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의 공개된 마지막 글은 2019년 6월 4일에 씌여진 가계부 글, 오늘로부터 정확히 11개월 전이다.

그리고 비공개로 틈틈히 제목이랑 뼈대만 올려둔 글은 총 10개, 그 비공개의 마지막 글은 2019년 8월 10일. 

 

 

그간 나의 신상에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그건 10개의 글에 잘 기술될 예정이었는데, 게으름으로 다 기입하지 못했다.

오늘부터 그 열 개의 글을 잘 채워넣어갈 예정이다. 정말이다....

 

 

개인사정상 한국에 돌아온지 네 달이 지났다. 귀독 비행기는 코로나로 인해 캔슬되었고, 언제 입독하게 될지 미정이다.

 

 

 

무튼, 오늘부터 다시 티스토리를 써보려고 한다. 그냥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 요즘인데,

나에게는 창구가 마땅치 않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사실 너무 많은데 게으름으로 하지 않았던거면서! ^^....

 

 

블로그로 돈벌고도 싶은데 잘... 안되겠지...ㅎ 부수입 절실...

아니, 수입이 없으니 그냥 뭐라도 들어오는 돈이 있으면 참 좋겠다.......

 

 

이걸 올리려고 생각한 후 어느 카테고리에 올려야할지 감이 안왔다. 이것은 구매목록(Einkaufen)만은 아니며, 그렇다고 이 도시에서의 어떤 이야기(aus Marburg)도 아니며, 모든 도시 이야기가 될 수 있기에. 결정 못할 때는 언제나, 아무말대잔치 항목에 넣는다. 실제로 아무말 대잔치가 될 것이기도 하기에.

 

식비는 크게 네 항목으로 나뉜다.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는 것, 드럭스토어인 Rossmann에서 식재료를 사는 것(종종 저렴한 것들이 나온다), 거의 없지만 어쨌든 외식, 그리고 독일 대학 학생식당인 Mensa. 식비 다음의 카테고리에는 내 가장 중요한 취미생활인 우표 구입 내역을 적고, 그 다음은 별 순서 없이 기재했다. Haushalt는 가정생활에 필요한 것들? 뭐 미니 락앤락을 산다던가, 물티슈를 산다던가 하는. 교통비는 학생 티켓이 있기에 일반적으로 내가 다니는 구간에서는 전혀 안들지만, 5월에는 쾰른의 지인에게 다녀오느라 편도 10.71유로를 썼다. 세 번이 적혀있는거 보니 두 번을 갔다왔었던 듯. 편도 한 번은 지인이 데리러 오고. 항목별 총 결산 외에도 최종 결산도 내 파일에는 합쳐져서 기재되어 있는데, 그냥 심정적으로 그 부분은 삭제. 어차피 뭐 다 더해보면 나오는거긴 하지만, 내가 한 달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은 200유로인데, 지난 달은 사야할 책이 있었고, 초반에 여름옷도 좀 샀고 하느라 원래보다 150유로나 오버되어 또 빚. 취미로 기입된 저 20.31유로는 엽서.. 지난 달에 이래저래 예정없이 급 질러버렸던 것이 많다. 옷 30, 엽서 20, 우표 22, 이미 여기에서만 72유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슈페어콘토에서 생활할 수 있게 맞추는 것이 지금 내 최대 과제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맞춰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잘 되지는 않는다. 언제나 사고 싶은게 있기 때문에

 

'아무말대잔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재를 살고 싶다 (2)  (2) 2020.05.04
저는 현재, 포켓몬고에 빠져있습니다  (2) 2019.05.29
독일 지역별 석회  (0) 2019.03.28
나는 아무에게도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0) 2018.05.01
제목없음  (5) 2018.04.30

