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전공은 화학이고, 나는 여전히 나의 전공이 굉장히 좋다. 하지만 내 세대는 너무 당연하고 이 영상에 나오는 1세계의 아이들 조차, 여전히 과학은 남자들의 학문이라고 여겨진다. 어째서? 수많은 면접을 보면서 항상 들었던 말은 여자이기 때문에 들어야하는 말들이었다. 남자친구, 결혼, 출산. 계획이 있다고 하면 꺼려하고, 계획이 없다고 하면 모자라거나 유별난 사람 취급받고. 여자는 그저 다음 세대를 생산하는 부속품일 뿐인가? 어째서 여자들은 원하는 학문을 할 수 없는건지?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런 광고 굉장하다. 한국의 모든 브랜드 광고들은 다 썩었다. 국뽕이 없으면 만들어지지 않는 브랜드 광고가 무슨 브랜드 광고인지. 이 짧은 광고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가 보인다고 하면 너무 과한 칭찬인걸까. 저 나이의 아이들이 이미 본인들과 남자아이들이 구별되어서 키워진다는걸 알고 있다. 그것을 저렇게 이벤트로 만들어준다면, 저 아이들은 과학에 흥미를 여전히 가질 수 있겠지. 좋은 광고라는 말로 표현이 다 안될 만큼 좋은 광고다. 


그리고 마지막 문구에 괜히 찡하다. We're waiting for you

어떤 회사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그 말. 얼마나 큰 힘이 될까.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어떤 회사에 내가 들어갈 수 있게 된다는걸 안다면 지금 이 순간도 더 열심히 지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 어차피 미래의 나는 그 회사에 들어가게 되니까, 대충 살아도 되겠구나- 하는. 아마 나는 후자에 더 가까운 사람일 것 같다. 그러니 미래를 모르는 지금, 나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조금 더 잘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중학생의 나는, 너무 당연하게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여고에 진학하면서 총 열개 반 중 이과반은 두 반이 겨우 만들어지고 어거지로 세 반이 만들어지는걸 보면서, 여자들이 수학을 못하는게 아니라 여자는 수학을 못한다는 그 사고가 수학을 못하게 가둔다고 생각했다. 초등학생들을 꽤 오래 지도했는데, 그 나이 때에는 남녀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중학교에 가면서 확 달라졌었다. 그만큼 주변에서 많이 듣게 되니까. "여자는 수학을 못한다는 얘기" 그리고 수학을 못하면 과학을 할 수 없다는 얘기. 물론 맞는 얘기다. 하지만 수학을 못하는 경제학자도 가능한가? 수학 못해서 경영대학 갔다가 대입 준비 다시한 사람을 나는 안다. 수학을 못하면 문과, 수학을 잘하면 이과, 이게 무슨 경성고보 시절 얘기인지.


사람들은 언제쯤 변할까. 정확히 한국은 언제쯤 변할 수 있을까. "과년한 여자는 결혼하고 나면 애 낳는다고 출산휴가 가고 그래서 뽑기 좀..." 출산휴가를 여자만 쓰는 분위기도 사라져야하는데, 현재 한국의 분위기를 보면 남자가 출산휴가 쓰는 분위기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은 모두가 다 같은 코스를 밟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나라인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가 조금 그 트랙에서 벗어나려하면, 그것이 과연 걱정인지 아니면 너도 나처럼 고생하면서 살아야해!! 라는 마인드인지 끝없이 오지랖을 떤다.


30살을 일주일 남겨두고 독일행을 결심했고, 만 31살이 되고 두 달 후 독일땅을 밟았다. 특별히 착한 딱은 아니라 부모님께 엄청나게 감사한 부분은 딱히 없지만, 그 모든 주변의 쓸데없는 소리들로부터 방패가 되어 주신 점 하나는 몹시 감사하다. 그리고 내게 결혼 얘기를 단 한번도 꺼내지 않으셨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1화를 방금 다 봤다. 보고 나니까, 기본 틀을 쿠로사기에서 차용하고 여기저기 짜집기한 느낌이 갱장한데? 싶어서 쿠로사기 찾아보니, 다들 같은 생각하고 있었다. 허접하게 쿠로사기 따라한거라고 많은 욕을 먹고 있었다. 다들 욕하는데 나 혼자 반대의견을 펼치고 싶지는 않지만,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어진 한국 드라마에서 이정도라도 짜집기해서 펀딩을 저만큼 따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지 않을까.. 싶긴 하다. 비꼬는 것처럼 들리지만, 진심이다. 제작승인한 SM에서 쿠로사기를 본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까? 아니면 쿠로사기때 야마삐가 매력 뿜뿜한 것처럼 서인국도 이 드라마로 키워주겠다!!! 라는 생각으로 쿠로사기st로 대놓고 가기로 한걸까?



뭐 어찌됐든, 나는 서인국의 저 눈물점을 엄청나게 좋아해서 아마 쭈욱 보게 될 듯하다. (눈물점 있는 남자와 연애해보는게 소원이었고, 소원을 풀기도 했다는 의미없는 정보를 전달하고) 서인국은 본인이 가수로 데뷔해서 이렇게 연기자로 잘 풀릴줄은 본인도 몰랐겠지. 새삼 서인국이 드라마에서 매력뿜뿜하는걸 볼 때마다 마치 내 자식의 일이 잘 풀리는 듯 기쁘다. 필모도 다 안챙겨봤기에 서인국의 팬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서인국이 나온 케이블 드라마 두 작품의 짱팬이라고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서인국은 유난히 케이블 드라마와 합이 좋은 것 같다. 내가 본 서인국의 드라마는 여태까지 총 두 개인데(공중파 드라마 안본지 정말 오래됐다), 하나는 대부분 그렇듯이 응칠이고, 두번째가 고교처세왕이었다. 고교처세왕 보는 내내 연애를 하고 있지만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 내가 보게 되는 서인국의 세번째 드라마도 어쩌다보니 케이블. 같이 나오는 마동석도 좋아해서 나는 더 즐겁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수영의 연기도 뭐 괜찮다. 감우성-수영 주연의 "내 생애 봄날"도 모두가 욕하면서 아무도 안 볼 때, 감우성만 믿고 혼자 엉엉 울면서 잘 봤었다. 





