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에 한달을 살면서도, 여기에 미술관이 있을거라고는 생각을 안했다. 있다해도 이 작은 도시에 있어봐야 뭐가 있겠나 싶어서 딱히 찾아보지도 않았고. 동생과 어제 중앙역에서 집으로 걸어오다가 Kunststrasse(Kunst=art, strasse=street)를 봤다. 이 근처에 미술관이 있나본데? 그리고는 일요일 아침, 비가 너무 많이 와주시는거지... 원래 오늘 하이델베르크 가는 일정이었는데, 일정을 바꿨다. 비가 오니까! 근처 미술관(실내)으로 가자! 동생이 만하임 미술관 사이트를 들어가보더니, 마침 보고 싶은 그림도 있다고 한다. 오, 그럼 잘됐네-


비가 많이 와서 하이델베르크는 내일로 일정을 바꾸자! 라고 하고 집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미술관으로 출발하려는데, 날씨가 개고 있다. 독일 날씨를 예측한다는건 거의 불가능하다는거 잘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금방 날이 개어버리면 너무하잖아... 미술관 가는 길에 있는 만하임 유일한 관광지, 급수탑. 급수탑은 스타벅스 쪽에서 보는건 뒤쪽이고 이렇게 보는게 올바른 방향이다. 분수며 잔디밭이며 너무 잘 되어있다.





입장료 얼마인지 찾아보니 1회 입장료 9유로, 연간 이용권 35유로라 안내되어 있었다. 네 번만 가도 연간이용권이 이득이니 연간이용권을 끊으려했는데 내년 1년간 미술관 리뉴얼로 닫아서 연간 이용권을 살 수가 없다고... 이렇게 또 내 돈을 아껴주시는거지, 암... 그렇게 나는 9유로, 동생은 학생 할인 받아서 6유로를 내고 입장했다. 



상설 전시만 생각하고 온건데, 운 좋게도 특별전시가 있었다. 나는 처음 들어본 작가지만, 작품을 전부 다 보고나서 인터넷에서도 찾아보니 엄청 유명한 작가였다. 독일 다다이즘의 대모이자 페미니즘 작가인 Hannah Höch. 베를린 다다운동에 참여한 유일한 여성작가라고 한다. 올해가 다다이즘 100년되는 해라 유럽쪽에서는 다다이즘 특별전시가 많은 듯 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유명한 작가의 전시회는 종종 갔었다. 하지만 전혀 모르던 작가의 초기 작품부터 그 시기를 구분짓게 되는 여러 작품들을 모아둔 것을 보니, 새삼 신기했다. 그림을 잘 모르는 내게도 가장 잘 와닿았던 것은, "엄마가 된 후"와, "전쟁 후". 아이가 사랑스럽게만 그려지지 않고 뭔가 짐같은 존재로 표현되어서 새로웠다. 이래서 페미니스트 작가라고 하는구나- 싶은 마음. 현재도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여자는 여성 실격같은 존재로 여겨지는데, 100년 전에 이미 이런 사고를 보여줄 수 있었다니 새삼 세상을 빨리 살았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또, 전쟁 후의 그림들은 공포와 상실감이 너무 크게 그려져서 그림을 보는 그 짧은 시간에 내가 다 힘들었다. 100년 전의 예민한 예술가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 공감했달까. 이렇게 짧은 시간만 보는 나도 힘든데, 이걸 그려낸 작가는 얼마나 괴로움의 시간들이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콜라쥬 작품들이 많아서인지, 전시장 중 한 곳은 직접 콜라쥬를 해볼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직접 사진을 찍어볼 수 있게 작은 기기가 있었고, 원하는 사진을 직접 찍으라고 잡지들도 있었다. 나는 여기서 또 자의식을 뿜뿜하며, 셀카를 찍고 콜라쥬에 넣었다. 이걸 보던 동생이 어이없어했다. 그리고 이 콜라쥬로 거의 다 놀았을 즈음, 독일 할머니 두 분이 하고 싶어하시는 눈치여서, 내 셀카 위에 다른 그림을 얹은 후에 자리를 비켜줬다.






나중에 동생이, 이거 미술관 공식 웹사이트같은데 자동저장될 수도 있어- 확인해봐... 뭔데... 왜 미리 얘기해주지 않은거야?