사실 포켓몬 계정은 2017년 1월 28일에 만들었었다. 근데 그 때는 뭘 잘 몰라서 음? 왜 나한테는 잡을 포켓몬이 안보여? 하면서 한 마리 딱 잡고 그만뒀었다. 그리고 지인의 추천으로 2년 4개월만인 2019년 5월 말에 다시 깔았다. 그리고 5일 째인 현재, 평소에 걷는거 정말 구찮아하는데 순전히 이 게임을 하기 위해 온 동네를 쏘다니고 있다. 심지어 학원 쉬는 시간에도 포켓스탑 돌리고 온다... 중독될 느낌이 강하게 온다... 너무 재밌고 재밌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미쳐있는지 잘 알 것 같다. 평생을 마일 단위로 살던 미국인들을 km단위로 생각하게 만들고, 차고에서 차를 타서 이동하는 것이 당연한 미국인들을 걷게 만들었다는 그 게임. 나도 뭐 별반 다르지 않다. 기숙사 바로 앞 정류장에서만 항상 버스를 탔고, 한 10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있는 버스 정류장은 피치못할 사정이 아니면 이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숙사 5층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방에 들어온 이후에는 절대로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포켓몬고를 한 지 나흘 째, 얼마나 걸어다니는지 모른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내가 사는 도시는 많이 시골이라 버스 배차 간격이 다소 긴 편인데, 그 기다리는 시간이 많이 지루하지는 않아졌다는 점. 버스정류장은 대부분 포켓스탑이고 유동인구도 많아서 포켓몬도 항상 많다. 한낱 게임이라고 할 수 있지만,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끝맺는 말은, 포켓몬고 친구 구합니다.........

트레이너 코드 7266 6970 7050, 매일 독일의 이상한 조형물을 선물로 보내드려요.....

독일 포켓스탑은 정말 이상하답니다. 언젠가 데이터가 많이 쌓이면, 독일의 포켓스탑에 대해서도 블로그에 써볼건데, 간단히 얘기하면, 홀로코스트 추모 조형물 전부가 포켓스탑인... 조형물이니까 물론 등록할 수 있지만, 포켓스탑을 직접 찾아다니거나 하면서 게임을 하는건데 이 추모 조형물이 그런 역할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좀 의심이 드는... 얼마전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에서 다른 포켓몬도 아니고 "또가스"가 나와서 소소히 논란이 되었다던데... 포켓몬고 회사의 생각없는 의도는 부디 아니길. 병크 터뜨리면 게임을 계속 하는데 문제가 있잖아요....?

 

'아무말대잔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재를 살고 싶다 (2)  (2) 2020.05.04
독일 한 달 생활비, 5월 가계부 첨부  (1) 2019.06.04
독일 지역별 석회  (0) 2019.03.28
나는 아무에게도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0) 2018.05.01
제목없음  (5) 2018.04.30

(아무말 대잔치보다는 정보성 글이지만, 아직 정보성 글에 대한 정확한 카테고리가 없기에 우선 이 카테고리에 넣어둔다.)


어떤 검색어로 유입되는지 구경하는건 꽤 재밌다.

한 번도 가지 못한 도시인데 그 도시에 관한 우표에 대한걸 썼다가 이 블로그에 와보신 분도 있고

매일 한두명은 꼭 검색해서 들어오게 되는 글은 눈 영양제 관련해서 썼던 것이다.

그 중 내가 다시 이 사이트 링크와 다시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칼크 관련된 글이다.



한국에서는 설거지를 하면 굳이 그 물을 다시 닦아내지 않아도 된다. 물이 깨끗하니까

세수는 당연히 물로만 한다. 물이 깨끗하니까

편리함을 위한 가그린은 사용해도 반드시 양치 마지막을 리스테린하지 않아도 된다. 역시나 물이 깨끗하니까.


거의 매일 해야하는 이 세 가지 행동들은 독일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다르게 한다.

설거지를 한 후 자연건조하면 그릇에 석회 얼룩이 진다. 마치 대충 씻은 그릇인 것마냥 아주 찜찜하다.

세수를 물로 한 다음, 마지막에는 클렌징 워터로 얼굴을 닦아낸다. 석회수가 피부에 맞지 않는 사람도 많으니까

(*지성 피부는 석회수가 몹시 잘 맞는다. 지성피부에게 석회수는 자연 피지 컨트롤 기능이 된다)

양치하고 나서 마지막은 꼭 리스테린으로 입을 헹궈야한다.



아, 이미 일상이어야할 이것들이 몹시 피곤하다. 

아직 독일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아니면 이사갈 계획이 있는데 여러 도시들 중 고르고 있는거라면, 이 사이트를 꼭 참고하길 바란다.