나는 선호하는 남자 취향이 딱 두 종류인데, 둘을 같이 가진 남자는 단 한번도 본 적 없고, 영원히 볼 수 없을 듯 하다. 만약 일반인이 그 두 가지를 다 갖고 있다면, 어디라도 쫓아가서 내 전부를 다 걸 수도 있을듯. 다소 황당하게도, 병약함과 날티.



내가 지나치게 건강하고 건장해서 그런지 나는 뭔가 튼튼해보이는 남자에게 딱히 매력을 느껴본 적이 없다. 건장한 남자를 보면 나와 잘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안들고, 그냥 일꾼 느낌? 그리고 내가 날티라고는 실오라기 하나도 없다보니, 날티나는 남자들 엄청 좋아한다. 병약한 날티나는 남자가 이상형이라니, 어릴 때부터 인생 망칠 루트를 아주 꼼꼼히 짜놨달까...



한국 드라마 시청을 시작했다고 알리는 글에 뜬금없이 남자얘기라니. 하지만 아무말대잔치니까 괜찮다. 새삼 이 카테고리 정말 잘 만들었다고 느낀다. 남자얘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나는 모르는 남자를 처음 봤을 때, 이 남자와 내가 사귀게 될거라는 느낌이 한 시간 안에 든다. 단 한 번의 오차가 있었는데, 우습게도 그 남자와 연애 못한게 연애 필모그래피 중 가장 후회스러운 것이다. 안군, 잘 지내니?


또, 내가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처신해서 이도저도 아니게 된 경우가 한 번 있었다. 신입생 때, 과선배였던 복학생과 연애를 했다. 뭐 누구나 욕하는 신입생 낚시질한 복학생은 아니고, 뭐 아니라고 생각하는게 내 마음에 편하기도 하고. 무튼 과선배와 연애하니 과 생활이 편하긴 했을 것이다. 과 선배와 연애하지 않은 상태의 신입생이었던 경험은 없으니 비교할 뭔가가 없네.. 나는 다른 전공을 가진 사람에게 그 전공자들만 아는 이야기들을 듣는 것을 몹시 좋아해서, 중앙 동아리도 했었다. 동아리 이름을 밝힐 수는 없고, 체대생이 90%였 넘었던 동아리에 우연히 (운좋게) 가입했고, 덕분에 1년 반을 신명나게 놀 수 있었다. 미친듯이 노는데 필요한 건 역시 체력이었다. 체력이 넘치던 스무살에, 또래들과 밤새 노는건 몹시 즐거웠다. 내 체력도 어디가서 빠지지 않기에. 동기 중 한 명과 유난히 친했는데, 약간 선을 넘은 느낌이 아주 가끔 들긴 했다. 1년이 지나자, 그 선을 꽤 자주 넘었었다. 선배들이, 은경아~ 과선배랑은 언제 헤어지냐~ 우리 **가 기다리잖아~ 라는 말에, 동기는 선배들에게 제가 은경이 세컨드잖아요. 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꼭 내가 있을 때 그런 소리를 해서 나를 두 남자로 저울질하는 썅년을 만들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미친 새끼라고 야 우리가 뭘 하기나 했으면 그런 말이 억울하지 않다고 씬나게 받아쳤다. 장난처럼 진담인듯 그렇게 줄타기를 하다가, 내가 이 사람의 손을 잡으면 학과 생활이 꼬일게 뻔했기 때문에 결국에 나는 동기의 손을 놓았다. 동아리에서 탈퇴하게 된 이유는, 온전히 그 동기 때문이었다. 그깟 학과 생활이 뭐라고, 체대생을 놓친거지. 과거의 내 선택을 바꿀 수는 없지만, 곳곳의 선택을 바꾸고 싶은 경우들이 있다. 이것도 그 중 하나.


눈물점 말고 피지컬한 특징을 하나 더 꼽자면, 안경쓴 전후가 다른 사람. 주로 인상이 쎄보이는 사람들이 그걸 누르기 위해서 안경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남자들에게 괜한 호감이 있다. 저렇게 사납게; 생긴 남자가 내게만 귀염떨면 얼마나 좋을까 정도의 생각? 그런 이유로 내가 안경 쓰는 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됐든, 안경쓴 남자는 하나 더 벗길게 있어서 좋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안경쓰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엄청난 패션 아이템으로 안경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난 안경을 쓴 내 모습과 안경을 쓰지 않은 내 모습의 차이가 꽤 매력있다고 생각하고, 이건 나의 연인에게만 보이고 싶다. 뭐 이런 별 것도 아닌 것에 의미두냐 하겠지만, 원래 별 것도 아닌 것에 의미를 두기 때문에 더 특별한 것 같다. 별 것들에는 이미 의미가 다 부여되어있다. 내가 부여하는 나만의 특별한 의미이기때문에 의미있는 것이다.




내가 특별히 매력이 차고 넘쳐서 두 명의 남자를 어떻게 하고 그런 얘기는 전혀 아니다. 한국에서의 나는 그냥 고도비만인 사람, 여자 아니고 사람으로 분류되어진 경우가 더 많았을 것이다. 신체적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연애 필모그라피를 차곡차곡 쌓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리액션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자와 대화하는 것은 간단했다. 눈을 마주치고 추임새만 넣어주면 끝. 나는 이게 거의 습관처럼 모두에게 하다보니 선생님들에게 예쁨받았고, 남자들에게는 오해를 받았다. 내가 지를 좋아했다고 착각하는 남자들이 많았다. 저도 눈 있그든여?