그리고 이건 전시회에서 설명된 부분을 찍은건데, 독일은 따옴표를 이렇게 바깥으로 쓰는건가? 아니면 특별히 강조하기 위해서 이렇게 쓴건가? 바깥으로 쓰니까 좀 더 귀여워보이는 느낌이 있다. 내가 자주 얘기하는, "덩치 큰 게르만 남자"가 귀염떠는 그 귀여움. 바깥으로 따옴표 써보고 싶었는데, 웹사이트에서는 자동으로 안쪽으로 설정되는 것 같다. 어떻게 써볼 수 있을까 ;_ ;




한나 회흐의 특별 전시를 다 보고 나오니 설치미술도 있었다. 작품의 제목은 "만하임 의자"

자세한 설명은 만하임 미술관 링크로 대체한다. 너무 당연히 독어지롱...

http://www.kunsthalle-mannheim.de/en/exhibition-current/michaela-melian


간단히 얘기하자면, 의자이면서 이 전체가 스피커다. 당연히 앉을 수 있고, 주변 배경은 옛 도서관이다. 이 의자 말고도 두 개의 의자가 더 있었고, 다들 앉아서 스피커에서 들리는 뉴스같은 것을 듣고 있었다. 나는 뭔소리하는지 못들었지만, 듣는 척하며 이렇게 사진을 하나 남겨봤다. 동생이 와서 딱 하나 마음에 든게 있다면, 이렇게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었다는 것. 물론 거의 수백장을 찍어서 이거 딱 하나 건진거지만, 하나라도 건진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표정이 아주 잘 잡혀서 엄청 뿌듯하다.




(부끄러우니까 사이즈는 작게! 하지만 얼굴을 모자이크하진 않겠다. 표정이 이 사진의 완성이니까! - 또 자의식 뿜뿜..)




그리고 상설전시로 이동! 



상설전시에는 정말 많은 그림들이 있었다. 동생이 보고 싶었다는 그림은 마네의 '막시밀리안의 처형'이었다. 미술관에서 보지 않으면, 대부분의 그림 사이즈가 어떤지 전혀 감을 못잡는데, 이 그림은 가로 세로가 거의 3미터쯤 되는 엄청나게 큰 작품이었다. 나도 알 정도의 유명한 작품이라, 이런 작은 도시의 미술관에 어떻게 이렇게 유명한 그림이 있는거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동생이니까, 이 앞에서 또 인증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림 크기가 너무 커서 어떻게 서도 제대로 안나오고 몸이 전체가 다 나오는 - 뚠뚠이라 그렇게 찍으면 큰일난다 - 구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왕 몸 다 나와야하면 누나가 저 총맞는 사람처럼 연기해! 라는 동생의 신박한 조언에, 귀얇은 누나는 또 그걸 해봤다. 하지만... 사진을 올릴 수는 없다. 배나온거 자랑하는거처럼 나왔더라... 눙무리...ㅠㅠㅠㅠ 



그리고 고흐, 모네, 르누아르의 그림도 한 점씩 있어서 나는 입장료 9유로 내고 이렇게 엄청난 전시를 봐도 되는건가? 싶었다. 이미 한나 회흐의 전시에서 충분히 많은 것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유명한 작가의 그림들도 있라니. 더 유명하고 큰 미술관은 얼마나 더 많은 유명 작품들이 있을지 기대가 더 커졌다. 루브르라던가 오르세라던가. 하지만 아쉬운 점은, 내가 그림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 그림들을 제대로 다 느끼지 못했을거라는게 가장 크다. 이런 것을 미술 전공하는 동생과 얘기했는데, 그냥 그림을 그대로 느끼면 되지 뭘 분석하고 싶어하냐고 했다. 물론 그림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기본지식이 있으면 더 잘 느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건데 동생이 듣기엔 그렇게 들리지 않았나보다. 나는 뭐든 조금은 공부하고(알고) 체험해야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흔한 책상형 인간이고, 동생은 책상에서 하는 것들을 딱히 즐기지는 않는 예술가형 인간이라 그러려나. 내가 요즘 다다이즘 공부하고 있는거 알면 동생은 또 식겁하겠지- 


인상주의 초현실주의 고전주의 이런 미술 사조들을 순서대로 차곡차곡 알아가고 싶을 뿐인데, 그걸 알면 아무래도 그림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동생은 저런 "쓸모없는" 지식들이 그림을 느끼는데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역시 예술은 어려운거였어. 뭘 어떻게해야 더 잘 알 수 있을지 아직도 고민중이다. 날씨가 너무 반짝여서 조금은 속상했던, 2016612일 일요일의 만하임 미술관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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