독일 지역별 석회가 정확한 수치로 안내되어있는 웹사이트. https://www.wasserhaerte.net

내가 살았던 도시인 Mannheim은 18°dH, 지금 살고 있는 Marburg14°dH, 그리고 자주 놀러가는 Frankfurt25°dH.

프랑크푸르트 근처의 한국분들 많이 사는 동네인 Bad Homburg16°dH, 도시 규모를 감안했을 때 몹시 좋은 편이다.


*참고: 독일 도시 명에 Bad(en)이 들어가면 역사적으로 물이 엄청 좋은 동네라고 생각하면 된다. (필연적으로 부촌이다).

Baden은 독일어로 목욕하다라는 동사고, 독일의 Badenbaden(목욕탕목욕탕??)은 사우나로 굉장히 유명한 도시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과거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나쁘다고 하기엔 기쁘고, 기쁘다고 하기엔 내가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며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반성과 후회를 하게 된다. 물론 3분짜리 반성과 후회지만.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굳어버린 만년필을 세척했다. 오랫동안 따뜻한 물을 흘려보내도 굳은 잉크는 계속계속 녹아져나왔다. 9개월 가량을 쓰지 않았으니 너무나 당연히 꽉 굳어있었다. 그렇게 만년필을 손에 쥐니 무언가 쓰고싶어졌다. 별 의미없는 것들을 적어가며, 영어단어도 휘갈겨가며. 아무래도 내 일상의 하나였던 우표를 사야겠다. 논리 그런거 없다. 돈을 쓰면 즐겁다. 벌지 않는 인간이 쓰는 것만 즐기는 것은 죄악이지만, 나는 이미 죄인이다.



우체국에 들어가면서 문득 든 생각은, 나에게 불친절하고 무례하게 대하던 그 직원이 창구에 있으면 어쩌지 싶었다. 나는 그 사실조차 다 까먹고 있었다. 내가 숫자를 독일어로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이상한 발음으로 우표를 구입하려할 때마다 한숨을 쉬던 그 직원. 그 직원의 존재가 떠오르면서, 그냥 다시 나갈까 싶었다. 하지만 우표 판매창구로 가는 도중, 간이 창구가 하나 생겼길래 봤더니, 그 불친절한 우표 판매 직원이 거기에서 보험을 팔려고 호객아닌 호객을 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기쁘지? 게다가 우표 판매 창구에 갔더니 나에게 친절했던 그 직원이 여전히 창구에 있었다. 예전처럼, 핫핑크색 손톱을 하고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 후,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뜻밖의 인사를 들었다. 


Ich habe Sie lange Zeit night gesehen. (직역하면, 나는 너를 엄청 오랫동안 못봤었어!! 정도)


나를 이렇게 기억할 줄 알았다면, 뭐라고 대답할 말을 준비해서 갔을텐데 생각지도 못한 친근한 인사라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오랫동안 못봤는데 지금 좋아보인다 좋은 일 있나봐!! 라고 말을 덧붙인다. 좋은 일이 있던가? 이제 방에서만 있지 않는다는 그 자체가 내겐 좋은 일이긴 하다. 하긴 그랬지, 나는 매달 우표 발행일마다 우표 사러 오는 아시아인 여자였지. 침대에서 누워서 지내느라 나의 상황을 잠시 잊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독일어를 해대며 저 반가운 인사에 대한 대꾸를 했지만, 내가 하고 싶던 말은 10%도 채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이 도시에 있다. 정신을 놓지 말고 살아내야한다.