또 하나는 내가 타인의 취미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본인이 좋아하는걸 설명할 때 사람이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는지, 이건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면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남자에게만 해당된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취미를 주변의 누군가가 이미 준전문가급으로 하고 있다면, 무조건 붙어서 흡수했다. 나는 이 흡수능력이 굉장히 좋은 편이고, 또 내 취미는 취미를 수집하기라서 합이 잘 맞았었다. 그렇게 구남친들에게서 흡수한 취미들 중 기억나는 것 몇 개는, 나이키 운동화, 사진, 만년필, 축구, 레고. 다른 것들도 많을테지만, 내가 내 취미로 완전히 체화한건 이정도가 전부다. 그 중에서 특히 만년필은 내 삶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구남친들과 뭔가 같이했던 것들이 다 싫어진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사람과 사물을 구분한다. 그리고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항상 나의 선생이 될 수 있다. 심지어 나의 연인이 나의 선생님이라니, 너무 좋잖아. 물론 만년필을 떠올리면 어정쩡하게 몽블랑 볼펜을 선물해준 구남친이 생각나긴 한다. 몽블랑을 사줄꺼면 만년필을 사주지 왜 볼펜을 사줘갖고... 쓰지도 않는거 버리지도 못하게. 그 당시의 나는 아마 코르셋에 꽉 끼인 그런 많고 많은 한국 여자 중 한 명이었겠지. 지금은 만약 연인이 몽블랑 볼펜을 사서 온다면, 이거 환불하고 만년필 사줘! 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근의 두 연애는 모두 인터넷에서 먼저 알게된 사람들과의 연애였다. 나는 티스토리에 쓰는 이런 글들을 각종 커뮤니티에다 써제꼈다. 남자들이 주로 하던 커뮤니티들이 내 취미들과 맞다보니, 나는 주로 남자들이 많은 커뮤니티에서 랜선 인격을 쌓았다. 여왕벌까지는 아니지만,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남자들이 꽤 있었다. 내가 경기도 이하의 특정 지역 정모에 나간다고 하면, 나를 보겠다며 서울에서도 왔었다. 그리고는 나의 우람함에 다들 놀란듯. 새삼 느꼈던건, 랜선속의 나는 굉장히 매력적인가보다. 라는 생각. 현실에서도 예쁜 여자들은 이런 대우를 받고 살겠지? 라는 부질없는 생각. 뭐 어찌됐든 연애는 쉬지않고 했으니까, 큰 후회는 없다. 






끝도 없이 떠들 수 있지만, 너무 개인적인 잡소리라 이쯤에서 끝내야지. 충분히 많이 떠들었다. 어쩌면 이 글은 비겁한 글일지도 모른다. 제목에서 글 내용을 전혀 추측할 수 없고, 제목에 내용을 숨겨두었으니. 이 글을 공개로 바꾸고 난 후에, 나는 이 글을 썼다는 것도 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의 각종 단어들로 키워드 검색이 뜨고 나는 이 글을 비공개로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부디 그러지 않길 바랄뿐.



아참, 나는 소년스러움에도 환장하게 빠진다. 그리고 남자의 수줍음도. 다 합치니까 갱장하게 이상한 사람으로 조합되지만, 그 몇 가지들 중 두 개 정도의 조합은 상당하다. 대부분 그 조건에 부함하는 사람들과 연애했다. 병약하고 샤이한 소년, 짱이다... 부디 한 명만 걸려주세요, 제가 먹여살리겠습니다. 



따란- SNS 공개!


트위터는... 정말로 공개할 수 없지만, 인스타 계정은 공개해도 별 문제될 것 없기에!


하지만 여기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인스타 맞팔일듯...?



또 모르니까, 막 내 티스토리가 너무 좋아서 맨날 들어오는데

나와 친분은 전혀 없는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연예인병?)



나는 인스타그램에 총 네 개의 계정이 있다.

하나는 그냥 엽서 리스트 정리해둔거라 굳이 올릴 필요 없어서

(사실 아직 계정만 만들어두고 엽서 업뎃 안한 상태라;;)

세 개의 계정을 공개! 빠밤



(계정명 클릭하면 새 창으로 열림)


주 계정 : @Root_Ria

주계정은 매일 세 개씩 올린다. 한달의 마지막 날에는 매일 하기로 했던 것을 체크하는 HabitTracker를 올려야해서 특별히 네 개가 올라간다. 세 개 중 하나, 하루의 시작을 올리는 것은 민음사 세계문학캘린더 일력 필사로 정해두었다. 이렇게 자기가 정해둔 것을 지키는걸 편안해 하는 사람을 Routine Person이라고 한다고. 나는 매일 세개씩 꼬박꼬박 올리는 나의 인스타 계정이 좋다. 영원히 하고 싶을 정도로. 21일에 시작해서 다섯 달 하고 오늘로 열흘째인데, 거른 날은 하루. 만우절. 그냥 만우절이라 그러고 싶었다.


부 계정 : @From.DE

주 계정에 세 개씩만 올려야하니, 어쩔 수 없이 또 하나의 계정을 만들게 됐다. 이건 독일에서의 여행이나 독일 관련된 사진만 올리는 계정. 영어로만 쓰는데, 그러다보니 업뎃이 거의 안되고 있다... 영어가 머리에서 지워지고 있기 때문에.


체인카드 계정 : @ria_chaincard

체인카드 설명은 여기에서. http://fromde.tistory.com/160



티스토리에서 보고 왔어요! 해주신다면 내가 엄청 기쁘겠지.

하지만 우리는 이미 모두 맞팔상태라는거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올려는 둔다.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인스타그램 주계정에서의 나는 그냥 제가 바라는 이미지를 랜선에 구축해둔 것일뿐. 현실의 나와는 5억광년쯤 떨어져있으니 인스타그램에서 나를 실제의 내 모습과 착각하면 곤란하다. 나는 그저 희망직업이 한량인, 현재 그냥 놀고먹는 백수 나부랭이. 당신들의 삶이 나의 삶보다 더 나을 것이다. 랜선에서의 이미지는 랜선에서만. 뒷방 늙은이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거 보니 이제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어야할 나이가 되어가는 듯 한데, 열 지갑이 없네... 슬픔.


