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아닌, 그르니에 전집의 첫 번째 책. 섬. 알베르 까뮈를 좋아한다고 자주 말했지만, 그가 영향을 받은 사람은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까뮈 그 자체만으로도 내게는 너무 충분했다. 심지어 잘생겼으니 퍼-펙트. 민음사의 이번 이벤트인 손끝으로 문장읽기(이전 글 읽기)에서 까뮈와 그르니에의 몇몇 책이 선정되었다고 해서, 단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골랐다. "섬"


모국어로 씌여진 새 책을 읽은게 반년만이라, 프랑크푸르트에서 책을 전해 받자마자 세 시간도 채 안되어서 후루룩 읽었다. 문자 그대로 "후루룩" 읽었다. 쉽게 쓰여졌다고 생각했기에 크게 생각지 않고 훅훅 넘어갔다. 하지만 두 번째에 필사를 하면서 천천히 읽기 시작하니, 문장 하나하나가 다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읽었던 문장을 손끝으로 다시 읽으면서 책 전체를 필사하고 있다. 



많은 문인들과 수도자들이 필사를 한다고 알려져있다. 문인들은 좋은 문장을 배우기 위해서, 수도자들은 수도를 위해서. 나는 그 두 목적 모두를 위해서 매일 필사를 하고 있다. 마침, 4 24일의 세계문학캘린더가 비어있는 페이지라서 이 책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넣어봤다. 그리고 마지막 날인 오늘, 26일, 책 전체를 다 베낀 노트를 촤라락 넘기는 영상을 찍으려했는데, 캐리어를 분실하게 되어서 지금 책이 내게 없어서 필사를 몇 일 못했다. 고로 나는 다음달에도 이 책을 베껴쓰고 있을 예정이다. 오늘 오픈한 민음사의 다른 이벤트인 밑줄긋고 생각읽기에 떨어져서 이렇게라도 혼자 뭐라도 해보려는건 아니다. 아니 맞다. 그 이벤트에 대기할 수 있게 되면 (독일과 한국의 시차 상 이벤트가 오픈되는 시간은 학원가기 직전이라 제일 바쁜 시간이다...) 민음북클럽과 같이 신청해서 이번에는 DHL로 받아보려했는데, 그런 것까지는 제발 좀 하지말라는 하늘의 뜻인지 오늘 오전에 정신없이 바빴었다. 무튼, 그렇게 나는 다음달에도 이 책을 혼자 꿋꿋히 필사할 것이고, 책 한권을 다 쓰고 나면 단 하나뿐인 내 글씨로 씌여진 장 그르니에의 "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벌써 설레인다.



가난한 사람에게 병이란 여행과도 같은 값을 지닌 것이며 병원 생활이란 그 나름의 으리으리한 고대광실 생활이다.

만약 부자들이 그걸 알았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병에 걸리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책을 읽지 못했던 몇 달간 참 많이 아팠다. 그리고 책과 함께하고 있는 최근 세 달은 매일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비록 읽었던 책을 외울 정도로 또 읽고 또 읽고 하고 있다는게 조금 속상하지만. 그래서인지 5월 중순쯤 집에서 보내줄 택배 안의 민음사의 몇몇 책들이 더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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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필사하는 것을 몹시 좋아한다. 여태 전체를 필사했던 책은 무진기행 한 권뿐이지만, 언젠가는 매일 30분 정도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필사하면서 지내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지난해에 민음사에서 처음 시작한 "손끝으로 문장 읽기"라는 이벤트. 출판사답게 이벤트 이름부터 이미 까리하다. 그리고 참여인원은 선착순 100명. 1회 때 선착순에 드는 것에 실패하고, 2회 때는 바빠서 확인을 못했었고, 이번이 3회째. 너무 좋아하는 알베르 카뮈와 그 카뮈가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알려진 장 그르니에, 이번 손끝으로 문장읽기의 작가는 그 둘이다.


한국에서도 선착순에 드는 것에 실패했었는데, 이 느리고 느린 독일인터넷에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아예 알람을 맞춰두고 대기탔다. 선착순은 십여년 이상 콘서트 광클로 다져졌기에 한국에서라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독일의 느린 인터넷때문에 자신은 없었다. 너무 당연히 정시 전에 로긴을 미리 해두려는데, 세상에... 휴면회원... 독일에서 1년 정도 있었더니 대부분의 한국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휴면회원 처리가 되어있었다. 아예 새로 가입하려는데 나는 아이핀도 내 이름의 한국 휴대폰도 없다. 아- 어쩌란 말인가.


한국에서 독일로 이 책을 배달해주기로 했었던 지인에게 SOS를 날렸다. 내가 말한 그 선착순으로 대기타서 책 사는거 (이렇게밖에 설명 못함 ㅋㅋ;;) 하려는데, 내 회원정보가 없고 휴면회원이 되있더라. 그러니 네 이름으로 민음사 가입 좀 하자고... 인증번호 하나만 받아줘.... 제발.... 어리둥절해했지만 내가 너무 부탁을 하니까 걍 해줬다. L군에게 겁나 고맙다. 그렇게 내 이름이 아닌 타인의 이름으로 민음사 웹사이트에 가입했다. 서버시간;을 확인해가며 정각에 눌렀지만, 서버가 뻗었다. 음ㄹ이라;머이 함;ㅕㅈㄷㄱ매 ㅕㅎ;맞ㄹㅇ ;ㅁ


뻗은 서버 한두번 보는 것도 아니고... 다른 메뉴들은 대충 되는거 보니 딱 그 페이지만 뻗었길래 침착히 기다렸다. 그리고 감격스럽게 성공!




이벤트 안내 페이지.





그리고는 이 책을 받겠다고 프랑크푸르트로 나갔다. (나갈 일 없었음...)

나는 정해진 6권의 책 중 "섬"을 골랐다. 무슨 책인지 전혀 모르고 제목으로 책을 선택하는건 언제나 신나는 일이다.


작년인지 제작년인지 모르겠지만, 민음사에서 작가노트도 증정한 적이 있었다. 그 노트들 퀄리티가 너무 좋아서 (난 개인적으로 출판사에서 만드는 노트들을 다 좋아한다. 책을 만드는 곳이라 종이 퀄리티 개짱) 독일까지 짊어지고 왔는데, 이렇게 또 나의 인스타 사진을 위해 열일해준 아이템도 됐다.




첫 필사 과제 제출 시에는 한문장만 적었는데, 책이 너무 좋아서 한 문장만 적을 수 없었다. 노트를 한 권 샀다. 그리고 Beck's- 캬-




책 전체를 필사해볼 예정이다.




매일 아침 세계문학캘린더를 필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는데,

(세계문학캘린더 필사 전용 내 해시태그 #Ria_Daily, https://www.instagram.com/explore/tags/ria_daily/)

이젠 세계문학캘린더의 한 문단을 쓰고 나서, 장 그르니에의 '섬'도 필사하기 시작했다.


주말은 치즈케익이라는 특식이 나를 기다린다!! with 냉침한 히비스커스.




하이델베르크에 갔을 때 누워서 책 읽다가 풍경이 너무 좋아서 찍어봤다. 하늘이 어찌나 맑고 파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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