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10번출구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일어난지도 열흘이 지났다. 믿기 힘든 사건이고, 온라인의 여혐이 현실로 올라온 상징적인 사건 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한국여자들이 트위터에서 #살아남았다 라는 해시태그로 직접 경험한 범죄 타켓이 되었다가 살아남은 경험을 덤덤하게 얘기하는 것을 보고 착찹해졌다. 여자들의 정신력을 노동력을 아니 여자의 모든 것을 갈아야만 유지되는 사회라면 그게 정상적인 사회는 맞는걸까?


출산율이 낮아졌다고, 이기적인 여자들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여자 동료가 출산휴가를 내면 싫어한다. 출산휴가로 한 명이 빠졌을 때 그 인원을 채워주지 않는 회사를 탓하지 않고 여자를 탓한다. 회사는 본인이 상대할 수 없는 커다란 존재고, 여자는 만만하니까. 어차피 그 여자 동료는 출산휴가 끝나도 같은 자리로 복귀 못할거 아니까. 그러면 그 여자는 동료가 아니라 이제 나보다 뒤쳐진 직원 중 하나가 되니까. 정말정말 낮은 확률로 어찌 같은 업무로 복귀한다해도 애가 아프네 어린이집에서 무슨 행사가 있네 하면서 자꾸만 조퇴하고 휴가쓰고 할테니까, 회사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사람이 될거니까 계속 더 싫어한다. 그런데, 애 아플 때 아빠가 가면 안되는건가? 한국에서는 거의 없는 개념이긴 하지만, 만약 싱글대디일 경우에 애가 아프면 남자도 조퇴할 수도 있고, 애 어린이집에 엄마랑 아빠가 같이 가야하는 그런 행사라면 아빠도 아이 일이라고 휴가를 낼 수도 있어야하는 것 아닌가? 왜 여자만 아이때문에 조퇴하고 휴가내야하지? 아빠는? 여자 혼자 애 낳았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그렇게 아이가 아프고 어린이집에 일이 있고 할 때마다 휴가를 자꾸 쓰는게 눈치 보이니 아이 엄마는 - 어쩌면 그 모지리보다 더 일을 능률적으로 잘 했을지 모르는 생산인구 한 명이 - 퇴사를 한다. 그리고 아이들 어린이집 데려가고 데려다주고 하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집안일을 하며 지낸다. 직장인이었을 때는 맞벌이니까 집안 살림을 아주 못해도 괜찮았지만, 이제는 전업주부니까 집안일을 완벽하게 하고 싶어서 무리를 한다. 아이들 등하원 시켜줄 때 가끔 까페에서 커피 한 잔 하는게 삶의 낙. 그런 아이엄마들을 여성혐오자들은 맘충이라고 욕한다. 돈도 안벌면서 몇천원짜리 커피로 사치한다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고학년이 되면서 학원도 다니기 시작하면 아이들 학원차가 집앞까지 다 데려다주니까 아이에게 예전만큼 손은 가지 않는다. 그리고 살벌한 사교육비때문에 일을 다시 해볼까하는 마음이 든다. 이미 5년정도를 주부로 살았으니 전문직을 제외한 대부분의 여자들은 예전의 직장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그나마 할 수 있고, 그 나이의 아이 있는 여자를 뽑기도 해주는 일이라고는 마트 캐셔밖에 없다. 이런 여자들 전체를 한국사회는 "경단녀"라고 부른다. 된장녀, 맘충, 이제는 경단녀, 그놈의 女女女女女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건 영원히 2등 시민일 수 밖에 없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서 항상 하등한 존재로 여겨졌으니까. 거지같은 가부장제도는 한국여자의 뼈를 갈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는 제도다. 전통적으로는 제사 때 음식을 남자가 해야한다. 그런건 쏙 숨기고 그 힘든 제삿상 차리기는 전부 여자가 도맡아한다. 그리고는 여자는 제삿상에 절도 못하게 한다. 우리집 성씨가 아니라고 한다. 언제는 이 집으로 "시집"을 왔다고 하더니, 친정에 가면 시집간 딸은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하고, 결혼한 여자는 어디에 속할 수 있는건지. 하지만, 성씨때문에 그런건 절대 아니라는거 딸들은 안다. 나는 아빠와 같은 성씨를 가졌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제삿상에는 절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릴 때, 다들 서서 절하길래, 심지어 나보다 네살이 어린 남동생도 절을 하길래 나도 동생옆에서 절했다가 부모님을 곤란하게 한 적도 있다.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절을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내가 성별을 선택하여 태어났으면, 그것은 내가 다 감수해야할 것들이다. 하지만 나는 성별을 선택한 적이 없다. 태어나고 보니까 여자였다. 그것도 이 지옥같은 한국에서. 전생이 있고 그 업으로 현생의 내가 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난거라면 전생의 나는 뭔가 굉장히 큰 잘못을 했을테지. 2500만명의 전생이 궁금해졌다.



