스타그램도 티스토리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위에 링크한 호란의 글 속에서처럼 나는 주변사람들과 영혼없이 웃고 떠들었고, 속으로는 웃고 떠드는 내 자신을 또 혐오하고 가여워하고 있었다. 나는 언제쯤 아프지 않을까, 언제쯤 조금 정상궤도의 삶을 살 수 있을까 바라고 기다리면서 그렇게 시간을 문자 그대로 죽이고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야하는지, 알지 못했다. 다들 그렇게 독일겨울이 힘들다고 하기엔 나는 이미 작년 가을즈음부터 고장이 났었다. 그리고 왜 그 상태가 되었는지 모른 상태로 하루하루 한달한달 그리고 무려 세 번의 계절이 지났다. 나는 최근 그 이유를 알게 되었고 스스로가 또 너무 한없이 가여워서 살 수가 없었다. 진작 알았어야했는데, 미처 알지 못했던 내 자신이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작년 이맘때의 나는 독일어에 허덕이고 있었다. 재밌지만 재미있지 않았던 새 언어 배우기. 그리고 늘지 않는 실력. 매달 530유로씩이나 내야하는 비싼 학원을 다니면서 전혀 달라지는게 없어서 괴로웠다. 공부는 재밌지만, 공부를 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결과에 매번 괴로웠다. 그렇게 독일어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학원 수업 진도의 속도에 비해 내 스스로의 공부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학원을 잠시 그만두었고, 나는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만두고서야 느낄 수 있었던 너무나도 당연했던 점은, 강제적으로 매일 3시간씩 듣던 독일어는 생각보다 효과가 꽤 좋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언어를 잃었다. 독일어도 못하면서 무슨 언어를 잃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주변 환경이 한국어가 아닌 상태였기에 나는 언어를 잃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밖을 나가면 모든 곳에서는 독일어가 들려오는데, 나는 분명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은 삶을 세 계절이나 보냈다. 2011년에 구입한, 낡은 노트북이 켜지지 않는 날이 많아졌고, 굳이 켜지 않다보니 켜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문제는, 핸드폰을 새로 깔면서 각종 앱 연동에 문제가 생겼다. 다른 앱들은 뭐 어떻게든 찾으면 되는거였는데, 카톡은 이전에 쓰던 번호가 필요하다고 한다. 개인적인 사정과 유난유난 개유난으로 한국에서 쓰던 번호로 카톡을 가입한 적이 없었던 나는, 사흘에 한번 꼴로만 켜지는 노트북에서만 카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과 연락하는 것도 뭔가 죄송스러워서 연락을 뜸하게 했더니, 동생에게 와츠앱(외국 메신저)으로 '엄마가 누나랑 연락이 안된대'같은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행복하자고 결정한 독일행인데 많은 사람에게 걱정을 끼쳤다. 결국, 핸드폰에는 독일 번호로 새 카톡을 깔아야만 했다.


놀랍게도 최근 차차 상태가 좋아졌고, 그 이유를 다양히 찾아본 결과, 아마 상태가 좋아지는 것의 시작은 모국어로 쓰여진 새로운 책을 읽었을 때 즈음이었던듯하다. 사실 모국어로 된 책이 나를 치료했다! 고 하기엔, 게으름부리며 + 특별히 도움이 되지도 않는거 같은데 매달 수십유로의 돈이 아까운 마음도 들고 해서 그간 먹지 않았던 영양제를 다시 챙겨먹기도 했다. 그리고 거의 1년을 고장난 씽크대로 살다보니 집에서 요리를 안해먹게 되었었다. 최근, 집 관리인이 씽크대를 고쳐줘서 더 이상 화장실에서 사방천지에 물 튀어가며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된 점도 큰 변화이다. 물론, 열흘 전쯤부터 해가 쨍쨍해진 것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무엇 하나가 그간의 무기력함의 절정 속에서 죽고 싶지만 죽지도 못하는 상태에 있던 나를 다시 살 수 있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복합적이게 보이는 다양한 이유 속에서 가장 첫 부분에 있는건 역시나 모국어로 된 책이다. 참 이상한 점은 나는 활자에 중독된 사람이라 트위터를 너무 좋아하고, 한국어로 된 뉴스도 매일 잘 읽고, 한국 예능을 같이 보며 웃을 수 있는 남자친구도 있고, 종종 같이 밥먹자거나 커피마시자거나 하는 지인도 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니 사실 큰 도움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모국어 굶주림을 채워주지 못했던 것 같다. 1년 만에, 모국어로 쓰여진 소설을 읽고 나니 그 잊고 있었던 행복함의 게이지가 쭈욱 채워졌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들르게 된다면, 다른 무엇보다 크레마를 꼭 사올 것이다. 종이책은 독일에서 구하기도 어렵고 짐도 되니 어쩔 수 없지만 모국어로 된 책은 꼭 꾸준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기간의 한정이 있는 비자로 살아가는 외국인 신분이면서 세 번의 계절을 이렇게 흘러보낸 것은 엄청나게 멍청한 짓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



