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식은 미리 특별식으로 신청했다. "Seafood"


뭐 특별한 이유가 있는건 아니고, 바다가 없는 나라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해산물을 요리해서 먹는지 궁금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나의 편협함이 얼마나 무지함과 이어지는지 알게 되는 큰 계기가 됐는데, "사막 = 바다가 없는 나라"라는 생각을 했다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비행하는 내내 지도를 보면서 지금 어디를 날고 있는지 확인했는데, 놀랍게도 아부다비/두바이는 바닷가다. 그리고 그 두 도시는 예전부터 진주잡이와 연안어업이 발달했으며, 유전도 해저에서 발견된 거라고 한다. 나는 석유도 사막에서 나온건 줄 알았다. 이토록 무식할 수가....)



00:40AM, 탑승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샌드위치와 컵라면이 나왔다. 

특별식을 주문해서 나만 먼저 샌드위치를 주니까, 개저씨들이 배고프다고 성화였다. 1분전까지 코골고 주무시던 분들이 왜 난리세요.... 뜯었다가는 뭔가 배고픈 개들에게 불을 지피게 될까봐 뜯지 않고 기다렸다.



같이 마실 음료를 묻길래 Dilmah Lemon & Lime을 달라고 했다.




비행기 안에서의 첫 딜마티.

항상 그랬듯이 티백은 딜마를 따라올 퀄리티가 없다. 어쩜 이렇게나 차에 대한 수준차이가 나는지, 설록 나부랭이들 다 꺼졌으면.... 아모레 국정교과서ㅗㅗㅗㅗ 아이고 자판이ㅗㅗㅗㅗㅗㅗㅗ


딜마를 다 우려낸 후, 샌드위치와 컵라면까지 주는거 다 받아들고서는 같이 찍은 첫 기내 간단식. 나는 비행기에서 주는건 물도 맛있더라.... 휴.... 대책없습니다









아침이 되어서 정말 모두가 다 자고 있나 싶을 정도로 고요했던 시간,

비행기 타자마자 와... 훈남... 대박... 이라고 생각했던 승무원이 지나갔다. 가급적 훈남이 티든 기내식이든 주는게 좋습디다? 딜마 티 달라고 했더니, 종류도 묻지 않고 갖다 준다길래 뭐지.... 왜 안물어보지... 못알아듣고 커피 주는거 아닌가... 비행기에서 커피나 술은 굳이 안마시는데.... 그런거 먹으면 수면제처럼 나는 바로 잠든단 말이야....;;


그리고는 그 승무원이 가져다준 English Breakfast tea

아침이니 종류 물을 필요도 없이 이거라 생각한건가....

Milk? Sugar? 이러길래 아 밀크티면 다 있어야지 왜 묻는거야... 싶어서 둘 다 달라고 했다. 이드리스 엘바와 85%쯤 같은 외모의 남자가 Early Tea를 갖다주다니... 참나... 행복이란게 멀리 있는게 아니다 싶고... 세상이 이렇게 덧없구나 싶고 ㅋㅋㅋㅋ 누구든 Early Tea를 침대로 가져다줄 남자면 결혼할 마음이 없다가도 생길 것 같고 그랬는데... 망상이 이렇게 위험하네.... 뭔가 많이 잘못되었다....



그렇게 비행기에서 두번째 딜마티가 완성되었다.

왜이렇게 더 맛있고 난리야....







그렇게 딜마티를 더 열심히 마시고 싶어졌다.





세 번 째 딜마티, 카모마일




이제 그 잘생긴 승무원은 마치 내 전담 티 메이커 같았다. 나는 계속 다이어리와 엽서를 번갈아 쓰면서 한 모금 두 모금씩 티를 마셨고, 티가 딱 바닥에 깔릴 때 쯤에 다른 티 줄까? 같은걸로 줄까? 를 물었다. 이런 서비스라니... 제가 꼴랑 40만원짜리 특가로 비행기에 타고는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됩니까?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승무원님은 부디 복 많이 받으시구요....


이제 말 안해도 핑거푸드도 막 갖다주고... 네가 티를 많이 좋아하는거 같아서 한 개 더 갖고 왔다고 나 없어도 티 잘 챙겨먹고! 이런 소리나 하고... 참나 여보세요? 지금은 어디 계세요? 