명품가방을 사달라고 하는 여자친구를 둔 남자들은 인터넷에 얼마나 많은지, 다들 밖에 나가서 바람도 쐬고 좀 하지.. 그렇게 사람 안만나고 방에서 상상만으로 여자랑 사귀고 그 상상속의 여자친구가 루이비통 사달라고 해서 된장녀라고 욕하고. 에르메스도 아니고 루이비통이 왜, 루이비통은 명품가방이라는 그 카테고리 안에서는 거의 저가형인데. 백만원짜리 에르메스 8만원짜리 샤넬 립스틱 이런 소리는 좀 하지 말도록 하자. 톰포드 립스틱을 쓰는 회사동료에게 **씨는 알뜰해서 샤넬 립스틱 같은건 안쓰시나봐요~ 같은 소리를 들었다는 도시괴담같은 소리를 볼 때마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여성혐오를 하는 부류들에게 된장녀의 상징은 루이비통 스타벅스 샤넬 립스틱이니까. 스타벅스가 얼마나 저렴한지 모르는 사람은 영원히 모르겠지. 물론 몇몇 메뉴들은 비싸기도 하지만, 스타벅스=된장녀 이 공식은 정말 멍청하다. 매일 끼니당 1500원짜리 김밥을 먹어야한다면 4100원짜리 아메리카노는 굉장히 비싸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몇 시간의 술자리에 수만원을 그냥 턱턱 쓰면서 4100원짜리 아메리카노가 비싸다니. 그냥 여자가 돈쓰는게 존나게 싫다고 말을 해. 여자가 나보다 더 좋은 직업을 가져서 지금 내가 취업을 못하고 있어서 배알 꼴린다고 솔직히 말을 하란 말이야. 그런 말은 남자가! 자존심 상하게! 할 수가 없겠지, 그 죽일놈의 자존심. 그거 본인들이 좀 챙기시라구요. 누가 웅야웅야해줘야 채워지는 자존심이라면 원래부터 없는거 아닌가?




나는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꽤 오래 했다. 거기서 사람들도 직접 많이 만났고, 연애도 여러번 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성별에 상관없이 커뮤니티를 하는게 즐거웠다. 그런데 여자들이 많은 커뮤니티는 뭔가 조금 안맞는 부분들이 있었다. 마치 돼지고기 얘기하듯이 부위별로 쇄골은 손목뼈는 발목 둘레는 어쩌고 하면서 여자의 몸에 대해서 굉장히 억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미용 몸무게라는 것에 대해서 다들 환호하고 소망했다. 미용몸무게는 키에서 15를 빼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43키로여야해.... 중학생때도 이미 50키로 넘었던거 같은데......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몇몇 카테고리가 남자들이 좋아하는 것들과 닿아있었다. 전자기기, 사진, 필기구 등등.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커뮤니티를 하기 시작했는데, 여자를 항상 원한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살빼네 마네 하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서 편했다. 처음엔 내가 여자인걸 굳이 알리진 않았고, 그렇다고 숨기지도 않았다. 숨겨야한다는걸 몰랐기 때문에. 처음 두 커뮤니티에서 내가 여자인걸 알리고 나서부터 뜻밖의 여왕벌;이 되고 나서는 이게 뭔데 내가 넷카마일 수도 있는데 왜 내가 여자라고 이렇게 떠받들지? 싶어서 조용히 탈퇴했다. 그 후로는 거짓으로 남자인 척을 했던건 아니지만, 내가 여자라는걸 알 수 있는 단서는 가급적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근데 또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다보니 그런 자리들에 나가게 되고, 여자라는게 알려지면 조금은 곤란한 상황들이 생겼다. 커뮤니티 참 재밌게 잘 놀았는데, 내가 여자라는게 알려지기 전까지는 그저 편했는데... 


(아무말대잔치 카테고리니까, 특별히 이번 사건은 내게 정말 엄청나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아무말대잔치 중의 대잔치를 벌이고 있다). 무튼 그런 다양한 "남성" 커뮤니티들이 이번 사건에서는 하나로 결집했다.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지 말라!" 야 니네 학교 다닐때 공부 못했지?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다니 사건 파악이 전혀 안되잖아. 아니면 충분히 파악은 되는데 이걸 여혐사건으로 규정해버리면 니네가 지금 하고 있는 여혐이 문제될까봐 그러는거 아니고? 멍청한 놈들... 그런 멍청한 유전자는 진작에 멸종했어야하는데, 왜 2016년에까지 숨쉬고 있는지 모르겠다야. 