가수 호란이 2015년에 썼던 글을 몹시 좋아한다. (이 글을 꼭 읽고 제 글을 읽어주세요, 꼭이에요). 따로 제목이 있진 않지만, 글을 다 읽고 나면 특정 문장을 자꾸만 입으로 소리내어 말해보게 된다. "나무는 고통을 정서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나는 그간 많이 아팠다. 어떻게든 하루 한 끼는 먹으며 살았지만, 행복한 일도 즐거운 일도 딱히 없기에 인스타그램도 티스토리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위에 링크한 호란의 글 속에서처럼 나는 주변사람들과 영혼없이 웃고 떠들었고, 속으로는 웃고 떠드는 내 자신을 또 혐오하고 가여워하고 있었다. 나는 언제쯤 아프지 않을까, 언제쯤 조금 정상궤도의 삶을 살 수 있을까 바라고 기다리면서 그렇게 시간을 문자 그대로 죽이고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야하는지, 알지 못했다. 다들 그렇게 독일겨울이 힘들다고 하기엔 나는 이미 작년 가을즈음부터 고장이 났었다. 그리고 왜 그 상태가 되었는지 모른 상태로 하루하루 한달한달 그리고 무려 세 번의 계절이 지났다. 나는 최근 그 이유를 알게 되었고 스스로가 또 너무 한없이 가여워서 살 수가 없었다. 진작 알았어야했는데, 미처 알지 못했던 내 자신이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작년 이맘때의 나는 독일어에 허덕이고 있었다. 재밌지만 재미있지 않았던 새 언어 배우기. 그리고 늘지 않는 실력. 매달 530유로씩이나 내야하는 비싼 학원을 다니면서 전혀 달라지는게 없어서 괴로웠다. 공부는 재밌지만, 공부를 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결과에 매번 괴로웠다. 그렇게 독일어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학원 수업 진도의 속도에 비해 내 스스로의 공부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학원을 잠시 그만두었고, 나는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만두고서야 느낄 수 있었던 너무나도 당연했던 점은, 강제적으로 매일 3시간씩 듣던 독일어는 생각보다 효과가 꽤 좋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언어를 잃었다. 독일어도 못하면서 무슨 언어를 잃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주변 환경이 한국어가 아닌 상태였기에 나는 언어를 잃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밖을 나가면 모든 곳에서는 독일어가 들려오는데, 나는 분명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은 삶을 세 계절이나 보냈다. 2011년에 구입한, 낡은 노트북이 켜지지 않는 날이 많아졌고, 굳이 켜지 않다보니 켜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문제는, 핸드폰을 새로 깔면서 각종 앱 연동에 문제가 생겼다. 다른 앱들은 뭐 어떻게든 찾으면 되는거였는데, 카톡은 이전에 쓰던 번호가 필요하다고 한다. 개인적인 사정과 유난유난 개유난으로 한국에서 쓰던 번호로 카톡을 가입한 적이 없었던 나는, 사흘에 한번 꼴로만 켜지는 노트북에서만 카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과 연락하는 것도 뭔가 죄송스러워서 연락을 뜸하게 했더니, 동생에게 와츠앱(외국 메신저)으로 '엄마가 누나랑 연락이 안된대'같은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행복하자고 결정한 독일행인데 많은 사람에게 걱정을 끼쳤다. 결국, 핸드폰에는 독일 번호로 새 카톡을 깔아야만 했다.


놀랍게도 최근 차차 상태가 좋아졌고, 그 이유를 다양히 찾아본 결과, 아마 상태가 좋아지는 것의 시작은 모국어로 쓰여진 새로운 책을 읽었을 때 즈음이었던듯하다. 사실 모국어로 된 책이 나를 치료했다! 고 하기엔, 게으름부리며 + 특별히 도움이 되지도 않는거 같은데 매달 수십유로의 돈이 아까운 마음도 들고 해서 그간 먹지 않았던 영양제를 다시 챙겨먹기도 했다. 그리고 거의 1년을 고장난 씽크대로 살다보니 집에서 요리를 안해먹게 되었었다. 최근, 집 관리인이 씽크대를 고쳐줘서 더 이상 화장실에서 사방천지에 물 튀어가며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된 점도 큰 변화이다. 물론, 열흘 전쯤부터 해가 쨍쨍해진 것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무엇 하나가 그간의 무기력함의 절정 속에서 죽고 싶지만 죽지도 못하는 상태에 있던 나를 다시 살 수 있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복합적이게 보이는 다양한 이유 속에서 가장 첫 부분에 있는건 역시나 모국어로 된 책이다. 참 이상한 점은 나는 활자에 중독된 사람이라 트위터를 너무 좋아하고, 한국어로 된 뉴스도 매일 잘 읽고, 한국 예능을 같이 보며 웃을 수 있는 남자친구도 있고, 종종 같이 밥먹자거나 커피마시자거나 하는 지인도 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니 사실 큰 도움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모국어 굶주림을 채워주지 못했던 것 같다. 1년 만에, 모국어로 쓰여진 소설을 읽고 나니 그 잊고 있었던 행복함의 게이지가 쭈욱 채워졌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들르게 된다면, 다른 무엇보다 크레마를 꼭 사올 것이다. 종이책은 독일에서 구하기도 어렵고 짐도 되니 어쩔 수 없지만 모국어로 된 책은 꼭 꾸준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기간의 한정이 있는 비자로 살아가는 외국인 신분이면서 세 번의 계절을 이렇게 흘러보낸 것은 엄청나게 멍청한 짓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