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만하임으로 어학을 하러 오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작년에 온 내가 이제 누구를 데리고 관청을 가기도 하고 특히 슈페어콘토 관련된 것을 이것저것 알려줄 일도 생기게 되다보니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정리를 다시 하려다가, 가장 많이 궁금해하는 어학원에 대해서 써보려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만하임 대학교 어학원에 대한 것을 먼저 쓰고, 제일 먼저 다녔던 EIMS, 그리고 (다녀보지는 않았지만) 아벤트 아카데미에 대해서도 한두줄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만하임은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는 않다. 물론 프랑크푸르트에 비해서는 저렴한 편인데, 같은 집이어도 작년에 계약하는 것과 올해 계약하는 것의 가격이 다르다. 만하임의 경우에만 그런 것은 아니고, 어쩌면 다소 생소한 개념인데, 같은 아파트의 같은 평수의 방이어도 가격이 전부 다 다르다. 새로 계약할 때마다 15~20유로 정도의 금액이 더 올라가는 독일의 월세 계약내용이라 그렇다. 예를 들면, 내 방의 경우 만하임 시내의 학생기숙사이고 24크바이다. 나는 작년 7월, 밤미테 350유로에 방을 계약했다(전기세 별도). 내 이전 세입자는 330유로에 계약을 했었고, 내 방에서 내 다음에 살게될 세입자는 360~370유로에 방을 계약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대부분의 방은 가격이 같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만약 어떤 방은 6개월씩 세입자가 바뀌고, 내 이전 세입자처럼 어떤 방은 2년을 쭈욱 살았다고 생각하면, 그 두 방은 이미 80유로의 월세차이가 나는 것이다. 물론 6개월씩 바뀌는 경우에는 20유로가 오르지는 않는다고 알고 있다. 기간에 따라 올라가는 금액은 조금 차이가 있지만, 이전 세입자에 비해 막 50유로를 올리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고 들어서 그 방에 쭈욱 오래살았던 세입자가 있는 방은 상대적으로 금액이 낮을 수 밖에 없다.


아휴, 어학원 얘기하려고 했는데, 다들 집 구하기를 어려워해서 이렇게 집 얘기를 또 했다. 무튼, 20175월 현재 만하임 대학 부설 어학원의 한달 학원비는 550유로이다. 첫달은 550유로이고 두번째달부터는 530유로를 내면 된다. 갱장히 비싸고 비싸다. 그래서 작년 봄에 만하임에 아베체데도 모르고 도착한 나도, 너무 비싸서 우니 부설 어학원 등록하는 것을 멈칫했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내 인생 전체를 압축할 수 있는 말인 "쉬운 길은 다 제끼고 돌아가는 길을 좋아하는 삶"에 또 한 몫했다. 우니 부설 어학원을 다니면서, 내가 작년에 여기를 먼저 등록했다면 더 잘 배울 수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뭐 후회하면 무얼 하겠냐만은-


우선 만하임 우니 부설 어학원은 이미 5월 즈음에 내년 수업 계획이 전부 다 공개된다.

2017Kurstermine http://www.daf.uni-mannheim.de/de/intensivkurse_deutsch/kurstermine_2017/

2018Kurstermine http://www.daf.uni-mannheim.de/de/intensivkurse_deutsch/kurstermine_2018/

작년 중순에 485유로에서 500 초반으로 오르고 올해 한방에 550으로 오르더니 내년은 동결인가보네...

가장 비쌀 때 학원 수업 듣는, 돈지랄하는 보람^^...


수업 일정과 DSH 시험일정을 같이 보면 알겠지만, 수업 날짜 자체가 아예 DSH 시험에 딱 맞춰져있다. 그리고 독일의 5,6월은 휴일이 많아서 기간이 살짝 길어보이지만 정확히 수업일은 20일이다.