나는 사람이 상처를 통해서 성장한다고 말하는건 상처주는 사람들이 본인들 편하자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상처를 통해서 성장한다는건 내가 할 수 있는 얘기지 상처준 사람들이 합리화하려고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지금은 다 잊었다고 생각한 상처도 다시 들춰보면 여전히 아프다. 성장은 나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해줬던 소수의 사람들 덕분이었다. 성장을 들먹거리면서 인간을 난도질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피하고, 피할 수 없으면 반드시 맞서야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여자 혼자 무언가를 상대로 맞서다가는 번화가에서 칼로 찔려 살해당하는 일을 겪게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함께해야한다. 여럿은 혼자보다 강하다.








이래도 내가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염세주의자야?

나는 지나치게 긍정적인 사람인데, 세상이 나를 부정적이게 만들잖아-














내말이, 남자가 여성에게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남자로부터의 보호를 안해도 되잖아요?













많고많은 외국어로 된 포스트잇 중 (영어라 읽을 수 있기도 했지만) 국격!을 제대로 보여준 포스트잇

I'm so sorry you had to go because you were a woman. We fight everyday in Iran



이거 참 웃을 수도 없고...









그리고 이 포스트잇.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다 서울에 살고, 나는 지방에서 왔다갔다 하니까 지겹도록 들었던 말이였고, 들을 때마다 어련히 잘 도착하겠지 뭘 도착하면 연락하래.. 싶었는데, 혹시 내내 이런 의미로 한 말이었을까? 나는 이제야 알았다.









혹시라도, 이런 글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미안하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이렇게나 한국은 여자에게 살기 힘든 나라라고. 

그리고, 이 글이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면, 너무 고마워하지 말아요. 당연한 듯 받는 것도 때론 멋있으니까. 물론 항상 그러면 안됨.







보고 엉엉 울었던 포스트잇 하나가 있는데, 이제야 찾아보려니 도저히 안찾아져서 글자로만 남긴다.


(흰 국화 위에 붙은 노란 포스트잇) "그 어떤 꽃도 미래의 네 꿈보다 예쁠까"









A. 그만둘 수 없다




이미 한거라고 엄청 식상하네


주말이어도 일찍 일어나진다. 별 이유는 없고 그냥 배고파서.. 지금 818분인데 이미 아침 다 먹고 소화 끝났다. 아침부터 닥터후 얘기를 좀 했더니 영국 여행 뽐뿌가 또 휘몰아쳐서, 이왕 가는거면 영국에서도 독일의 내 집으로 엽서 하나 보내야지! 싶어서 우표들 구경하러 영국 우체국 사이트 들어갔다가... 통장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듯한 우표를 발견했다




!!!!!! PINK FLOYD !!!!!!


77개 포스팅 중, 글씨 크기 키운건 처음이다. 어릴 때 밴드해본 사람은 누구라도 이들의 평생 광팬으로 살게 될 것이다. (= 내 얘기) 말이 더 필요없는 그룹. 단 한번도 내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에 오지 않는다면!!! 내가 가겠다!!! 라고 벼르고 있다. 같은 국가는 아니지만 어쨌든 조금 가까워지긴 했다. 글구 독일은 투어에 오겠지... 무튼 아침부터 닥터후와 핑플 우표로 나의 영국뽕이 차오르고 있다. 당연히 핑플 노래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데, 하- 당장 영국에 가야할 것 같아 ㅋㅋㅋㅋ 우표 발행 7월이니 지금 갈 필요 없는데....?



영국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닥터후를 보면서 굉장히 심해졌었다. 수십번을 돌려봐서 웬만한 대사는 다 외우고 있다. 하지만 카닥부터는 안봤다. 늙닥.... 연기력이나 그런 것에 대한 이의는 전혀 없다. 이미 영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배우고, 닥터후에 까메오로 출연한 적도 있고. 근데 그거랑 나랑은 다른 얘기.. 제 시간을 들여서는 젊은 남자를 보고 싶습니다. 에클닥은 첫 뉴닥이었으니까 마음으로 품었는데, 도저히 카닥은 안되겠다... 재생성 언제 다시하죠...? 젊은 닥터 보고싶다....


