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과거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나쁘다고 하기엔 기쁘고, 기쁘다고 하기엔 내가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며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반성과 후회를 하게 된다. 물론 3분짜리 반성과 후회지만.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굳어버린 만년필을 세척했다. 오랫동안 따뜻한 물을 흘려보내도 굳은 잉크는 계속계속 녹아져나왔다. 9개월 가량을 쓰지 않았으니 너무나 당연히 꽉 굳어있었다. 그렇게 만년필을 손에 쥐니 무언가 쓰고싶어졌다. 별 의미없는 것들을 적어가며, 영어단어도 휘갈겨가며. 아무래도 내 일상의 하나였던 우표를 사야겠다. 논리 그런거 없다. 돈을 쓰면 즐겁다. 벌지 않는 인간이 쓰는 것만 즐기는 것은 죄악이지만, 나는 이미 죄인이다.



우체국에 들어가면서 문득 든 생각은, 나에게 불친절하고 무례하게 대하던 그 직원이 창구에 있으면 어쩌지 싶었다. 나는 그 사실조차 다 까먹고 있었다. 내가 숫자를 독일어로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이상한 발음으로 우표를 구입하려할 때마다 한숨을 쉬던 그 직원. 그 직원의 존재가 떠오르면서, 그냥 다시 나갈까 싶었다. 하지만 우표 판매창구로 가는 도중, 간이 창구가 하나 생겼길래 봤더니, 그 불친절한 우표 판매 직원이 거기에서 보험을 팔려고 호객아닌 호객을 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기쁘지? 게다가 우표 판매 창구에 갔더니 나에게 친절했던 그 직원이 여전히 창구에 있었다. 예전처럼, 핫핑크색 손톱을 하고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 후,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뜻밖의 인사를 들었다. 


Ich habe Sie lange Zeit night gesehen. (직역하면, 나는 너를 엄청 오랫동안 못봤었어!! 정도)


나를 이렇게 기억할 줄 알았다면, 뭐라고 대답할 말을 준비해서 갔을텐데 생각지도 못한 친근한 인사라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오랫동안 못봤는데 지금 좋아보인다 좋은 일 있나봐!! 라고 말을 덧붙인다. 좋은 일이 있던가? 이제 방에서만 있지 않는다는 그 자체가 내겐 좋은 일이긴 하다. 하긴 그랬지, 나는 매달 우표 발행일마다 우표 사러 오는 아시아인 여자였지. 침대에서 누워서 지내느라 나의 상황을 잠시 잊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독일어를 해대며 저 반가운 인사에 대한 대꾸를 했지만, 내가 하고 싶던 말은 10%도 채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이 도시에 있다. 정신을 놓지 말고 살아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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