제목의 그것은 내 얘기. 근데 써놓고 보니 죽을 날보다 몇 일 더 산다면 좋은 것 아닌가? 라고도 생각한다.



사실 그때그때 쓰는게 맞다. 티스토리에서 과거 시간으로 글 저장 못하게 바꾼 것도 그래서 이해하려고 하는 편이다. 6월을 넘기지 않으려했는데, 결국 6월을 넘겼다. 71일은 넘기지 않으려고 몰아쳤지만, 어쩜 여행 일정이 딱 7월 2일 새벽부터인지. 당연히 7월이 되기 전에 6월의 모든 글을 쓴다는 내 계획은 가뿐히 못지켰다. 나는 어쩜 이럴까. (글 쓰는 지금 현재는 여행 다녀온 7월 4일 오후 9:15)



어떻게든 미루며 살아왔다. 제 때 무언가를 끝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미루고 미루다보니 항상 마감시간에 급급했고, 마감시간 다되서 아 더 못하겠네~ 하고 쓰다 때려친 이력서만 수십개는 될 것이다. 미루고 미루는 성격이다보니, 주변에서는 항상 느긋하다고만 생각한다. 그건 제가 뭔가 바쁘게 하는걸 못봤기 때문이죠... 뭔가 바쁘게 할 때는 다 집에 쳐박혀서 정신없이 하는 편이다보니.. "항상 느긋한데 뭔가 하고는 있는 사람"으로 보여지는거 잘 알고 있는데,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게으를뿐이에요...



이 게으름이 극대화된건 호주 교환학생 이후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그 전에도 나는 다소 게으른 부분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소 게으르지만, 게으름은 한국에서 굉장한 부덕이고 악행이기에 게으름을 표현해내지는 않고 살았다. 그래서 대학 1학년 때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항상 바빠보였다"고 했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토플 공부를 위해 학교를 휴학하고 정말 미친듯이 영어공부를 했다. 그 때 그렇게 열심히 했던 영어가 정확히 11년 후 독일에서 박살이 나고 있다는게 너무 슬픈 일이지만.. 호주에서의 1년은 정말 꿈같은 시간들이었다. 그 때의 나는 게으름의 절정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어딘가에 기록을 한다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다. 20대 초중반의 내가 생각하기에, 그 강렬한 기억들은 영원할 줄 알았다. 30대 초중반의 나는 나의 기억을 믿지 못하기에 이렇게 기록에 의존한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두 달간의 독일 생활과, 이틀간의 네덜란드, 그리고 셀 수 없이 다닌 일본 여행, 1년간의 호주 교환학생 정도의 외국 경험으로 생각하기에, (이것이 성급한 판단이지는 않길 바라지만,) 날씨에 따라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굉장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 "러시아와 독일에 대문호가 많은 것은 날씨가 춥고 밖에 나가서 뭔가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우스갯소리이지만 그냥 하는 말은 아니다. 독일은 날씨가 변덕스럽기로 유명하다. 나는 그나마 날씨가 좋은 것으로 알려진 남부독일에 살고 있는데도, 가방에 항상 챙겨야하는 것은 썬글라스와 우산이다. 언제 비가 올지 모르고, 언제 해가 미친듯이 뜰지 모른다. 일기예보같은건 유럽에서 믿으면 안된다. 그냥 기온정도만 체크하는 수준. 날씨가 이 모양이니, 예민한 사람들은 밖에 나갈 수 없다. 신발 젖고 옷 버리고 이런게 얼마나 예민했을텐데.. 그리고 예민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몸도 병약하니 집에만 계셔야한다. 그런 분들이 대문호가 되셨겠지. 13일로 버스만 16시간을 타며 여행다니는 나같은 튼튼한 사람은 평생 글을 쓸 수 없는 삶일지도 모른다. 


호주의 날씨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드는 날씨다. 비 안오고 해는 항상 너무 반짝거리고. 그냥 풀밭에 누워서 원없이 놀고먹기 좋은 날씨. 이런 날씨를 가진 나라들은 높은 확률로 후진국들이다. 어차피 밖에서 자도 얼어죽지 않으니 집에 대한 특별한 생각도 없고, 널린게 과일나무인데 먹는거 걱정없고. 호주도 마찬가지다. 영국과 그런 관계가 아니었으면 호주도 딱히 잘사는 국가는 아니었을거다. 그런데 후진국과 선진국을 비교하는거 정말 의미없다는 생각을 새삼 했다. 국가가 돈이 많아도 개개인이 행복하지 않다면? 국가의 이미지는 특별히 나쁘진 않은데 모두들 헬조선을 외치는 나라라면? 아이고 의미없다...



내가 호주에서 1년을 지내면서 들었던 얘기 중 가장 놀랍고 신선하고 부러웠던 것이 하나 있다. 현재는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내가 교환학생으로 지낸 2006년에는 사실이었다. 대학 진학률이 95%는 될듯한 한국과는 달리, 호주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일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에 대해서 더 하급의 일을 한다는 그런 개념이 전혀 없다. 학문을 위해서만 대학에 진학하고, 그래서 외국인들이 유학오는 것을 굉장히 반긴다. 어렵고 힘든 일은 안하고 싶어하니까. 그래서 내가 호주에 있었던 그 때는 간호학과를 졸업한 한국인들이 호주로 이민가는 것이 굉장한 붐이었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호주의 대학등록금은 나라에서 빌려주며, 이자율은 0%. 졸업과 동시에 학자금 빚을 떠안게 되지만, 졸업 후 취직을 못하게 된 경우에는 대학교씩이나 졸업한 우수한 인재가 취직할 자리가 없는 것은 나라의 탓이기 때문에 학자금 상환이 취직 후로 미뤄진다. 영원히 취직 못하게 된다면? 영원히 갚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걸 호주에 가서 꽤 초반에 들었는데, 영어를 제대로 못해서 내가 잘못이해한 줄 알았다. 그런데 몇번을 물었는데도 저렇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저 얘기를 해주던 학생이 말하길, 호주에서 취직하지 않고 외국에서 취직하면 평생 안갚아도 돼! 나는 일본에서 취직하고 싶어! (일본어 수업에서 만났었다) 여전히 이런 시스템일지 조금 궁금하다. 졸업과 동시에 3~4천만원의 학자금 빚을 떠안게 되고, 졸업 후 몇 년은 그 학자금의 이자만 간신히 내며 허덕이는 주변의 지인들을 봐서 그런지 그저 부럽고 부럽기만 했다. 