그리고, 나는 닥터후에 대한 환상과 박사학위에 대한 환상이 결합되서 ㅋㅋㅋㅋㅋㅋ 닥터로 불리고 싶어서 박사학위 진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 (아무말 대잔치에 이은 아무생각대잔치.. 어릴때부터 이렇게 이상한 생각을 자주 했었다ㅠㅋㅋ 나는 이렇게 흘러가는대로 살아왔다. 그래서 이러고 사는듯) 하지만 석사과정을 하다보니, 박사는 내 길이 아닌가본데? 석사까지만...으로 겨우 석사학위에서 끝냈다. 박사는 다들 닥터라고 불러주는데, 석사보고 아무도 마스터라고는 안불러준다. 마스터라고 불리는 것도 꽤 괜찮은거 같은데 말이다 (의식의 흐름속에서 펼쳐지는 아무말대잔치)


마스터는 독일어로 마이스터인데, 당연히 석사학위자가 마이스터는 아니다. 독일에는 닙 마이스터도 있다고 한다. 나처럼 보급형 만년필만 써제끼는 사람은 닙 마이스터의 존재 같은건 몰라도 되는데, 얇고 넓게 파는 덕력이라 알 수 밖에 없었다. 만년필은 애초에 태생이 고가이니만큼, 이걸 관리해주는 사람은 당연히 있었을거라 생각하긴 했었다. 그런데 아직도 있다니... 좀 놀랍다. 미래의 날 언젠가에, 보급형들 졸업하고 고가 만년필에 입문하게 되면, 닙 마이스터를 찾아가보고 싶긴 하다. 그 때쯤엔 내 독일어도 좀 쓸만하겠지. 기대된다. 그리고 나는 영원히 고가 만년필 입문은 못했다고 한다




영국 여행은 닥터후 투어로 혼자 기획;한게 있다. 수많은 덕후 선배님들이 영국의 닥터후 촬영지를 전부 다 돌아다녔고, 나는 쉽게 그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제일 처음 가게 될 닥터후 뮤지엄에서 이미 너무 좋아서 못나오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무튼 닥터후에서 너무 자주 뿌셔뿌셔당하던 빅벤부터, 영국의 빨간 버스, 근위병까지 다 직접 볼 생각하니 너무 행복하다. 올 9~10월쯤에 유럽 입성 6개월 기념;;으로 가려고 생각했었는데, 우표발매는 7월이다. 7월 말에 뮌헨 맥주순수령 500주년 축제가야하는데...? 숙소 다 예약했는데? 독일에서 살게 되면서 나 자신과 한 약속 중 하나는, "한달에 한번만 이 도시를 벗어나기"였다. 나는 정말 잘 싸돌아다녀서 그런 나 자신과의 약속 없이는 아마 독일 입국 후 매주 스위스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다 다녀왔을거다... 직접 가서 구매하는 것의 또 다른 문제점은, 기껏 영국 우체국에 갔는데 품절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올해, 수달 우표 미니시트 사겠다고 발매당일에 우체국 문열기 30분 전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1등이니까 내가 살거 한장은 있겠지! 정말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취미우표 특별온라인판매에서 주문한 사람들도 다 못줬다고 미니시트는 못구한다고 단호히 까인 기억이 난다. 영국까지 차비를 그만큼이나 들여서 갔는데 매진이라면??? 절대 안될일이다. 분명 배송되는 옵션으로도 판매할 것 같은데... 영국 우체국 조회 시스템 너무 후지다... 아니, 내가 영어를 못하는거겠지ㅠㅠㅠㅠ 반드시 사고 말겠다. 통장이 개박살나고 있는데, 다른데서 아끼면 된다. 옷 살 일 없다.



음, 지금 집보다 싼집으로 이사가면 우표들 가격은 좀 해결될 것도 같은데, 싼 집이 없다는게 함정. 무튼 오늘 아침부터 너무 씬났었다. 더쿠의 나라 영국. 저도 핑플 우표 한세트만 사게 해주세요.... 기념인 까리한 것 좀 봐.. 피크 모양의 기념인이라니.. 못구한다면 진짜 슬플 것 같다...





당장의 박살나는 통장보다 나의 덕질이 더 중요하다. 박살나는 통장은 미래의 내가 고생하겠지!

물론 미래의 나는 오늘의 나를 욕하겠지... 돈 좀 아껴쓰지!!! 우표에 100유로를 쓰다니... 하면서 




하루 세 시간의 수업은 짧다는 생각도 들지만, 학생이 둘이라 진도가 훅훅 나가니까 세 시간이어도 굉장히 많은 부분을 배우게 된다. 그 날 배운 것은 그 날 복습해야 그나마 따라갈 수 있고, 또 숙제도 있다보니 나름 복습+숙제만 하는데도 시간이 꽤 많이 든다. 그런 이유로 예습은 못하고 있다... 요즘 하는 일은 독일어공부(복습+숙제), 밀린 티스토리 쓰기, 점심/저녁 챙겨먹기가 전부인데, 이것들만 해도 하루라는 시간은 살벌하게 흘러간다. 특히 점심 저녁 챙기는게 은근히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꽤 든다. 한국에서는 편의점 도시락으로 근근히 연명;하다가, 이곳에 오니 식재료가 워낙 싸서 시간많은 내가 직접 해먹지 뭐! 싶은 마음에 직접 해먹기 시작했다. 직접 만든다는 재미는 있지만, 특별히 요리에 (아직까지는) 취미가 없는 내게는 뭐 그다지... 