별거 아닌 핑거푸드도 말 안했는데 챙겨주고 하니까 또 고맙고 뭐 그렇고... 생각난 김에 에티하드 웹사이트에 땡큐레터나 쓰러 가야지... 이름 모르는데 이드리스 엘바처럼 생긴 그 남자 승무원 이렇게 쓰면 안되겠지;;;




무튼 네 번째 딜마티, 





흔한 녹차와 달라, 다르다고!!! 설록ㅗㅗㅗㅗ 아이고 또 자판이ㅗㅗㅗㅗ

한국에 그런 저급 티 문화를 전파한 것을 영원히 저주하고 저주할 것이다. 

이렇게 네 종류가 에티하드에서 제공되는 딜마티고, 열 시간의 비행동안 이 네 종류를 두 번씩은 마신 것 같다. 한 시간에 티 한 잔이라니, 생각해보니 꽤 귀찮았을텐데 그저 고마워졌다.





- 여기서부터는 넋두리가 심하니 안읽으셔도 됩니당 -


한국에서 티를 즐길 때마다 꽤 자주 듣던 말 중 하나는

"먹고 살기 바빠서 차같은거 마실 시간 없다"는 멍청한 소리였다.

멍청한 사람들은 멍청한걸 꼭 티를 내야 하나요? 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입밖으로 말을 내뱉을 때는 제발 생각을 좀 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내가 한국이 아닌 다른 곳을 여행할 때마다 즐거운 것 중 하나는

다양한 종류의 차를 편안히 아늑하게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내가 무얼 마시든 먹든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나는 다른 사람이 뭘하고 사는지 딱히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의 삶에 관심이 많았고, 나는 그게 몹시 피곤했다.

내가 백수로 아빠 돈을 갉아먹으면서 산다고 해서 너에게 피해를 준 것이 있는지?

내가 살이 쪘다고 해서 너에게 피해를 준 것이 있는지? 살찐 내가 쪽팔리다면 안만나면 되잖아. 왜 그런 식으로 사람을 대하는건지?

말하면 입아프지만 이런 것들이 한국에서의 하루하루를 굉장히 피로하게 만들었다.


특히 서른이 넘은 미혼 여성에 대한 각종 인신공격들은

나라가 멀쩡히 돌아가는게 신기할 정도로 각종 개저씨들과 같은 여자들에 의해서 난도질당했다. 저의 자궁은 혹시 국가 소유인가요? 제가 어디 애낳는 기계여야하나요?

서른이 넘은 살찌고 남자친구가 없으며 직업도 없는 나는 최하층민이자 아무에게나 아무 개소리를 들어도 되는 그런 위치였다. 위치 자체가 없었다. 나보다 하급은 없었다. 정신나간 분들은 부디 자살을 추천합니다, 한강물이 녹았습니다.



러시아 여행을 갈 때도, 일본 여행을 갈 때도, 독일로 떠나는 이 비행기 안에서도 나는 나 그 자체였다. 한국에서의 나는 규정되어져야했다. 라벨링이 되어야했고, 최하급이라는 도장이 이마에 찍힌채 살아야했지만, 한국을 떠나는 이 비행기 안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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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은 9시간은 내내 엽서쓰고 다이어리 썼다


비행기에서의 테이블은 엄청 좁아서

사실은 기내식만 딱 먹는 용도가 맞다


그 안에서 누가 펜을 꺼내고 법석을 하겠냐며....


하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그건 바로 나



엽서 쓰다가 비행기 시간 촉박하게 와놓고

비행기 타서 또 엽서쓰는 사람도 로 나



어쩌겠냐며, 너무 재밌고 즐거운데.....






내가 독일로 떠난다고 하니, 반고흐 엽서 세트를 선물해줬다

가격을 떠나서, 나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어주는 사람은 분명 좋은 사람일 것이다


엽서 열어보니 퀄리티는 또 어찌나 좋은지....

내가 좋아하는 고흐의 많은 그림들이 엽서 속에 담겨 있어서

다 쓰지는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그저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몇개의 그림을 빼놓고

스무장이 넘는 엽서들을 펼쳐놓고 어떤 엽서에 보낼지 상대방을 상상했다






내게 이 고흐 엽서 세트를 선물해준 친구에게는 저 흰 옷 입은 여자가 들판에 서 있는 엽서를 썼다. 내게 이런 명화 엽서를 선물해준 고마운 사람이 마치 천사 같이 느껴졌다.


