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서만 영화를 본다는 내 나름의 규칙이 있다.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라고 만들어진거니까, 큰 스크린과 짱짱한 사운드로 듣지 않으면 아무 의미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거의 영화들 중에서 꼭 보고 싶지만 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언젠가 인연이 되면 재개봉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살았고, 한국에서는 꽤 많은 영화들이 재개봉되어서 봤다.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카사블랑카/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고전 영화들도, 목동 CGV에서 특별전 할 때 굳이굳이 찾아가서 봤었다.


내가 보지 못했지만 너무 보고 싶었던 영화 트레인스포팅, 이완 맥그리거(요즘은 유안 맥그리거라고 부르는 듯. 앞으로는 유안 맥그리거로 씀)가 가장 반짝반짝하던 때의 모습이 담긴 영화. 21년 만에 두 번째 이야기가 나오면서, 독일에서는 1995년의 영화도 같이 재개봉했다. 너무 감사한 일. 정말 보고 싶었던 영화를, 독일에서 이렇게 보게 되다니 무척이나 설렐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독일 영화관은 독일어 더빙이고, 영어로 상영되는 95년의 트레인스포팅은 딱 한 번 밖에 없었다.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선택할 수 있는게 없기 때문에 그 늦은 시간에 영화관으로 갔다.


그리고, 나는 독어로 더빙된 1995년 트레인스포팅을 봤다. 몹시 당황스러웠다. 독일 영화관도 꽤 광고가 길기 때문에, 보통 상영시간의 15분 후에 본 영화가 시작되는 편이다. 15분이 지나고 트레인스포팅인 듯한 영화가 시작된 것 같은데 계속 독어가 나와서 음.. 뭐지.. 뭐지.. 하고 넋놓고 있었는데 제목이 떴다. 중간에 나가기도 좀 그렇고, 3시간짜리 영화가 아닌 한시간반짜리니까, 어떻게든 집중해서 독일어를 들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10%도 채 못들었던 것 같다. 그저 유안 맥그리거의 그 반짝반짝하던 시절의 병약미를 큰 스크린으로 보는 것에 만족해도 나쁘지 않다고 최면을 걸면서 90분을 앉아있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직원을 찾았다. 자정즈음이라 모두 퇴근하고 없었다. 정말... 대단들 하다...는 생각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냥 돈 버린셈 치려고 했는데, 뭔가 억울해졌다. 비록 뭔가 되진 않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 싶어서, 티켓을 들고 다시 영화관을 찾았다. 상황을 얘기했더니, 당일이 아니면 환불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당일에 직원을 찾았지만 다들 퇴근하고 없었어!! 라고 했더니, 아니야, 2층에 사무실이 있고, 거기엔 사람이 있었어. 라는 답변.


?????????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황당했지만, 별 권한이 없어보이는 직원이라 알았다고 하고 집에 와서 메일을 썼다. 컴플레인한 메일을 그대로 붙여넣기엔 나의 허접한 영어실력이 뽀록나므로... 대충 뭐라고 썼냐면.

안녕? 만하임 씨네플렉스에서 영어버전으로 영화를 상영해주는 것에 감사하고 있어. 내가 지난 목요일 트레인스포팅 영어버전을 보러 갔는데, 독어버전이 나오더라? 왜그런거야? 영어로 상영하는 회차가 많았다면 다른 회차를 다시 봤으면 되었을텐데, 그게 딱 한번뿐인 영어버전이었어. 1995년 영화라 언제 다시 영화관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구.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나는 지금 독어를 배우는 중이라 그 날 영화를 전혀 이해 못해서 그런데, 환불해줄 수 있니? 나도 너를 귀찮게하기 싫은데, 너네가 영어로 상영했으면 나도 이런 메일을 쓸 필요는 없었을거라는 걸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는 1995년의 그 영화를 영어버전으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기대됐는데, 이젠 그러지 못한다는게 너무 아쉬워.

대충 이정도. 그리고는 답변이 왔다.

환불 못해줘!!!! 근데 트레인스포팅2를 보여줄 수 있어. 괜찮아?


오? 솔깃... 내가 이러려고 트레인스포팅2를 아직 안본건가 싶고...ㅎㅎ

그래서 트레인스포팅2 영어버전을 무료로 보고 왔다. 나는 진상인가, 컴플레인 능력자인가?

이메일에도 썼듯이, 너네가 영어로 상영했으면 나는 이 메일을 쓰지 않아도 됐잖아?


I am really pleased to Mannheim Cineplex to provide the Film in English, but what happened at 22/02? Why did you provide in German version? I want to refund my Money back. I had heard, the refund is only at the same day. But if Cineflex provided in English version, I don't need to ask to refund my money back. And I am too sad, that's the only one time to watch the Film in English version.




영어로 상영되는 줄 알고 설레서 찍었던, 1995년 트레인스포팅 입장 사진.




티켓 초점은 어디갔나... 그래서 다시 찍어서 올림!

원래 7유로짜리 특가 티켓인데(정상가 13유로 가량), 나는 이 영화관 회원카드가 있어서 1유로 추가할인 받음




공짜로 보게 된, 2017년 트레인스포팅

영어버전은 하루 한 번, (주로) 굉장히 늦은 시간에 상영된다. 선택권이 없다. 독어가 빨리 늘길 바라는 수 밖에




원래 이렇게 포스터에서도 사진을 찍는다. 항상 영화보고 나올 때.

1995년 트레인스포팅에 이 사진이 없는건, 왜 영어상영이 아닌 독어상영이었냐고 말할 사람을 찾아야했기 때문에. 못찾았다는게 문제.

가격 0,00유로!!! 당당하다! 뿌듯하다!!




6,00유로에 본 1995년 트레인스포팅 티켓과,

0,00유로에 본 2017년 트레인스포팅 티켓




그리고 독일와서 처음 봤던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

할인가격이 있을거라고 전혀 생각 못하고 당당하게 13,40유로에 봤다.

영어로 볼 수 있다니!!! 감사합니다!!! 하면서...


그리고 스타트렉 비욘드, 저 때 영화관 회원카드를 만들면 영화를 6유로에 볼 수 있다길래 당연히 만들었었다. 




5월 초, 만하임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한국에서만큼은 아니어도 매달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서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영어로 상영되는 영화를 70%도 이해할 수 없고, 또, 대사가 많고 빠른 영화들은 더더욱 힘들었다.

트레인스포팅의 경우는, 심각한 스코틀랜드 억양이라 더더욱 힘들었고,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독백이나 상황설명이 워낙 많아서 화면으로 유추해낼 수 없는 그런 말들이 굉장히 많았다. 물론 1995년 트레인스포팅의 경우는 90분간 독어 듣기연습 한다고 생각하면서 앉아있었고. 그래서 총 10개월의 기간동안, 영화관에서 영화는 딱 다섯개밖에 보지 못했다. 겨울에 헤멘거 감안해도 한 달에 하나가 채 안된다. 그렇게나 좋아하는 영화인데, 언어의 장벽이라는게 새삼 너무나 높고도 높구나 싶어서 속상하다.



독일에는 현재 히든 피규어가 개봉해있다. 한국은 아직 미개봉이고, 3월 말에 개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너무너무 보고 싶은데, 전문적인 용어가 대부분인 대사들을, 굉장히 많이, 빠르게 하는 것을 예고편에서 보고 볼 마음을 접었다. 독어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영어도 좀 해야할텐데, 언제 독어를 해결하고 영어를 하나.. 싶다. 멀고도 먼 외국어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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