같이 수업듣는 스페인사람은 새벽에 일을 해서 거의 복습을 못하는 것 같았다. 복습을 못하는데도 그 정도인거 보니 같은 유럽어라 나보다는 조금 더 쉽게 배우는 것 같아서 조금 부럽지만, 넘치는 시간으로 내가 복습하고 공부하고 있으니까 결국에는 아마 내가 더 잘하게 될 것이다. 반드시 그럴 것이다. 그 학생이 좀 버거워하는 것 같았는지, 선생님은 오늘 숙제를 안내주셨다. (오늘이 수업 8일째인데 처음이다)



나는 해야할 일을 미리하는 그런 성격이 전혀 못된다. 미룰 수 있는 일은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직전에 몰아치기로 하는게 오랜 나의 못된 습관인데, 그래서 뭐든 닥쳐서 하느라 항상 바빴고, 바쁘고, 바쁠 예정이다. 아마 못고칠 것 같다. 복습은 쭈욱 몰아서 하면 머리에 잘 안들어오니까; 가계부 정리 좀 하다가 복습 한시간 하고, 티스토리 글 하나 쓰고 복습 한시간 하고 이런 식으로 한다. 집중력? 그런거 나는 없ㅋ엉ㅋ.... 그렇게 귀가 후 거의 열시간을 그렇게 점심 먹고 공부하다 놀다 공부하다 저녁 먹고 공부하다 하고 나면 잘 시간이 된다. 물론 이 시간까지 숙제는 하지 않는다. 몰라 나도 왜 그러는지... 그리고는 자정이 되기 전에 잔다. 나도 잘 모른다, 왜 이렇게까지 바른 생활을 하게 됐는지... 하지만 바른 생활이라기 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숙제를 하다보니 일찍 잠드는거 같다; 알람따위 맞춰두지 않고 여섯시쯤 일어난다. 세상에.. 이런 아침형 인간이라니.. 한국 시간을 아직 적용받는건가? 이런 아침형 인간으로의 삶은 교복입을 때 이후 처음이다. 눈뜨자마자 뭔가 먹어야한다. 그래야 머리가 돌아간다. 이제는 나름 다양히 구비된 아침식사들을 내 상태에 따라 선택해서 먹는다. 요리고 뭐고 다 귀찮을 땐 씨리얼이 짱, 그래도 뭐라도 씹고 싶을 땐 짧게나마 아침에도 요리를 한다. 그렇게 뭘 먹으면서 아침에 숙제를 한다. 물론 그 바쁜 시간에도 숙제만 하지는 않는다. 나도 왜 그러는지 몰라.. 주로 티스토리에 글 하나 쓰면서 머리를 좀 돌아가게 만들고; 숙제를 한다. 그 바쁜 시간에!!! ㅋㅋㅋ 숙제하다보면 시간이 급박해진다. 티스토리에 글 쓴 시간이 조금 한스럽지만, 그렇게 시간이 모여모여서 50개의 뻘글이 됐다고 생각하니까 좀 뿌듯은 하다. 곧 100개도 되겠지!


수업 10분 전에 집을 나선다. 하지만 이것도 겨우 빠듯하게 5분 전에 나가서 정각에 교실문을 연다. 물론 9시에 집에서 나가기도 한다. 아 그 5분 좀 제발 좀!!! 하면서 매일 엘리베이터 거울 속의 나에게 욕을 한다. 독일 신호등은 유난히 신호가 짧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학원까지 5분이면 대부분 도착한다. 하지만 오늘은 7분이 걸렸다. 바쁠거라 생각 안하고 또 아침에 한껏 여유부리던 나....


무튼 수업은 9시에 시작해서, 총 세시간을 한다. 중간에 한번 쉬는 시간이 있어서 마치는 시간은 1215분. 아직은 거의 매일 어떤 식재료들이 필요해서 마트를 가고 있다. 한국 마트도 그렇듯이 계산하고 나면 항상 얼마라고 말을 해주는데, 아직 숫자;가 너무 어려운 내게 마트는 좋은 학습공간이다. 줄서서 기다리는 동안 다른 사람들 금액도 들어보고, 내 차례에는 내 금액도 말로만 듣고 숫자 맞춰보고. 물론 항상 틀리지만. 대부분은 오이로(유로) 부분밖에 못듣기도 한다. 차차 들리겠지. 우유나 빵이나 파스타/펜네/푸실리 이런게 돌아가면서 매일 떨어지고 있다. 단체로 떨어지는 것보다 조금 낫긴 한데, 이제 마트 매일 가는 것도 조금 귀찮긴 하다. 수업 마치고 제발 바로 집에 오고 싶어...