아무말대잔치는 끝맺음이 항상 어렵다. 제목은 저런데 또 내용은 너무 중구난방이다. 중구난방이라는 단어, 혹시 내가 또 뭔가 잘못썼을까봐 사전에서 찾아보니 정확한 뜻이 대박이다. "막기 어려울 정도로 여럿이 마구 지껄임" 오늘의 아무말대잔치는 중구난방으로 역시나 또, 마무리 짓기 어려운 상태로 이렇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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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썼는데 이미 너무 아무말대잔치의 거대한 서막이다. 내가 처음 음악을 접한건 라디오였다. 약간 라디오를 듣던 세대보다는 젊지만, 나는 그렇게 내 윗세대의 감정을 향유했다. 향유했다는 말은 더 이상 입으로는 내뱉지 않는 단어라 곰팡이 냄새가 나는 듯하지만, 저 단어가 가장 잘 묘사해줄 수 있다. 내 세대는 윗세대보다 문화에 가난했다. 향유할 문화가 충분치 않았다.


무튼 그렇게 라디오에서 엄청난 (선별된) 음악들을 들으며 음악에 대한 다양성이 자연히 넓혀졌다. 어릴 때부터 팝송을 많이 들었고, 다양한 국가의 음악을 접할 기회도 많았다. 4개 국어로 노래하는 그룹에 빠져서 허덕이는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순서였다. 어렸을 때 자의와는 상관없이 교회를 다녔다. 이런저런 재주가 많았던 나는, 중학생 때 이미 주일 예배 피아노 반주 백업을 했다. 청소년부 예배때는 내가 메인 반주자였다. 반주 백업을 하지 않는 주일에는, 성가대를 했다. 노래하는걸 좋아했고 피아노치는 것도 좋아했다. 나는 내가 당연히 피아노를 치며 먹고 살게될 줄 알았다. 중학생 때, 내가 살던 도시에서 가장 입시 피아노로 유명한 학원에 가게 되었을 때가 내가 기억하는 내 삶의 첫 자발적 포기였다. 그 전까지 나는 굉장히 파이팅 넘치던 꿈많고 하고 싶은 것 많은 10대였고, 그 첫 포기를 시작으로 다양한 것들을 포기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살았다. 그리고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갖게 되었고, 포기해서 내가 갖게 되는건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라는걸 알게 됐다. 그 후로 나는 삶을 꽉 붙들고 살지는 않게 되었다. 노력은 하되, 내가 노력해도 안되는 것은 분명히 있고 그것에 대해서 아쉬워하거나 반드시 얻어내야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려고 한다. 휴- 또 서론이 이만큼이다.



무튼, 내 이상형은 딱 한 조건만 만족하면 된다. "나와 듀엣곡을 불러줄 수 있는 남자"

내가 주로 접한 듀엣곡들은 영화속에서 남녀주인공이 함께 불렀던 것들이 대부분이니 얼마나 달달한지. 물론, 지금은 그렇게 달달하기만한 듀엣곡뿐 아니라 다양한 듀엣곡이 있다는걸 잘 알고 있다. 내가 노래방을 얼마나 좋아하냐면, 나는 노래방을 혼자서도 곧 잘 간다. 혼자서 갈뿐 아니라 한 시간만 주면 억울해한다. 혼자서 최소 세시간은 부를 수 있다. 대전에는 999분 주는 노래방이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요금도 안비쌌다.



어렸던 나는 저게 굉장히 소박한 이상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차라리 연봉 얼마라고 정하는게 가장 정확하고 소박할 듯. 이런 이상형을 마음속으로만 오랫동안 생각해왔는데, 처음 얘기해보니 뭔가 좀 후련하다. 그런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물랑루즈. 이 영화에서 이완 맥그리거 미모 미쳤고, 니콜 키드먼은 요정 그 자체다. 대부분의 노래가 듀엣곡이라 물랑루즈의 OST는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곡.



뭔가 신나는 일이 생기면, 나는 이 노래가 자동으로 재생된다. 물론 내가 직접 듣는 버전으로 자동 변환되서. 




Hope you don't mind. I hope you don't mind

That I put down in words

How wonderful life is now you're in the world


Sat on the roof and I kicked off the moss

Wellsome of these verses well they got me quite cross

But the sun's been kind while I wrote this song

It's for people like you that keep it turned on


So excuse me for forgetting but these things I do

You see I've forgotten if they're green or they're blue

Anyway the thing is what I really mean 

Yours are the sweetest eyes I've ever seen


And you can tell everybody that this is your song

It may be quite simple but now that it's done

Hope you don't mind. I hope you don't mind That I put down in words

How wonderful life is now you're in the world




아주 잠깐 결혼도 생각하던 철없던 때에는, 나의 결혼식 축가로 시덥잖은 사람들이 별로 마음이 담기지도 않은 축가를 하느니 이 노래를 남편이 직접 불러주는거였다. 하지만 이 노래 생각보다 너무 어렵고, 어린 나는 그걸 몰랐을뿐이고... 



