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인연으로 파리 20구에 위치한 페르 라셰즈 묘지에 가게 됐다. 몇 년을 살았지만 우범지대인 20구에는 단 한번도 가지 않았는데, 굳이 거기를 첫 여행에 가야하냐는 지인의 잔소리를 들어야했지만, 내가 가고 싶다는데! 그렇게 20구로 갔다. 한번에 가는 지하철이 없어서 갈아타야했다. 파리 지하철 너무 복잡하고, 어렵고... 서울 지하철 짱짱. 



문을 찾아서 들어간게 아니고 걍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어디론가 들어가길래 나도 따라들어갔고, 거기가 쪽문정도 되는 곳이었다. 정문은 나올 때만 봤다; 쪽문 앞에 전체 지도를 보니, 규모가 엄청나다는게 느껴졌다. 다 보는건 불가능해보였고, 쇼팽 에디트 피아프 오스카 와일드를 찍어두고 몇몇 화학자들의 무덤의 위치도 체크했다. 가장 가까워보이는 쇼팽부터 찾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나는 방향치... 심각한 방향치..... 찾을 수가 없었다.......... 뭔가 같은 곳을 뱅뱅 돌고 있는 느낌... 그 때 관리하시는 분으로 보이는 분이 쇼팽? 쇼팽? 이러면서 따라오라고 ㅋㅋㅋㅋ 나같은 사람 많았나보다 싶었다. 그렇게 많이많이 헤메다 겨우 도착한 쇼팽 무덤. 여기만 설명해주는 가이드인지 아니면 파리 가이드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무리가 설명을 듣고 있길래 귀 쫑긋.



쇼팽의 무덤은 이 곳과, 폴란드에 있다고 한다. 심장만 따로 분리해서 바르샤바에 묻혔다고... 사람들 왜 그렇게 잔인해... 그냥 하나면 안되는건가.. 뭐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무덤이라서일 수도 있지만, 뭔가 처연했다. 이 무덤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아오는 무덤일 것 같았다. 시들지 않은 생화가 있었고, 누군가 화분에 계속 물을 주는 듯 했다.




워낙에 넓어서 이렇게 구역구역 나뉘어져있지만, 길치는 이렇게 나뉘어진 구역 안내를 보고도 찾아가지 못한다.




일반인의 가족묘. 대부분은 저 문에 자물쇠가 채워져있었지만, 이 가족묘는 자물쇠가 없었다.

하지만 타인의 무덤에 막 들어가고 그러는건 실례일 것 같아서 그냥 사진만 찍었다.




에디트 피아프. 특별하지 않아서 뭔가 놀라웠고 주변에 사람들이 없었다면 못찾을 뻔했다. 일반인의 묘지보다 더 소박했다. 그렇지만 많은 꽃들과 소박한 묘지가 어딘가 묘하게 어울렸다. 장미와 몹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Jean-Antoine Chaptal (쟝 샤프탈), 화학자. 뭔가 화학자의 기운을 받고 싶었다.

저 내년에 학교 잘 합격하게 해주세요!! 공부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해주세요!!!

기복신앙의 나라에서 나고 자라서 이럴 수 밖에 없는 저를 부디 이해해주세요...




오스카 와일드. 자신의 머리를 바치고 있는 하늘을 나는 스핑크스를 상징하는 묘비. 그를 기리는 립스틱 자국 가득한 사진으로 유명한 바로 그 무덤. 이제는 그 립스틱 자국은 없다. 립스틱의 기름이 돌에 흘러들어가서 문제가 꽤 되었고, 이 유리 보호벽이 설치된게 2011년. 그 전에 방문했던 사람들은 꽤 다른 무덤을 보고 갔을 것이다. 비단 립스틱 자국뿐 아니라, 옆의 무덤들은 이 무덤으로 인해서 피해가 크다고 한다.




바로 옆 무덤의 부러진 십자가. 왜 저렇게까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보수하지 않고 저렇게 둔지도 좀 되었다고 한다.




키스세례를 잔뜩 받은 오스카 와일드의 이전 무덤.

오스카 와일드는 작품으로도 유명하지만, 삶도 참 기구하다. 오스카 와일드를 탐미주의 리더로만 알고 있다면, 그를 반밖에 모르는 것이다. 누가 누구의 삶을 기구하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하다는 단어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그 당시, 귀족 미소년과의 열애라니. (알프레도 정말 잘생겼다...) 그리고 "동성애 금지법 판결 제 1호 인물"이 되었고, 모국에서 배척되었다. 그 후, 파리의 이 무덤에 끝없이 찾아오는 팬들의 키스세례를 받았다. (지금은 유리벽으로 보호받고 있지만.)




그렇게 페르 라셰즈 묘지 전역을 두 시간쯤 걸었다. 내내 걸어다닌건 아니고 틈틈히 무덤 앞에서 멍하니 서있기도 했지만, 은근 이것도 운동이라고 다리가 아팠다. 정 중앙에 있는 의자에서 잠깐 앉아서 쉬었다. 파리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뭔가 탁 트인 시야가 그저 좋았다.





나를 이 곳으로 안내해준, 라디오를 들었던 날에 적어둔 일기.


나는 중2병을 라디오로 앓았다. 사람의 목소리에 신경쓰기 시작한 것은 그 때 즈음이었다. TV와 달리 라디오는 개인적으로 친밀하다는 감정이 더 높아서인지, 오래 방송한 디제이와 청취자는 만난 적 없지만 서로 잘 알았다. 몇몇 청취자의 이름은 내게도 익숙했고, 지금도 종종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나조차 궁금하다. SBS 라디오 FMzine을 듣게된 건 최다은 피디님과 김혜리 기자님이 다시 같은 방송을 한다고 하셔서였다. 남자 아나운서분이 라디오를 맡으셨다고 해서 내심 더 좋았다. 라디오는 내게 약간 짝사랑하는 느낌이 드는 매체라서 그런지 여태 들었던 모든 라디오는 전부 남자 디제이였다.


이동진 평론가님이 진행하셨던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사연을 썼었고, 구남친과는 그 사연으로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헤어지게 되었을 때, 그 방송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방송이었다. 하지만 같은 피디님이 만드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어서 첫 사연을 그렇게 보냈다. 라디오 덕분에 좋은 사람과 연애할 수 있었고, 헤어졌다는 것도 알려드리고 싶었다고.


그리고는 내내 바빴다. 독일에 와서 매일매일이 정신없었고 새로웠다. 어제 낮에 갑자기 라디오가 생각나서 여기 시간으로 알람을 맞춰놓고 FMzine을 기다렸다. 한국 시간 새벽 네 시에 방송되는 라디오라 한국에서보다 독일에서 본방을 듣기 좋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보름 후에 파리로 여행갈 계획이 있는데, 이번 주의 테마가 "음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이고, 마침 내가 듣는 날의 여행지가 "파리"라니. 가끔 이럴 때 정말 삶의 순간들이 감사하다. 내가 좋아하는 샹송이 거의 다 나왔고, 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Edith Piaf의 이 곡. 독어 공부한다고 샹송 안들었더니 첫 마디 듣자마자 괜히 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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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ça m'est bien égal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C'est payé, balayé, oublié,

je me fous du passé


Avec mes souvenirs j'ai allumé le feu

Mes chagrins, mes plaisirs

Je n'ai plus besoin d'eux

Balayé les amours avec leurs trémolos

Balayé pour toujours

Je reparts a zéro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ça m'est bien égal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Car ma vie, car mes joies

Aujourd’hui ça commence avec t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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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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