오늘은 본의아니게 들어간 곳에서 수십종류의 LAMY 만년필이 있는 코너와 Pelikan 잉크를 만났다. 굳이 찾아간게 아닌데.. 놀랍고 신기했다. 그리고 너무 써보고 싶던 딥펜이 만원도 안해????? (정확한 가격은 여러분의 정신건강상 적지 않겠습니다) 사야지... 이런걸 안사면 후회할꺼야... 하면서 샀다. 그래서 마트에는 못갔다. 과도한 지출을 자제하기 위해 매일 10유로 이하를 들고 나오는데, 딥펜을 사고 나니까 몇 유로 안남은데다 빨리 써보고 싶어서!!!



그렇게 집에 와서는 종이 열댓장에 딥펜을 휘갈겼다. 말 배우는 어린애처럼 독일어를 배워나가고 있는데, 딥펜까지 사고 나니 글씨도 처음 배우는 어린애와 별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딥펜이 너무 잘 써지는데다 닙 종류도 여러개라 꽤 신나게 놀았다. 그렇게 놀고나니 뭘했다고 피곤한지, 아니면 숙제가 없다고 마음이 이렇게나 편할 수도 있는건지. 



원래도 숙제 받은 날에 숙제를 한 적은 단 하루도 없었는데, 얼마나 마음이 편한건지 숙제가 없다고 낮잠을 잡디다. 그렇게 푹 자고 일어나니까 오후 9시... 보통 이렇게 낮잠자면 밤에 잠이 안온다죠? 저는 그런거 없습니다. 밤에도 잘 잘꺼에요... 너무 당연하게요. 내일 아침엔 아마 오늘 못한 복습을 할 것 같네요. 숙제할 시간이 비어버렸으니까... 그렇다면 저는 밀린 티스토리를 오늘 몽창 쓰겠습니다. 이거 쓰기 전에 59일에 장본거 썼으니까 열흘 차이가 나고 있네요. 닷새정도로 줄여진다면 성공이겠군요. 저의 성공을 기원해주세요!



(2016.05.22 공개로 전환! 드디어 사흘 차!!!)

특정 부분에 굉장히 잘 꽂히는데,

그 중 거의 20년 넘게 꽂혀있는 부분이 루트(Root)이다.

정확히 절반인 두 개가 곱해져서 온전한 하나가 된다?

세상 그 어떤걸 똑같이 나눌 수 있을까-


너무 낭만적이야...



아마 조금 더 꽂혔더라면 수학과에 갔겠지, 이정도만 반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비하의 뜻은 전혀 아닙니다, 저는 순수학문 전공자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이 있습니다. 이런 저도 순수학문 전공자라는게 함정)




덕분에, 내 많은 SNS들은 Root로 시작한다.

트위터도, 인스타그램도

(물론 계정명은 다르다, 똑같이 만드는 사람은 아마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한번 트위터 이용자들끼리 만나는 자리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무슨 용기로 나갔는지 잘은 모르겠다)

주최자이자 사회자였던 유명 연예인이 내 계정명을 보시고는

공학도죠? 이래서 공학도들이 사람들하고 잘 만나지를 못해...

누가 이 계정의 Root가 뭐냐고 하면 그냥 뿌리라고 해요,

수학기호 루트라고 하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꺼야

그 연예인의 가족이 서울대 공학부 교수라 나는 이해할 수 있는 개그였지만

다른 사람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다소 진지...


그래? 그렇다면 더더욱 얘기하고 다녀야겠다- 고 생각했다

관련된 이메일 계정도 새로 만들었고, 올 2월부터 시작한 인스타그램도 Root를 넣었다

나는 이렇게나 경고했으니 이런 내가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그냥 가시던 길 계속 가주세요- 라는 뜻이었는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학창시절의 수학따위는 금방 잊는건지

Root가 뭔데? 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

심지어 나의 취미는 원예라고 지레짐작도 많이 하고 있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제 각종 계정의 Root는 수학의 그 Root에요! 제가 거의 20년 넘게 꽂혀있는 이미지에요! 저는 이 개념이 너무 사랑스럽답니다! 이런 제가 이상할지 몰라도 저는 당신들을 해치지 않아요! 라고 말하기 곤란하니까 카테고리 이름을 아무말대잔치로 바꾼 기념;으로 걸맞게 아무말대잔치를 한 번 해봤다.




다시 밀린 것들 쓰러갑니다. 이건 밀린거 다 쓰고나면 공개로 돌릴 예정.