오랜 기간을 서로 알고 지내다 연애하게 된 경우는 단 한번도 없고, 여태 모든 연애가 다 나름의 스파크로 시작하게 되어서, 사귀기 직전에 혹시 음치는 아니죠?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의 구남친들 중 몇;은 태어나서 노래를 끝까지 불러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 음치도 있었다. 내가 노래방 데이트에 로망이 있었게 고딩때부터였는데, 10년이 지나도... 제대로 내 마음에 드는 노래방 데이트는 단 한번도 못해봤다. 아이고 억울해라...


브렉시트에 대해서 투표가 끝나기 전에 써두고 간 글들 덕분에 몇 일 방문자가 쏠쏠했다. 약간 기레기가 된 느낌으로 음, 이런 키워드를 넣으면 클릭을 하는군? 을 몇 명 안되는 방문자 숫자로 알게 되기도 했고. 다들 섬적섬이라는 단어를 몰랐다는 걸 알게 됐고, 나는 역시 인터넷 잉여라는걸 새삼 느꼈다. 무튼, 브렉시트에 대해서는 이제 내가 굳이 보탤 말은 더 없어보인다. 사실 이 글을 읽고, 하.. 글빨 봐.. 라며 감동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민생활 30년차 영국거주자의 브렉시트 사태 소감 - ㅍㅍㅅㅅ



(링크 글의 특정 부분만 긁어오려다, 글 전체에서 어느 한 부분을 긁을 수 없을 만큼 좋은 글이라 따로 긁어오지 않았다)

특별히 싫어하는 매체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매체는 아니기 때문에 링크를 걸지 않으려다가, 그건 또 예의가 아니니까 걸어는 둔다. 굳이 클릭은 안하셔도 됩니다... 근데 글은 또 기깔나게 잘쓰셔서, 읽어보시면 브렉시트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글이다. 나는 트위터에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보면서, 새삼 내가 또 상식이 이렇게나 부족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 트윗을 보면서, 한국만 망하고 있는건 아니라는 생각도 새삼 했다. 그래! 다같이 망해보자!!! 망할거면 제발 좀 빨리!!









그리고 FOX야 항상 저런 이미지이긴 했는데, 또 저래주시니 그저 짤 득템으로서는 반가울 수 밖에.

마음의 소리를 그렇게 자막으로 찍고 그러는거 아니야...




이렇게 혼란스러울 때에, 모두의 예상대로 스코틀랜드는 독립 투표를 다시 진행하겠다고 한다. 애초에 영국먹여살리는 고부가가치 산업은 스코틀랜드가 거의 다 갖고 있는데 잉글랜드에 계신 분들 뭘 믿고 이런 엄청난 투표에 그런 투표권을 행사한건지... 좀 신기할 지경.



그리고 나는 미국 하원 의장인 폴 라이언의 이 발언에 괜히 미국인들이 부러워졌다.  

Speaker Paul Ryan believes markets will stabilize after Brexit, and is "all the more reason for America to lead."

물론 너희는 곧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게 되겠지만.


(열댓개의 글을 사진첨부해야해서 글만 써두고 임시저장해놨는데, 이 글은 시의성이 필요해서 바로 올린다.)

평소에 제 블로그에 와주시는 분들께, 이 글을 먼저 보시게 되더라도 최근 제가 쓴 글을 모두 본게 아니니 다른 글들도 같이 봐주시라는 말을 글머리에 남겨둡니다.



브렉시트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건 얼마 안됐었다. 영국이 항상 아이고 징징징 우리가 EU를 먹여살리고 있잖아 징징징 하던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또 그렇게 징징거리고 EU는 영국을 어르고 달래면서 그래도 우리가 남이가~로 해왔던 여태까지처럼 진행될 줄 알았다. 그런데, 브렉시트 투표가 진행중인 현재, 찬성이 50%를 넘었다. BBC의 투표 방송은 굉장하다. 연령별로 찬반을 보여주고 있는데, 나이든 사람의 찬성이 압도적이다. 예전부터 영국과 한국의 묘한 동질감을 종종 느꼈는데, 노인새끼들이 병신같다는게 그 느낌의 이유였나보다. 


나이든 사람은 독재자의 딸을 투표로 선출한다. 어차피 당장의 내 집값만 떨어지지 않게 해주면 되는 5년짜리 대통령을 원하니까. 내 또래의 2~30대들은 (대부분) 절대적으로 독재자의 딸을 거부하고, 브렉시트를 반대한다. 브렉시트 투표 결과가 그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대통령 선거의 결과도 마찬가지였고. 


브렉시트의 투표가 이런식으로 진행될거라는건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전세계 금융이 난리법석이다. 영국 아마존에서 그간 봐왔던 물건을 질러야할 시기라고 신나있는 사람들도 있다(폄하 아님). NHK는 너무너무 신나있는게 캡쳐로도 보인다. 9시간만에 엔화가 달러당 100원이나 올랐다. 파운드화/달러 환율은 31년만의 최저치라는 기사도 보인다. 1985년 영국 경제 침체기 수준이라고. 내가 태어난 후 처음 맞는 파운드화/달러 환율인 셈이다. 나도 영국 아마존에서 뭐라도 사야하나... 아니, 영국 여행을 당장 가야하나?


브렉시트는 EU의 실패를 뜻하는거라는 헤드라인들이 많이 보인다. 정말로 영국이 탈퇴를 하면, 잘사는 나라들은 다 탈퇴하고 싶겠지,잘사는 국가의 분담금으로 못사는 국가의 경제를 받쳐주고 있다는거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리스 경제위기때 스페인이 그거 같이 부담해주다가 나라가 휘청거렸다는건 다들 잊은 듯 하다. 그렇게 서로 도와주고 살면 안되는걸까. 꼭 내껀 절대 못뺏겨!!! 라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살아야하는걸까.