독일 시간으로는 새벽 세 시. 이 엄청난 역사의 현장을 실시간으로 보기 위해서 알람 맞춰두고 일어났다. 작년 필리버스터 국회 방청 때도 이 생생한 역사의 현장에 있다는게 그저 뻐렁쳤는데, 드디어 탄핵 선고일이 왔다. 사실 너무 당연히 탄핵은 인용될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게 6:2인지, 8:0인지가 내게 중요했다. 적어도 최소한의 상식선은 같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정말 오랜만에 같은 상식을 만나서 그저 행복하다. 민주주의 뽕이 찼다. 


요즘 자주 CNN 메인화면을 차지하는 두 한국. 얼마전에는 말레이시아 피살 사건으로 메인을 차지하더니, 오늘은 우리 차례다. 한민족끼리 누가 조금 뒤쳐질세라 주거니 받거니 참 즐겁다. 보톡스 빵빵히 맞은 얼굴을 보기 싫어서 대충 짤랐다.




이화여대에서 처음 문제제기된 부정입학과 부정학점 취득으로, 줄줄이 얽혀나온 이 거대한 서사. 모두에게 해피엔딩. 그리고 나를 더 뻐렁치게 만드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여기에, 현재 두 야당 당대표 모두 여자라서, 오늘 추미애 의원과 심상정 의원의 기자회견을 보고 또 뻐렁쳤다. 큰 일은 여자가 하는 법이다.



팩트폭력. 그리고 이 거대한 서사 총정리판.





약올리는데 특화된 허핑턴포스트. 하지만 오늘만큼은 나도 허핑턴 포스트에서 이 사진을 찾고 제목을 달았을 그와 마음이 정확히 같다.




오늘 나의 탄핵비용은, 여행이다. 탄핵이 당연히 될거라 생각해서 이번 주말 여행일정을 미리 짜놨다. 빅픽쳐를 좀 그려봤다. 

'탄핵비용'은 '시발비용'의 활용 명사. 혹시 시발비용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제일 처음 시작된 시발비용의 정의에 대한 캡쳐를 같이 올린다.



'아무말대잔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아무에게도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0) 2018.05.01
제목없음  (5) 2018.04.30
"오늘은 오후 세시에 퇴근하는 날"  (0) 2017.03.08
요즘 근황.  (2) 2017.03.07
밀린 포스팅 올클리어!  (4) 2017.02.11


오늘, 전 세계의 여성들은 오후 세 시에 퇴근하는 조기퇴근 시위를 한다.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로, 여성은 오후 세시 이후부터는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나 마찬가지라서 그것을 알리고 바꾸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조기퇴근 시위를 처음 알게 되었던 아기 페미니스트 시절, 시위조차 너무 멋있어서 그저 너무 뿌듯했다. 세상은 남자가 중심이지만, 절대로 그렇게 너네들끼리 해먹게 놔두지 않겠다는 놀랍고 위대한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렇게 뒤에서 쫓아만 가도 되는지 싶었다. 하지만, 한국은 뒤에서 쫓아만 가기에도 힘든 사회였다.


세상은 매일 달라지고 있지만,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이 기득권이라고조차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들은 아무것도 가진게 없다고 한다. 가진거 없는 너희가 더 노력하면 된다고 한다. 어떻게, 뭐, 다시 남자로 태어날까? "비정치적 존재로 살아가는 것도 특권이다"라는 사무치는 문장을 트위터에서 봤고, 그 문장을 공유하려고 한다.



남자로 사는건 특권이며, 백인으로 사는건 특권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30대 비혼으로 사는 모든 여성분들께,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결혼하지 않은 우리는 잘못되지 않았다. 여자는 결혼을 선택할 수 있고, 여자의 삶에 결혼은 필수가 아니다. 여자를 갈아서 지탱되는 가부장제를 절대적으로 반대하며,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 결혼을 선택하는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인지되어야한다.