(2016.05.22. 공개로 전환했습니다, 드디어! 닷새분량만 남아서 너무 행복합니다)



몇 명 안되겠지만, 갑자기 티스토리가 없는 주소라고 떠서 놀라신 분들의 연락 잘 받았습니다

저는 뭐든 시작하면 그만두지는 않아요, 그럴 수 없는 성격입니다...




제 티스토리 주소는 이거였죠

deustchland.tistory.com


그런데 독일에 온지 딱 보름째인 오늘이 되어서도

저는 deu 다음의 세 알파벳, uts가 항상 헷갈려요

그래서 오늘도 주소를 적을 일이 있어서 쓰려다가

음 쓰다가 틀려서 곤란해지면 안되지, 

마침 티스토리를 열어놨으니 그걸 복사하자! 했죠

그리고는 별 생각없이 복사하고는

혹시 틀리진 않았겠지...? 이걸 지금 열흘 넘게 열어놨는데???

하고 사전에 단어를 넣었는데......... 없ㅋ엉ㅋ....


예... 아무리 많이 안쓰는 티스토리라고 해도 어떻게 국가이름이 비어있겠습니까...

deutschland.티스토리.컴

없을리가 없죠....

딱히 티스토리를 하고 계시는거 같진 않지만......




그렇게 장렬히 거의 보름간 무식함을 뿜뿜하면서 살아왔습디다



재빠르게 주소를 변경하였습니다

http://fromde.tistory.com/



마치 아무도 못본 것처럼 해주세요


이것은 제 독일 전용 인스타 계정과 같습니다

instagram @from.de




굳이 힘들게 좋아요를 누르고 그런 수고는 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딱히 팔로잉도... 그런거에 특별히 의미두지 않습니다

모든건 제가 다 기록용으로 하는거고, 제 아이폰이 16기가 나부랭이라서 매일 용량부족하다고 하도 사진을 지우라고 해대서... 하는 것일뿐입니다. 물론 가끔 리플 달리고 그러면 또 신나서 답글달고 그러긴 합니다... 제가 행복해서 하는 것이니 좋아요 하나에 일희일비하지는 않습니다. 그런거 의미없다는거 진작 다 알고 있습니다...



동영상을 올리기에 인스타그램이 좋길래 독일 전용 계정까지 만들고 인스타그램 원래 계정도 있고 어쩌다보니 이것저것 주렁주렁하는게 많습니다. 아무래도 독일 전용계정이라 영어로만 올리고 있는데, 짧은 영어라 많이 올라가진 않겠지만, 언젠가 삘받으면 뭐... 올리겠죠....... 언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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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잘 모르던 어릴 때의 나는, 명절때마다 할머니댁에 가면 한강이 그렇게도 좋았다. 왜 큰 도시들에는 강이 반드시 흐르는지 이미 마음으로 알 수 있었다고 해야하려나. 하지만 나의 도시에는 강이 없었고, 나는 서울에서 살게된다면 꼭 강이 보이는 그 곳에서 살고 싶었다.


조금 현실을 알게되자, 평생 일한 돈으로 아파트를 사려해도, 강이 보이는 아파트는 구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뭐, 괜찮다. 어차피 나는 서울에 살 일은 없을테니까.


그렇게 생각해온 나를 조롱이라도 하듯, 서울에서 살게 되었다. 나의 가진 돈으로는 내가 원하는 동네에서는 반지하나 옥탑방만 살 수 있었고, 더 교통이 안좋은 동네로 가야만 햇빛을 볼 수 있는 단칸방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원룸이라는 표현보다 단칸방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이건 온전히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에. 원룸이라고 하면 슬픈 느낌은 딱히 없는데, 단칸방이라고 하면 몹시 슬프다. 나는 단칸방이라는 단어가 주는 조금은 슬픈 그 느낌이 좋다.



반지하와 옥탑방 중에서는 굳이 따지자면 옥탑방이 더 좋은데, 그 당시에 유행한 어떤 드라마때문에 옥탑방도 조금 시세가 올랐었다. 내겐 선택권이 전혀 없었다. 나는 합정동의 반지하에서 첫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아마 지금은 합정동의 반지하마저도 그 때보다 꽤 가격이 올라서 들어가지 못할 것 같다. 내가 합정동에 살 때는 메세나 폴리스가 지어지던 때였고, 인부 몇 명이 안전 사고로 사망하는 기사가 뜨고 그러던 때였다.