만약 내가 20179월에 시작하는 수업을 듣기 원한다면, 나는 825일까지 등록을 마쳐야한다(Anmeldeschluss). 그리고 94일 월요일 오전 9시에 L15,14로 가서 반배치고사(Einstufungstest)를 봐야한다. 한국에서 B1까지 공부하고 왔다고 해서 바로 B2나 B1를 들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말자. 시험지를 받아보면 다소 심약한 사람은 꽤 곤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시험지를 받은 후 5분쯤 혹시 내가 A1부터 다시 듣게되는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마저 들 수 있다(내 경우). 바로, 첫 페이지가 작문이기 때문이다. 그냥 작문도 아니고, 주제는 한줄로 주어지고 그것에 대해서 쓰라고 A4 한페이지가 할애되어있다. 그리고 나는 배점이 40%?였던 작문을 거의 날려먹었기때문에 (퍼센트가 확실치 않은데 40%였던가 60%, 거의 절반 가까이의 퍼센트였고 충격이 너무 커서 정확히 기억도 안난다.) 한국도 아닌 독일에서 B1까지 들었지만, 내 수준은 A2라는 평가를 받고 충격과 공포...


아예 하나도 모르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본인이 생각하는 본인의 독일어 레벨보다 한두단계쯤은 낮은 반으로 배정이 되는데, 그래서 불만을 가지는 경우도 꽤 있는걸로 아는데, 이건 수업에 들어가보면 깔끔히 사라진다. 내 경우에는 첫날은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듣고 첫날 수업이 마치면 오피스에 가서 하다못해 A2,2로라도 좀 올려줄 수 없냐는 얘기를 하려고 가려했는데, 첫 날 수업을 들어갔는데 어쩌면 난 이보다도 더 아래반에서 시작해야하는건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수업을 같이 들었던 학생들이 다 뛰어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A2인데 다들 독일어로 말하고 있었다. 그것도 몹시 빠른 속도로. 이게 뭐지.. 그렇게 20171월, 만하임 우니 부설 어학원에서 A2,1부터 시작했다.



내가 EIMS를 다녔을 때, 단 한번의 중간시험도 승급시험도 본 적이 없다. 이것은 분명히 EIMS의 시스템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하임 우니 부설 어학원은? 매주 단어시험이 있고, 2주째에 중간시험(Zwischentest), 4주째에 종강시험(Abschlusstest)가 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다음 과정을 들을 수가 없다. 시험은 네 영역 모두 다 치뤄진다. 듣기/읽기/쓰기/문법, 그리고 매주 단어시험은 보너스. 듣기와 읽기 / 작문과 말하기 / 문법과 단어, 이렇게 세 영역으로 묶어서 평가된다. 첫 달이 끝난 후 받았던 성적증명서이자 수료증 http://fromde.tistory.com/244


B1,1쯤 올라오면, 이미 시험을 못봐서 못올라오는 학생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살벌하게 어려워진다. B1를 제대로 안해두면 독일어가 발목을 잡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발목이 잡혀있다..... 무튼, B1,1때의 공부량은 실로 어마어마한데, 어학원을 다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엄청 바쁘다. 심지어 나 혼자하는 공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학원에서 내준 숙제를 다 하는데 한 세시간쯤 걸리고, 그 날 배웠던 것들 - 심지어 통째로 다 복습하는 것도 아니고, 단어만 새로 다 찾아보는데도 한나절이다 - 을 복습하다보면 해가 진다. 이걸 쉬지않고 하다보면 진짜 진이 빠진다. 꽤 많은 학생들이 B1,2까지 마치고 Pause(자체방학)을 한다고 한다. 나도 그 중 하나이다. 그래서 B2,1부터의 얘기는 없다. 듣지 않았으니까!!!




파우제를 하고 스스로 공부하겠다는 결심은 이미 자연발화된지 오래.. 대체 언제 공부했었나 싶을 정도로 신나게 매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잘 놀고 있다. 세상에 아무것도 안해도 이렇게 잘 놀 수 있다니...를 느끼고 있달까.


이 글을 처음 썼을 때의 제목은 "만하임 대학교 어학원에 대하여"였다. 그런데 다 쓰고 나니 너무 만연체이고, 이건 만하임 대학교 어학원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4개월간 우니 부설 어학원을 다녔으나 따라가지 못하고 자체방학을 해야했던, 부진아의 넋두리정도라서 제목을 바꿨다.

"만하임 대학교 어학원 부진아의 넋두리"


'aus Deutschland > Mannheim' 카테고리의 다른 글

Mannheim Stadtfest!  (0) 2018.05.27
어예! 신분증!!  (1) 2017.04.19
St.Peter Kirche  (0) 2017.04.13
Café BRUE  (0) 2017.04.08
신선놀음  (0) 2017.04.0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