나는, 남자와 똑같이 초중고교육을 받았고, 대학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석사학위도 있다. 그런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취업과 생활 곳곳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20대 후반의 나는 곧 결혼한다고 회사를 떠날 여자로 간주되었고, 모든 면접에서 그따위 질문을 들어야했다. 결혼생각 딱히 없다고 대답하면 유난떠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는지, 회사에서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데 학교 생활 잘했냐고 묻던 면접관도 있었다. 아, 예 제가 인간사회가 너무 싫어서요! 왕따였네요! 이렇게 대답할껄 그랬다. 호황기에 운좋게 그 대기업 들어갔고, 어쩌다보니 그까지 올라간 너희들이, 지금 피터지게 해도 정규직으로 취직하는게 불가능한 한국에 있는 80년대 중후반~90년대생들한테 그따위로 대해서는 안되는거지. 이러니, 내가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수 있는가.



몇 달 전에는 정말 또라이같은 일이 있었다.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서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만든건데, 넓디 넓은 마음으로 출생아수를 가축화해서 그린 도표들까지는 이해해줄 수 있다. 그런데, 가임기 여성 지도? 미쳤어요???? 가임기 여성이 많은 동네에서는 가서 뭐하라고? 더 소름끼쳤던건 그 그래프가, 천이나 만의 대략적인 숫자가 아니라, 일의 단위까지 세세히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이트를 혼자 만든 것도 아닐텐데, 그 많은 사람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정상적인 사람이 없었다는걸까?




세상에 이렇게 멍청할 수도 있나 싶었던 눈치 빻은 행정자치부의 트윗.




그리고,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트위터 계정.



아들 낳겠다고 여자들 다 낙태시킬 땐 언제고, 이제와서 왜 가임기 여성이 없지? 왜 자궁이 없지? 왜 여자들이 아이를 안낳지? 아이고...




그리고, 가임기 여성 지도의 멍청함이 사라질 때 쯤, 또 다른 멍청이가 등장했다.

세상에 멍청이가 많아도 너무 많다. 아, 좀 멍청한 유전자는 물려주지 맙시다, 네?



너무 멍청해서 말을 잃었다. 그리고,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든 인간들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기집년들이 많이 배우니까 애 안낳네? 못배우게 하자! 세상에, 지금 2017년인데? 내가 대체 뭘 본거지?



다른 나라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한국은 여성 후려치기 역사가 한두번 있던 일이 아니다.

위의 두 사례도 정부기관에서 주도한 사업이고, 아래 두 사진도 정부기관에서 뭐가 잘못된 줄도 모르고 올려둔 내용들이다.


아름다운 가슴의 모식도를 얘기하는 보건복지부



양육비 내줄 것도 아니면서 고나리질하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신사임당 친정이 얼마나 잘 살았는지는 모르나보다. 멍청함은 이렇게 악하다.


이 모든 멍청한 이들에게.







오늘, 광화문에서 오후 세 시에 모인 사람들의 사진도 같이 올려둔다. 찡하다. 너무 더디지만, 사회는 분명히 변하고 있다. 세계 35개국에서 같은 취지로 진행되는 조기퇴근 시위는 성별 격차 없이 노동의 몫을 동일하게 분배하자는 의미에서 ‘동일임금의 날(Equal Pay Day)’로도 불린다.






오늘, 독일 노동청의 트위터에 올라온 이미지.

We make women strong together.






오늘은 109주년 세계 여성의 날이다. 그리고, 세계 남성의 날도 있다. 1119일, 왜 여성의 날만 있냐고 딴지걸지 말고 11월 19에 너네들끼리 뭐라도 하세요. 있는지도 모르는 날로 모두가 알고 있는건, 누구의 잘못이지요? 