섬나라는 정말 뭔가 특별한게 있는걸까? 왜 섬나라들은 그렇게 이기적일까. 브렉시트라니, 이기주의의 끝판왕을 보고 있다. 영국이 나갈게 아니라 못사는 나라들이 EU가 되지 못하게 규정을 빡빡하게 바꾸는게 순서라고 생각하는데, 같은 화폐를 쓰는 나라들 사이에서 물가 차이가 그렇게나 심하게 나니까 너무 당연하게 못사는 나라에 들어가는 돈이 많을 수 밖에. 이런저런 구질구질한 이유를 대고 있지만, 결국 독일이 주도하는 EU에 있기가 고까워서 같이 못해먹겠다!! 이게 브렉시트를 하겠다는 이유 아닌가. 이민자들이 들어오는게 싫다고? 그 이민자들이 영국 자국민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 다 해주고 있는건데, 그것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건가.


2016년은 인류에게 시련의 한 해인걸까. 미국의 새 대통령이 트럼프가 될 지도 모르고, 영국은 부끄러움같은건 없는건지 자국 이기주의 끝판왕을 당당히 투표로 진행하고, 한국은.. 뭘 특정하기 어렵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망하고 있었고... 영국 같은 나라는 망해야하는데, 망하지 않는다는거 아니까 더 열받는다. 다른 나라들은 유로화 다 같이 쓰는데 왜 너희만 그렇게 특별해서 계속 파운드화 썼는데? 그 때 국가적으로 엄청난 환차익본거 알고 있으니까, 지금 환차손 좀 난다고 우는 소리 말길.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와 통합하고, 스코틀랜드는 다시 독립하겠다고 투표해서 다 독립해버리고 잉글랜드만 남아서 대영제국이 망하는걸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괜히 신나는걸...? 그러면 제발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에서도 쫓겨나길! 너네같은 나라가 왜 상임이사국이야? 하면서 ㅋㅋㅋ 꿀잼...



브렉시트 때문에 아무말대잔치 카테고리에 새 글을 썼다. 이 글에서만 보면 영국을 너무 싫어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영국을 많이 좋아한다. 좋아하는 나라가 병신같은 짓을 자꾸 해대니까 화가 나서 말을 보태지 않을 수가 없다. 어디 내가 잘 모르는 나라에서 어느 병신짓을 한다해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근데 나는 영국이 좋고, 영국의 닥터후 뮤지엄에 여행갈 날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왜 자꾸만 어디가서 영국 좋아한다는 말 하면 교양없는 사람 취급받을 짓을 하는건지... 영국인들이여, 부디 정신차리세요.




트위터 명절이 된 듯한 지금 이 시간의 내 타임라인, 전세계가 합심해서 영국을 놀리고 있다.






섬적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섬나라의 적은 섬나라다 ㅋㅋㅋㅋㅋㅋㅋ 아베노믹스네 뭐네 지랄해도 브렉시트 한방이면 끗




남들 망하는거 구경하는건 이렇게나 재밌구나. 외국에서 한국 구경할 때 이런기분이었겠지?




독일인들이여, 차라리 꺼지라고 중지를 내미는건 어떤가요...?

독일 언론 "영국 EU 남으면 1966년 월드컵 논란의 골 인정" (클릭시 새 창)






e-Book 같은건 그저 돈벌이 수단밖에 안된다고,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종이의 질감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편협한 사고였을 뿐,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은 e-Book을 산다고 생각하게 됐다. 외국에서 사는 한국사람들이 한글로 씌여진 책이 읽고 싶을 때, 가장 편리한 방법은 e-Book일테니까. 이게 생기기 전에는 다들 어떻게 한글로 씌여진 책을 읽었을까? 


외국에서 지낸지 이제 두달이 되어가는 나조차도 종종 한글로 씌여진 책들이 읽고 싶어지는데, 더 오래 지낸 사람들이 한글로 씌여진 책이 읽고 싶을거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다. 나의 사고는 여전히, 이렇게나 좁다. 



뭐 이건 온전히 내 문제이긴 하지만, 내가 연구하던 분야가 전자잉크쪽도 관련이 있어서, e-Book을 볼 때면 실험해야할 것 같고 그래서... 특별히 정감이 가거나 하지 않았다. 크레마 카르타가 그렇게 잘 나왔다고 하던데, 나는 그 전자잉크를 보면 얼마나 많은 뼛가루가 여기 갈려있을지 눈에 너무 보여서, 즐겁게 읽을 수가 없을거라 생각했다. 이제 실험 안한지도 2년이 넘었는데, 실험실의 망령을 떨쳐보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래도 나는 실험이 너무 즐거웠는데, 당분간 실험 못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아쉽기도 하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진행되는 일들은 이제 잊어도 되지 않을까.


나는 실험이 좋지만, 실험실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더 이상 나도 실험을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 혹시 어떤 실험실이 나를 좋다고 해준다면, 나는 다시 실험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 깊은 자리에 실험과 연구에 대한 나의 관심을 잠시 묻어두려한다.



또, e-Book 얘기로 시작한 글이 아무말대잔치가 되었다. 만하임 카테고리에 쓰려던 글이었는데, 아무말대잔치 카테고리에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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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떠났다. 한국을 떠나서도 한국과 특별히 다르지 않게 살고 있는 그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한국처럼 공부에 치여살고,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단 한번도 떠나지 못한 채 몇 해를 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좀 의아했다. 왜 즐기지 못하고 저렇게 살아야할까, 저런 삶이 싫어서 한국을 떠났을 텐데 왜 한국에서 사는 것과 별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교만했다. 내가 겪지 않은 것을 내 기준으로만 생각했다. 유학생들은 현지 월급에 맞춰진 그 물가에 맞춰서 살기에는 가난했다. 어디든 가려면 돈이었고, 숙박비는 한국보다 최소 두 배는 비싸다. 숙소의 상태는 돈값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한다고 하는데, 당일치기는 온전한 여행이라고 말하기에 힘든 점들이 많다. 