내가 합정동을 고집했던건, 내가 갈 수 있는 한강 공원이 있는 동네중에 그 당시에 가장 저렴했기 때문이다. 저렴하면서도 망원 홍대 신촌이 가까워서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영화관과 대형서점에 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학교도 가깝다고 말하면 가까웠다. 지하철을 타지 않고 조금 운동하는 셈 치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기에. 학사일정이 워낙 빡빡해서 일주일에 겨우 한두번밖에 못갔지만, 한강공원에서의 산책은 굉장히 행복했었다. 내가 반지하에 살고 있다는걸 잊을 만큼.





이렇게나 사족이 길다니....

무튼,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바라기만 해왔던 강이 보이는 아파트를 덜컥 계약했다. 이 집은 나의 수준에 비해 굉장히 비싸다. 나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직업이 없고 신원도 불확실한 외국인에게 저렴한 집을 내어줄 독일인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조금 비싼 집을 학원을 통해서 보게 되었는데, 처음에 이 집의 가격을 듣고는 너무 비싸서 갈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당장 다음주부터 어학원 수업이 시작될거고, 나는 이 도시에서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해서 집을 구해야하는건데, 그건 또 너무 복잡한 일이었다. 내가 언어가 안되서 그러는거니 비싸도 이 집을 계약했다.


집의 상태가 굉장히 안좋은데 가격만 터무니없이 비싼거였다면, 내가 그렇게까지 많이 고민하지는 않았을거다. 하지만 집이 굉장히 좋고, 그에 맞게 가격이 비싼거라면, 돈이 부족한 내 탓을 해야지 누구탓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더 저렴한 집을 찾자니, 나는 당장 계좌를 만들어야한다.


독일에서는 거주자등록(Anmeldung)이 굉장히 중요하다. 독일에 거주하는 사람은 누구나 거주자등록을 해야한다. 물론 안하고 살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들은 행정처리를 전혀 할 수 없다. 독일인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외국인이라면, 이 거주자등록이 되지 않은 사람은 계좌를 만들 수가 없다. 아이러니하지만, 계좌가 없는 사람은 독일 부동산을 끼고 집을 거래할 수가 없다. 계좌를 열려면 집주소가 있어야하고, 집을 얻으려면 계좌가 있어야한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하겠지만, 여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계좌가 없어도 거래할 수 있는 집은 조금 비싸도 그 값을 내가 지불하는 셈 치고 계약을 해야한다. 그래야 내가 계좌를 열 수 있으니까. 3일에 집을 봤고, 4일에 바로 이사하는 계약서를 썼다. 계약서는 전부 독일어로 되어있었는데, 영어버전은 없나요... 하니까 괜찮다고 한다. 학원과 연결된거라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조금 두렵긴 했다. 혹시... 하는 마음이 없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큰 맘먹고 계약한, 내 방에서 보는 해지기 직전 풍경. 




주방에서 본 해지는 풍경





첫날 보게 된 이 두 장면이 월세의 반쯤은 다 해먹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매일 아.. 월세 너무 비싸ㅠ 하고 살기엔 내 집은 너무 쾌적하고 넓고 좋기만 하기에, 그저 즐기면서 살기로 생각했다. 물론 나 혼자 사는 집은 절대 아니다. 혼자서 이렇게 크고 좋은 집에 살다가는 매달 몇 백만원을 내야할지도... 나 포함 총 네 명이 같이 살고 있다.


시차라는건 어쩌면 당연한 개념이지만,

시간이 늘고 또 늘어나는걸 겪으며 하루를 보내다보니

뭔가 더 어려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인천공항에서 2016/04/23, 00:40에 떠났는데,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2016/04/23, 14:20에 도착했다.

환승시간 합쳐서 약 스무시간이 걸렸지만,

시차 덕분?에 7시간을 번 셈이다.



열시간을 날아서 아부다비에 도착했는데, 다섯시간이 걸린 것이 되었고,

일곱시간을 날아서 다시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는데, 다섯시간이 걸린 것이 되었다.



누구나 똑같이 가질 수 밖에 없는 24시간인 하루에, 선물처럼 일곱 시간이 생긴 셈이다. 비행기에서 내내 잠들어있었던게 아니라 깨있었기 때문에 더 이런 생각이 든 것 같다. 2016/04/23, 00:40부터 시작한 나의 423일은, 몸이 20시간 40분의 비행과 환승을 겪었어도 여전히 오후 2:40 -



공항에 도착할 때마다 시계를 다섯 시간, 두 시간, 이전으로 돌리면서 마치 내가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된 듯한 기분도 들었다. 나만 하루에 31시간을 사는거지. 다른 사람들은 24시간인데. 하루는 좋았는데, 매일 그런다고 생각하니까 급 졸음이 쏟아지네.... 이런 바람은 없었던 걸로, 취소....




나의 2016 04월 23일은 31시간이라니. 그 사실이 이렇게나 신기하고 생소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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