'아무말대잔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목없음  (5) 2018.04.30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0) 2017.03.10
요즘 근황.  (2) 2017.03.07
밀린 포스팅 올클리어!  (4) 2017.02.11
비밀번호는 왜 다 다르게 설정해갖구...  (0) 2017.02.01


정신없이 헤메던 겨울이 거의 다 지났고, 1월부터 다니기 시작한 만하임 대학 부설 어학원의 수업도 다음 주 화요일에 세 번째 레벨이 시작된다. 두 달이 지났으니 적응도 끝났다. 처음에는 이전 학원과 달리 숙제도 너무 많고 나 빼고 다들 말도 너무 잘하고 시험도 너무 자주 봐서 학원가기 너무 싫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오르는 작문 점수 확인하는 것도 기쁘고, 조금씩 내가 늘고 있다는게 느껴져서 그저 다 좋다. 


그간 딱히 여유는 없었지만 찾지 못하고 있는 인스타그램이 아쉬워서 더 열심히 거의 매일 티스토리에 강박적으로 뭔가를 올려왔다. 나의 근황은 없이. 걍 그렇게 매일 뭔가 올리면, 조금 더 빨리 안정될 것 같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티스토리 계정에 다시 로그인할 수 있게 된 후, 처음 다시 글을 쓴 날이 131일, 한달하고 일주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 때보다 나는 훨씬 더 상태가 좋아졌다. 역시 나는 타이핑이든 손으로든 뭔가를 쓰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나약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튼- 요즘 나는 정말 잘 지낸다. 이렇게 잘 지내다가 또 무너지면 나는 어쩌지 하는 세상에서 가장 쓸데 없지만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걱정을 하면서, 그렇게 지낸다.



지난 일요일, 정말 오랫만에 여유롭게 티타임을 가졌다. 한번 치즈케익을 입에 들이고 나니, 월요일 내내 케익이 엄청 땡겼다. 물론, 커피나 차는 그간 많이 마셨지만, 내가 생각하는 티타임에는 핑거푸드가 없으면 안된다... 물론 과자나부랭이 핑거푸드 말고 내게는 "케익"만 핑거푸드다. 손가락으로 먹을 수 없는 핑거푸드라니 뭔가 이상하게 들리지만, 내가 그렇다면 그런거지 뭐- 치즈케익을 마트에서 많이 파는걸 봤지만, 홀케익 사이즈로만 판매해서 구입해본 적은 없었다. 홀케익이 한 6천원 정도밖에 안하니까, 한국에 비하면 정말 저렴한 가격이긴 한데, 집에 딱히 사람 더 없으니 그거 나 혼자 다 먹는거고, 내가 그걸 잘 컨트롤하면서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나는 무절제의 화신- 그런데 나는 케익이 먹고 싶은데! 어쩌란 말인가.


뭔가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꽤 높은 확률로 내 눈 앞에 나타나는 경험을 자주 했었다. 모르겠다, 어쩌다보니 아다리가 그렇게 맞게 된건지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가 네토(Netto)지만, 물건이 다양하지가 않아서 어쩌다보니 가장 먼 리들(LiDL)로 장보러 다닌다. 물론 멀다고 해서 막 엄청나게 먼 것은 아니고, 네토와 리들은 걸어서 한 5~7분 거리에 있다. 어제, 괜히 네토에 한 번 들리고 싶었다. 그리고 네토에서 이렇게 장을 봐왔다. 



너무 사랑하는 냉동야채, 샐러드야채, 샐러드 드레싱(50%할인이라 평소 안사던거 한번 사봄),

그리고!!! 220g짜리 치즈케익!!!!

치즈케익 220g이라고 하면 감이 안오니까 스타벅스 홀케익이 몇그람인지 확인해보려했는데, 불친절한 스타벅스. 공식 사이트의 검색이 왜이렇게 구린지.. 홀케익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가 없네... 조각 케익은 찾긴 했다. 스타벅스 치즈케익 한 조각 145g. 근데 또 이게 완전히 비교하기는 어려운게, 스타벅스 치즈케익은 아래의 딱딱한? 치즈가 아닌? 부분이 있다. 내가 산 치즈케익은 그게 없다. 무튼, 작지도 크지도 않고 딱 적당한 크기의 치즈케익 판매처를 알아냈다는 사실을 이렇게 길고 장황하게 쓴다. 


중요한 것은 가격! 은혜롭기도 해라.. 0,99유로.