심지어 나는 짧지만 1년의 교환학생 경험이 있음에도 이 정도로 오해를 했는데, 아예 여권도 없는 사람들은 이들을 얼마나 부럽기만 한 눈으로 바라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어학원을 다니는 나도 부럽다는 얘기를 듣는데, 무엇이 사람을 부럽게 만드는가. 나의 인터넷에 기록된 삶은 내 삶 중에 가장 좋은 삶일뿐이다. 나는 인종차별도 이 한 달 간 여러차례 겪었고, 마트에서는 잔돈을 집착적으로 확인해야한다. 독일어 못하는 외국인이라고 잔돈을 덜 주는건 어느정도의 일상이다. 그런 것을 굳이 장황하게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뭐 언젠가 한번 올려볼까?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아직은 행복하고 좋은 얘기만 쓸 것도 차고 넘치기에 그런 것들을 남기고 싶지는 않않다.




어학원에서 배우는 것들은 매일매일 예습복습하니, 주말에는 항상 시간이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리고는 매주 주말마다 어디라도 나가는 삶을 살아보려했다. 여행을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경비 계산을 해보고는, 살인적인 물가에 그냥 포기하고 만다. 집에서 세 끼를 다 해먹을 때는 식비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는데, 12일이라도 가게 되면 식비가 가장 부담스럽다. 어떤 것이든 사람의 손을 거친 것은 다 비싸지는 나라, 인건비에 대한 부분이 명확하다. 그래서 이번 주말도 그저 집에만 있을 예정이다.


사실 집 안에서도 혼자 할 것은 많다. 하지만 조금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을뿐이다. 나의 교만함을 또 다시 반성한다. 이번 주말은 대청소를 해야겠다.



주말에 어디라도 가보려다가 대충 경비 계산하고 혼자 울적해져서 쓰는 글

그리고는 주말 내내 독일 전역에 폭풍우를 동반한 천둥번개가 몰아쳐서 어디 안가길 잘했다고 또 좋아했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우체국을 가고 있다. 한국에 우편을 보낼 때면, 여전히 한국과 닿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고, 또 내게 올 답장이 기다려져서 좋기도 하다. 답장을 약속받은 우편물이 아닐 경우에는 나 혼자만의 일방통행일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것은 오래 지속되지 않기에. 내가 보낸 것과 거의 동일하게 받고 있다. 독일은 우편요금이 한국의 약 세 배 정도이기때문에, 항상 한국에서 뭔가를 많이 보내줘서 내가 조금 미안하지만, 나 역시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한다 (공짜인 에어메일 스티커 열장씩 보내주기 같은? ㅎㅎ)


  보통은 숫자, 월, 요일 같은건 다 달달 외워서 외국에 가던데, 나는 무슨 생각으로 단 하나도 외우지 않은 채로 독일에 왔을까. 그래서 여전히 숫자가 너무 어렵다. 오늘은 서수(1st, 2nd, ~)를 배웠고 날짜 표현을 배웠는데, 나 혼자 자꾸 3016년을 말해서 곤란했다. 처음에 입력될 때 2와 3이 잘못 입력되어 계속 고생을 하고 있는 듯 하다. 나는 그 숫자를 뜻밖의 장소인 우체국에서 교정받고 있다. 내가 가진 우표들 중에 예쁜 것들이 대부분 62센트인데, 이건 우편요금이 오르기 전, 독일 내의 우편요금이다. 그리고 외국으로 보내는 우편요금은 90센트이다. 나는 62센트짜리 우표를 붙이고, 28센트짜리 우표를 추가로 구입해야한다. 특별우표들은 제일 저렴한 것이 엽서 발송 금액인 45센트이기때문에, 28센트짜리 우표를 살 때엔 특별우표를 살 때처럼 사진을 찍어서 이거 주세요! 를 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직접 말을 해서 기본우표인 28센트짜리 우표를 사야한다. 물론 영어로 twenty-eight cents, please.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숫자 2가 아직 입력이 제대로 안된 상태라 일부러 여러장을 사두지 않고 갈 때마다 저 우표 하나씩 달라는 말을 연습하고 있다. 그리고 우표의 가격은 다양해서 다양한 숫자를 연습하는데 참 좋다. 


  내가 처음 작문하고 외운 문장이 바로 Ich möchte Briefmarken kaufen (= I want to buy stamps) 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저 말을 하면 대부분 How many?라고 직원이 되물었지만, 이제는 Wie viele?라고 묻는다. 발음이 조금 나아졌나봐... 히힣... 저 문장 하나만큼은 이제 완벽하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저 문장을 작문하기 위해서 혼자 많은 문법 공부를 했어야 했다. 어째서 구매하다라는 동사인 kaufen이 가장 뒤에 오는지, 조동사로서의 möchte의 용법같은 것들. 독일 우체국에 가기 전에 이미 이 한 문장을 작문하려고 다 찾아봤었다. 그리고 이제 학원에서 이 정도의 문법은 전부 다 배웠다. 내가 저 한 문장을 작문하기 위해, 세세하게 찾아봤던 문법들을 다 정리하면서 배우게 되니 이런게 배우는 즐거움이구나 하고 더 뿌듯하고 기뻤다. 이제는 분명히 그 때보다 조금 더 독일어를 알게 됐다. 오늘이 학원 수업들은지 딱 4주째 되는 날이니. 조금 더 빨리 배우고 싶지만, 나는 이제 독일어 배운지 딱 한 달째라는걸 잊지 말고 기초를 탄탄히 다져서 좋은 건물을 쌓았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독일어를 공부하지 않고 온건 잘한 일 같다. 다른건 몰라도 발음 만큼은 깔끔하게 하고 싶었으니까. 영어를 쓰면서 항상 이 죽일 놈의 발음이 신경쓰였다. 누구도 내 발음에 대해서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나 혼자 신경쓰이는건 신경쓰이는거니까. 아무리 영어로 긴 말을 해도 내 영어는 잘하는 영어로 들리지 않았다. 발음탓을 해본다. 부디 독일어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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