친한 언니들 중 한 명은 가장 빨리 독일에 올 것 같아서, 마차를 한국까지 보내는 듯한 느낌으로 다리 위에 마차가 지나가는 그림에 엽서를 썼다.


그리고 고단해보이는 부부가 누워있는 엽서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보냈다. 요즘 일도 많아서 잘 쉬지도 못하는데, 그림으로나마 푹 쉬는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다. 저 그림은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고흐의 그림이기도 한데, 언니니까 내가 쓰는거야...



무튼 그렇게 하나하나 받을 상대방을 상상하며 매치해가면서 엽서를 쓰는 일은 생각보다 많이 즐거웠다. 여태까지 한국에서 외국으로 발송하는 엽서들은 400원이라 그 한 장을 쓰는데 많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독일에서 보내는 엽서는 분명 400원보다 비쌀 것이기 때문에, 엽서 한 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쓰기 시작하니, 괜히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엽서를 쓰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보통의 야간 비행은 주간 비행에 비해 승무원이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

기내식 챙겨주는거와 가끔 술 찾는 아저씨들 빼고는 할 일이 많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 안자고 몇 시간 째 뭔가를 자꾸 써대는 아시아 여자 한 명이 있으니 얼마나 신경이 쓰였을지...


게다가 자꾸 딜마티를 내놓으라고 하니...ㅋㅋ 잘은 모르지만 몹시 귀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만년필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딜마티는 엄청나게 잘 어울린다. 너무너무 좋은 조합이다. 그 높은 고도에서도 만년필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딜마티의 향이 만난다면 아무것도 힘들지 않고 계속 뭔가를 쓰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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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6 00:10AM, Gate will be closed


그런데 게이트 문을 자정이 되서도 안열어주고....ㅋㅋ 자정 지나서 탑승시작해서 나는 00:10이 되어서야 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예약할 때 여기저기 많이 확인하고 좋은 자리라는 22열을 예약하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좋을 줄이야....오버차지고 뭐고 그냥 원래 가격이 그렇다고 생각해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엄청나잖아....? 그런 자리를 내가 그렇게 헐값에 샀다고???? 어찌나 행운이 넘치는지 (감정기복 심함 ㅋㅋㅋㅋ)



두 명 앉는 자리 중 창가자리인데 내가 앉고나서 10분이 지나도 옆자리가 채워질 생각을 안한다. 제발 빈 자리ㅠㅠㅠㅠ 제발 저에게 행운이 또 한번ㅠㅠㅠㅠㅠㅠ 이라고 생각하면서 11분이 지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12:21AM, 이제 사람들은 다 탑승한 것 같은데 누굴 기다리나 싶어서 한국인 승무원에게 물어봤더니, 두 명이 아직 탑승을 안했다고 대답해주셨다. 그러면서 예쁘게 말하기 교육이라도 받으시는건지ㅠㅠㅠㅠ "두 명이 올건데 뒷쪽에 빈자리가 조금 있으니 아마 이 자리는 빈 자리일 확률이 높아요!" 라는 말도 같이 해주셨다 제발 저에게 그런 행운이 함께하길.......


조금 지나니까 승무원들이 더 바빠보이길래 그 한국인 승무원을 쳐다보자, "축하드려요!!!!"라는 말을 해주셨다 ㅋㅋㅋㅋㅋ 웃는 것도 엄청 예뻤고ㅠㅠㅠㅠ 비행내내 나 챙겨주시고ㅠㅠㅠㅠ 제가 뭐라고ㅠㅠㅠㅠㅠㅠ 무튼 그렇게 인천-아부다비 10시간 5분의 비행을 옆자리가 비어있는, 비상구 바로 앞 줄이라 마음껏 제쳐도 되는 엄청나게 좋은 자리에서 편하게 비행을 하게 되었다




뒤로 살짝만 제낀 내 자리와 빈 옆자리





뒤에서 보면 이정도의 공간이나 남아있다

아무리 뒤로 젖혀도 뒷 사람에게 피해가 하나도 가지 않는 최고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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