그렇게, 정말정말 오랫만에 약차;가 아닌 홍차를 아침에 내렸다. 아침마다 감기차를 그렇게 주구장창 마셔댔는데, 지난 주에 살짝 따뜻해졌다고 감기차 사흘 안마셨더니 바로 감기걸리고... 물론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긴 했다. 무튼, 감기차가 딱히 나쁘다는건 아니고 그냥 저냥 맹맹한 맛이라 특색없는 차인데, 존재감을 뿜뿜하는 홍차를 아침에 마시니 뭔가 기분이 좋아졌다. 밀크티를 마시고 싶었는데, 집에 우유가 없다. 설탕도 없지만 꿀은 있어서; 설탕 대신 꿀을 조금 넣었다. 오- 설탕보다 더 나은거 같은데...?



그렇게, 오늘 오전 530분의, 꽤 이른 티타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등대컵! Unser Norden (Our North)

치즈케익이 다소 작아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닙니다. 220g을 한번에 퍼먹지 않기 위한 나의 몸부림. 덜어먹기. 저 그릇은 참 유용히 잘 쓰고 있다. 올리브 그릇이 되기도 하고, 계란후라이 그릇이 되기도 하고, 이제는 치즈케익용 미니 접시까지. 아, 나 주방저울 있어서 저 치즈케익 무게 잴 수도 있었는데 왜 안쟀지... 대략 40g 정도 될 것이다. 6등분 했으니까.




방 형광등이 노란 불이라.. 방에서 뭘 찍어도 이렇게 누렇게만 나온다.


티타임은 원래 아침 먹고 하는거니까, 아침도 이미 먹었다는걸 적어본다... 감기 때문에 요즘 내내 일찍 잠들고 있고, 배고파서;;; 다섯시 전에 깬다. 연금 받으며 살아가는 할머니가 된 느낌으로, 해뜨기 전이지만 창문을 열어서 환기시키고, 아침을 먹고, 영양제 일곱알을 먹고, 홍차에 치즈케익을 먹는다. 그러고 나니 이 시간이다. 늦잠을 잔 적은 없지만, 언제나 학원가기 참 바쁘다. 아침마다 뭔가를 쓰고 싶은 이 생각에. 무튼, 그렇게 오늘도 잘 보낼 것 같은 하루다.


요즘 근황, 끝-


마지막 포스팅은 2016816일의 집중력 향상 보조제였다. 그리고 제목이나 키워드나 사진만 올려서 비공개 미완성으로 올려둔 27개의 포스팅. 또 새로운 달이 시작되면 더 늦어질까봐 1월 마지막날, 드디어 새 글도 같이 시작했다. 티스토리 이메일이 다음 이메일과 연동되서 내가 헤메고 헤멘 방법과는 달리 너무 간단히 비밀번호가 풀어진게 1월 말이었으니, 너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다. 무튼 그렇게 밀린 포스팅을 순서대로 차곡차곡 올리면서 새 포스팅도 조금씩 올렸고, 210일, 드디어 밀린 포스팅 끝!! 이제 즉각적으로 포스팅을 바로 올릴 수 있다는게 좋다. 


사실 특별한 일은 없다. 매일 학원가고, 세 끼 다 집에서 혼자 해먹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특별히 만나는 사람도 없다. 그냥 그렇게 소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주 가끔 포스트크로싱 사이트에서 엽서를 보내고, 그보다는 조금 더 자주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편지를 보낸다. 가끔 답장이 없는 편지들도 있지만, 뭐 반드시 답장이 온다는걸 생각하고 쓰는건 아니니까. 마치 바다에 던진 편지가 담긴 유리병처럼, 이미 내 손에서는 떠났으니 분실없이 잘 도착되어서 읽히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분실되어도 사실 어쩔 수는 없는 일이고, 또 읽힌 후에 그냥 잊혀져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잘 도착되어 읽힌 후에 답장이 온다면 기쁘고 감사한 일이고.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으니까, 그 무엇도 당연해하지 않기로 한다.



요즘에는 다들 비자 1년밖에 못받으니까 1년만 받아도 잘 해결된거라고 생각했지만, 1년 반을 받았을 때의 그 기쁨. 그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몽캉몽캉한 상태로 지내고 싶다. 너무 다 익숙해지고 당연해지면, 그렇게 정신이 늙는거 아닐까. 몸이 하루하루 늙어가는걸 막을 수는 없지만 정신은 늙지 않은채로 지내고 싶다. 그렇게 나의 소녀다움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